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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시민·환자 이겨 의사에 남는 건 대체 무엇일까[이승환의 노캡]

진보·보수 언론 가릴 것 없이 의료계 파행 비판하는 이유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4-03-14 05:30 송고 | 2024-04-01 12:40 최종수정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보의와 군의관들이 의료기관에 파견된 13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3.13/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보의와 군의관들이 의료기관에 파견된 13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3.13/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언론은 불편부당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불편부당'(不偏不黨)은 '특정 정파나 무리에 치우치지 않는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국내는 물론 해외 신문들은 한쪽에 치우치는 '정파성'을 보인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신문의 정파성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요컨대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보수 성향의 신문이고, '더 가디언'은 진보 성향의 신문이다. 선거철마다 두 신문의 정파성은 도드라진다. 영국 판매부수 1등 신문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 '탁구 게이트'를 폭로한 '더 선'이다. 더 선은 황색지로 평가받지만 하루 평균 130만 부가량 발행되는 만큼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 선은 과거 1면에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게재하기도 했다.
◇국정농단 이후 처음

한국 신문의 정파성은 영국 못지않다. 때론 너무 과해 시민 사회의 집중 견제를 받는다. 신문의 정파성은 주 수익원이자 '타깃층'인 독자의 성향과 존재를 고려하는 편집 전략이다. 주 독자층을 잃는다는 것은 신문의 편집 방향과 함께 수익 구조가 타격을 받는다는 신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정파성에 따라 논조가 갈리는 진보와 보수 언론이 한목소리를 낼 때다. 지난 2016년 말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국정농단' 사태 때 그러했다. 보수·진보 신문 가릴 것 없이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당시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각 신문의 수익구조를 떠받치는 독자들도 진영에 상관없이 "국정농단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신문이 아무리 정파성을 갖는다 해도 국정농단 사례처럼 '진영을 넘은 비판'을 감행할 때가 있다. 언론과 독자 모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판단할 때이다.
최근 들어 신문들은 또다시 일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보 신문과 보수 신문, 중도 신문을 비롯해 지상파·보도채널·종편 채널까지 전공의 집단이탈과 관련해 의료계를 비판하고 있다. 언론이 이렇게 비슷한 논조를 나타낸 것은 국정농단 이후 처음 있는 진풍경이다. 집단행동을 주도한 단체에서는 "언론이 의사를 악마화한다"고 하지만 정파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들이 왜 ‘진영을 넘은 비판’에 나섰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번 사태 초기부터 의사단체는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의료수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수 의료 패키지'라 불리는 정부의 의료 개혁 방안에는 의대 증원은 물론 필수의료 수가 인상안이 수치까지 적시된 채 포함돼 있다. 의사들은 또 형사처벌 및 고액 배상 부담을 완화해 달라는데, 정부는 '당근책'으로 이 방안을 마련한 상태다. 전공의들이 요구했던 전문의 고용 확대와 전공의 위임 업무 축소 방안도 모두 '필수 의료 패키지'에 담겨 있다.

◇배제되고 외면받은 환자들

필수 의료 패키지가 1만 명에 가까운 전공의의 반발에 따른 대규모 근무지 이탈로 이어질 사안인지는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본인들의 입장을 꼭 피력해야겠다면 집회 시위의 방법도 있고 최소한의 업무는 유지하며 압박하는 '준법 투쟁'도 할 수 있다. 지난해 대통령의 간호법안 재의요구권 행사에 반발한 간호사들도 준법 투쟁을 했고 당시 의사들은 "돌아와 달라"고 간호사들에게 호소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생의 집단 휴학도 현실화했고 의대 교수들까지 집단 사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앞서 12일 "(정부의 대응으로) 전공의와 학생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에 단호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진보·보수 언론이 합심이라도 한 듯 의료계를 비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환자가 배제돼 있다. 이는 환자의 생명권과 직결된 문제고, 정파성에 물든 언론이라도 이를 외면하기 힘들다. 환자들의 불안감이 확산하는데, '전공의와 의대생' 피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선배 의사들의 현실 인식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정부를 이기고, 시민을 이기고, 환자를 이겨서 의사들에게 남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끝을 알 수 없는 의료계 파행을 취재하면서 의사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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