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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푸틴과 두긴, '1984'와 '라쇼몽', 그리고…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2-09-29 12:00 송고 | 2022-09-29 19:22 최종수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로 두긴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로 두긴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6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상적 멘토로 불리는 사회철학자.

나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두긴 이야기를 한번 써야겠다고 수첩에 메모했다. 그런데 왠지 메모에서 점화(點火)가 되지 않았다.
지난 8월 말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긴이 차량 폭발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국내 언론은 일제히 '푸틴의 브레인' 두긴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골자는 두긴이 러시아가 서방 국가에 대항해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유라시아주의를 주창했고, 이것이 푸틴 대통령의 큰 그림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설 기사들의 논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두긴을 설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사실을 한가지 빠트리고 있었다. 이제 두긴을 쓸 때가 되었구나.

지난 4월1일 나는 제주도를 여행 중이었다. 아내와 비자림 숲을 걷고 있는데, 카톡이 하나 떴다. 제목을 보고 그만 클릭했다.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놀랍지만 반가웠다. 더 이상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지 않겠구나, 크렘린에도 러시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심이 살아있구나.

그런데 이상했다. 후속 기사가 뜨지 않았다. 왜 그렇지? 몇 시간 후에 깨달았다. 만우절 기념 가짜뉴스였다. 내가 만우절 거짓말에 낚이다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은 푸틴이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KGB 출신 전체주의 독재자 푸틴의 광기는 내부 반란으로만 끝날 수 있다. 스탈린이 1953년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끔찍한 만행의 퍼레이드가 종지부를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푸틴의 잘못된 판단으로 러시아 청년들이 죽음의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고 우크라이나에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크렘린과 러시아군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러시아 언론에서는 전쟁 반대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여론도 모깃소리만 하다. 행여나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소리소문 없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지금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자유민주주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괴기스럽다. 아무런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후방에서는 기이한 침묵만이 흐른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치를 때 미국 내에서는 전쟁 반대 여론이 거셌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게 자유세계다.

이 지점에서 두긴이 등장한다. 지난 3월 독일 언론이 사회철학자 두긴의 철학을 소개했다. 두긴의 철학을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자신의 칼럼에 간략하게 언급했다. 두긴의 철학은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객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진실은 누군가의 믿음이다. 러시아인들의 믿음은 러시아의 진실이고, 러시아인들의 행동은 러시아의 정의다. 미래 세상은 핵무기로 무장한 러시아, 미국, 유럽, 그리고 중국이 지배한다. 상대방 영토를 침략하면 핵전쟁이 날 수 있겠지만 각자의 영향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별 진실'과 '개별 정의'이기에 서로 간섭하지 않는 진실이자 정의다.'

'진리부' 직원 윈스턴 스미스의 직무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은 두 천재를 소환한다.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과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오웰이 스코틀랜드의 외딴섬에 들어가 피를 토하며 1948년 말에 완성한 작품이 '1984'다. 가상국가 오세아니아 정부에서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 소속이다. 진리부 직원 윈스턴에게 주어진 직무는 항구적인 거짓말을 만드는 일이다. '전쟁은 평화고, 자유는 노예다…'. 주라 섬에서 그가 이 소설을 쓸 때 중화인민공화국(PRC)은 태어나기 전이고, 북한의 존재는 알 수도 없었다.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국가 오세아니아의 지도자 '빅브라더'. / 사진=위키피디아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국가 오세아니아의 지도자 '빅브라더'. / 사진=위키피디아 

오웰은 소설에서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빅브라더'에 의해 감시받고 거짓말이 정부 차원에서 양산된다고 경고했다. 평론가들은 '1984'를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소련이 붕괴한 지 32년, 스탈린이 죽은 지 70년인 지금 러시아에는 스탈린의 망령(亡靈)이 완벽하게 부활했다. 러시아 언론은 크렘린의 지침대로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유포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는 곧 죽음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도시의 골목길을 휩쓴다. 오웰의 예언한 그대로다.

'라쇼몽'의 진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안겨준 작품이 '라쇼몽'(羅生門)이다. 1951년, 감독 나이 마흔한 살 때다. 영화 '라쇼몽'은 서양 영화계에 충격을 주었고, 일본 영화를 다시 보게 했다.

'라쇼몽'의 등장인물은 모두 네 사람. 나무꾼, 산적, 승려, 그리고 산적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무라이의 아내. 여기에 한 사람 더. 무당이 불러낸 사무라이의 혼령이 등장한다.

처음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관객들은 누구나 나무꾼의 진술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증인이 자신이 목격한 사건 개요를 진술하면서 관객들은 조금씩 나무꾼의 진술에 의심을 품게 된다. 다시 세 번째 증인이 자신이 본 목격담을 이야기하자 첫 번째 증언과 두 번째 증언까지 흔들린다. 이런 식으로 네 번째, 마지막 증인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이 증언을 마치자 숲속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은 짙은 안개에 가려진다.

영화 '라쇼몽' 포스터. / 사진=위키피디아 
영화 '라쇼몽' 포스터. / 사진=위키피디아 

아키라 감독이 '라쇼몽'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영화사 고위층이 반대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키라 감독은 이렇게 설득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허식 없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 시나리오는 허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렸다. 아니, 죽어서까지 허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를 그렸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업(業)이고, 인간의 구제하기 힘든 성질이며, 이기심이 펼치는 괴기한 이야기다. (…)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원래 수수께끼다. 그런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라쇼몽'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유럽 영화계는 전쟁의 폐허에서 탄생한 이 영화에 대해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로 화답했다. '라쇼몽'이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으면서 일본의 이미지가 전범국(戰犯國)에서 문화국가로 도약하게 되었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왜 '라쇼몽'에 대상을 주기로 결정했을까. 그들은 이 영화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읽어냈던 것이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세상을 움직이는 요인은 본능과 우연이라고 갈파한 프로이트 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수세에 직면하자 푸틴은 급기야 30만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도시에서 젊은이들의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국경마다 러시아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푸틴을 위해 죽기 싫다' '푸틴 네가 가서 싸워라'.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전쟁 반대는 찻잔 속의 동요로 끝나고 말았다. 선동과 거짓말에 세뇌당한 집단의식이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스탈린의 소련으로 회귀한 러시아.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1906~1975)가 일찍이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예언했다. 히틀러가 죽었다고 전체주의가 사라지나.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체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1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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