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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만 늘린다고 필수의료 안 살아나…왜곡된 의료체계 바꿔야"

기피 원인 '개원 부추기는 건보, 전문의 안뽑는 병원, 불명확한 역할'
의협 "획기적 대책 필요"…정책 전문가들 "의대 증원 효과는 10년 후"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2023-06-13 05:29 송고 | 2023-06-13 08:40 최종수정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8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2023.6.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8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2023.6.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생계를 걱정하며 보톡스 시술, 비만 치료를 알아보고 응급환자가 거리를 떠돌다 사망하는 일이 잇따르며 연봉 10억원으로도 외과 의사를 못 구하는 지방 병원이 나오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 터라 18년 넘게 동결됐던 의과대학 정원이 2025학년도 입시 때부터 늘어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증원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꾸준히 "의사가 늘어난다고 필수 의료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정책 전문가들도 일견 동의한다. 의대 정원 증원와 함께 각종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열린 필수의료 지원대책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1.3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열린 필수의료 지원대책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1.3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종합병원 전문의보다 동네 개원의가 많이 버니 쏠릴 수밖에"

의료 현장과 정책 전문가들은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을 크게 3가지로 꼽았다. 우선 동네 병의원 개업을 유도하는 왜곡된 건강보험의 진료비 보상방식과 만연한 비급여 항목 진료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1일 "정부와 보험자가 필수 의료 분야의 투자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진료 제공에 있어 의사 자율성을 보여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라고 말했다.

대전협은 "기피 현상은 명백한 건강보험제도의 구매 기능 실패"라고 지적했고,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종합병원 전문의보다 동네 개원의 수입이 더 많으니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병원이 전문의를 지나치게 적게, 고용한다. 전문의 고용 기준이 별도로 없으니, 수가를 올려도 전공의 지원율은 높아지지 않았고 전문의도 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009년 흉부외과의 수술 수가를 100% 인상해 줬으나 이 금액이 의사 인건비 대신 병원 운영비로 쓰이는 일이 있었다. 수가가 올라도 흉부외과는 기피과 신세를 면치 못했다.

끝으로, 큰 병원 작은 병원 역할이 불명확하니 모든 기관이 의료체계에서 경쟁을 펼친다. 김 교수는 "스텐트 시술 가능 병원이 전국에 180개 있지만 의사가 분산돼 있어 응급 대처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증 환자들이 응급의료기관에 몰리고, 그러다가 응급환자가 와도 의사나 병상이 없어 돌려보내게 된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고질적 원인이다.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전공의가 가운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0.9.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전공의가 가운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0.9.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의대 정원 확대는 물론 건보 수가, 전문의 채용 등 체계도 개편

전문가들과 의료 현장은 입을 모아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왜곡된 체계를 바꿀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금의 문제를 의사 수 증원으로만 접근하고 있어 안타깝다.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대생 증원 효과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14년 걸린다"고 진단했다.

이평수 전(前)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도 "건강보험 재정 역시 한계가 있어 무작정 수가를 올릴 수는 없다. 시스템 전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정교한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도 지난 8일 보건복지부와의 의료현안 협의체를 시작하며 "의대 증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의대생과 인턴들이 필수 의료과에 지원할 토양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광래 회장은 "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피하지 않는다. 기존 건강보험 틀에서 해결하려 들기보다 정부·지방자치단체·국회에서의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근본적으로 진료 체계, 의료 공급체계를 개편하는 게 우선이고 환자를 24시간 365일 봐야 하는 병원의 수가는 집중적으로 올려주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논의와 더불어 지금의 불균형을 고착시킨 지불 구조를 우선 개선할 계획이다. 필수의료에서도 흑자를 낼 수 있게 사전보상제를 도입하고,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수가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관계자는 "보장성 강화 속에 지속 가능한 재정 관리와 공정한 부과 체계 운영 방안을 찾는 한편 필수의료 체계가 원활히 작동되기 위한 보상체계 도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대 정원 총수도 늘리면서, 동시에 의료기관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게 각종 수가 등 지불구조를 고치려 한다. 1년 안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깃대는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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