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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세대는 히잡 쓰지 않기를"…이란 '히잡 시위 1년' 변화는 왔나[르포]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연대 보여줬지만 변화는 아직
반정부 시위로 이어진 히잡 시위…남성들 반발도 이어져

(테헤란=뉴스1) 김예슬 기자 | 2023-10-04 08:03 송고 | 2023-10-04 09:15 최종수정
이란 수도 테헤란 1호선 바하레스탄역에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플랫폼에 서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하철 여성 전용칸의 모습. © News1 김예슬 기자
이란 수도 테헤란 1호선 바하레스탄역에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플랫폼에 서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하철 여성 전용칸의 모습. © News1 김예슬 기자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게 전부예요. 길거리를 보세요. 히잡 안 쓴 여자가 얼마나 있죠?"

히잡을 쓰지 않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여성을 찾아 테헤란 거리를 헤맨 지 이틀째인 지난달 24일. 운이 좋게도 테헤란 중심부인 이맘 호메이니 광장 근처에서 다리아(24)를 만났다.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다리아의 연갈색 머리카락은 오후 두시의 햇살에 반짝여 언뜻 금빛으로도 보였다. 영어는 물론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하던 그는 한국 드라마, K-POP 아이돌 얘기를 할 때와는 달리 히잡 시위에 대해 묻자 이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다리아의 말마따나 테헤란 거리의 여성들 중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은 10명 중 2명꼴이었다.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까만색 차도르를 입은 채 거리를 거닐었다.

지하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여성 전용(Women Only)' 칸에선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을 이따금 찾아볼 수 있긴 했지만, 역시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뿐이었다. 테헤란을 벗어나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찾기는 더 힘들었다. 히잡을 불태우던 시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길거리도 잠잠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 인근 히잡을 쓴 여성들의 모습. © News1 김예슬 기자
이란 수도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 인근 히잡을 쓴 여성들의 모습. © News1 김예슬 기자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연대 보여줬지만 변화는 아직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던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했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연행과정에서 경찰에게 구타를 심하게 당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구타를 당하지 않았다고 반박, 무력으로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고 나섰다.

다리아는 지난해 9월 히잡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도 이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마흐사 아미니가 아니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시위에 참여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테헤란의 호스텔에서 만난 미타(23)도 다리아와 비슷한 이유로 시위에 참여했다. 쉬라즈에서 나고 자란 미타는 또래 여성들과 쉬라즈 도심에서 히잡을 흔들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했다. 미타는 "시위에 참여한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며 "히잡을 벗고 싶어서도 있지만 아미니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다리아와 미타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란 여성을 시위로 이끈 건 불안감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한국 여성들이 분노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미타는 지난해 시위 이후 변하지 않는 이란의 모습에 무력감을 느끼고 잠깐 스위스에 있는 친척집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히잡 대신 모자를 쓴 미타는 "할머니 얘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70년대)에는 히잡은 물론 안 썼고, 미니스커트도 입었다더라.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며 "우리 아랫세대도 히잡 말고 모자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미타의 바람과는 달리 이란 당국은 더욱 억압적인 정책을 예고했다. 이란 의회는 지난 20일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기 위해 이슬람 율법에 따른 복장 규정을 어기는 사람에게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가결했다.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 1주기가 불과 나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이란에 머무는 동안 여성들의 복장을 단속하는 이른바 '도덕 경찰'이 활동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란 당국의 '억압'은 여성들 생활 곳곳에 스며 있었다.

지난해 시위 이후 히잡이 선택 사항이 됐다는 건 테헤란 일부에 적용되는 얘기인 듯 보였다. 여성들은 31도 더위에도 긴 차도르를 입거나, 긴 팔과 긴 바지로 살을 가려야 했다. 인터뷰에 응했던 여성들 모두 사진을 거절하거나 익명을 요구했다. 해외 매체더라도 혹시 이란 당국에 체포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 카샨에서 차도르를 쓴 여성과 어린 아이가 밤거리를 걷고 있다. © News1 김예슬 기자
이란 카샨에서 차도르를 쓴 여성과 어린 아이가 밤거리를 걷고 있다. © News1 김예슬 기자

◇반정부 시위로 이어진 히잡 시위…남성들 반발도 이어져

히잡 착용에 반발하는 것으로 시작된 시위는 이슬람 정권 축출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도 이어졌다.

이 시위는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정권에 가장 큰 도전으로 여겨진다. 이란 당국이 시위를 미국 등 서방이 벌인 공작으로 간주하며 강경 대응을 이어온 이유다.

시위 이후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해 국민들은 가상사설망인 VPN을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유명한 유료 VPN 앱마저 차단돼 VPN 앱을 돈 주고 사용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시대가 역행하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서 만난 익명을 요구한 32세 남성은 "히잡 시위 이후 상황이 조금 변하는 듯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며 "정부가 더 통제하려 하고, 중국처럼 막힌(blocked) 나라가 돼 가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스파한에서 만난 다른 남성인 하지드(32) 역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라는 것 자체에 의문이 든다. 종교 국가라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종교도 어느 정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시위가 벌어졌다고 무작정 억압하는 건 독재 국가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 쉬라즈에서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이란 여성들은 후련하게 히잡을 벗었다. 옆 자리 여성에게 이렇게 바로 히잡을 벗어도 되는 거냐고 묻자, 그는 "어차피 이륙하면 경찰이 못 잡을 텐데 뭐" 하고 웃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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