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대한민국 우라' 피난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들까지 목청껏 외쳐

광주 고려인마을 4년만에 3·1만세운동 행사 재개
5월 광주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출범 앞두고 비전 선포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 2023-03-01 17:38 송고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홍범도공원에서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가 열려 고려인 500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홍범도공원에서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가 열려 고려인 500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2023.3.1./뉴스1

"대한민국 우라(만세), 만세, 우라(만세)"

'만세'를 뜻하는 러시아어 '우라'와 우리말 '만세'가 서로 뒤섞였다. 황토빛 금발과 새까만 흑발, 파란 눈동자와 검은 눈동자의 모습도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이역만리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고려인들의 간절함은 하나같은 모습이었다.
104주년 3·1절 기념일인 이날 오후 2시 7000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은 오랜만에 들썩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19년을 마지막으로 3년간 치르지 못했던 3·1만세운동 행사를 4년만에 다시 치르게 됐다.

한복을 차려입은 고려인 4세와 5세 어린이들은 태극기를 연신 흔들며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끊임없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행사 시작 전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3·1만세운동 행사에 앞서 월곡고려인문화관 앞에서는 카자흐스탄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고려일보'는 고려인들이 3·1독립만세운동 4주년을 기념해 1923년 3월1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한 '선봉신문'이 모태다. 소련 당국의 숙청을 피해 폐간과 복간을 거쳐 1991년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일보로 제호를 바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 관장 등 고려인 마을 관계자들은 100년 전인 1923년 창간된 고려일보를 알리는 기획 전시 '100년을 품은 뜻, 빛으로 담아내다'를 이날 진행했다.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장은 "고려일보는 나라 잃고 중앙아시아를 떠돌던 고려인들이 유일하게 구독할 수 있었던 한글 신문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들을 연결해주던 매개체였다"며 "현지에서 고려인들의 역사와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동포들의 노고를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3·1만세운동 퍼레이드가 열려 고려인 주민들이 행진하고 있다.2023.3.1./뉴스1
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3·1만세운동 퍼레이드가 열려 고려인 주민들이 행진하고 있다.2023.3.1./뉴스1

이어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부터 홍범도공원까지 고려인마을 주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고려인들이 평소 배달이나 출퇴근 용도로 쓰던 스쿠터를 일본 순사의 탈것으로 꾸미는가 하면 경차에는 태극기를 잔뜩 꽂아 퍼레이드의 선두에 세웠다.

뒤를 이어 한복을 차려입은 고려인 4세와 5세 어린이들이 따르며 웃음이 가득한 채 목청이 터져라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비교적 낙후되고 비좁은 월곡동 주택가 골목이 금새 인파로 가득 차면서 함께하지 못한 이들은 주택 옥상에서도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일파에 동참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가 열린 가운데 옥상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고려인들 모습.2023.3.1./뉴스1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가 열린 가운데 옥상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고려인들 모습.2023.3.1./뉴스1

행진을 마친 고려인 주민들은 인근 홍범도 공원에서 고려인마을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를 개최했다.

4년만에 열린 이번 행사를 위해 고려인들은 행사비 3000만원을 십시일반 마련했고 호남대 인문도시지원사업단도 행사비 일부를 지원했다. 

행사에는 죽봉 김태원 의병장 손자인 김갑제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 이사장,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을 관리하던 장원창씨, 독립운동가 박노순 선생 후손 우가이 예고르·우가이 타티아나씨, 독립유공자 최흥종 목사 손자 최협씨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김성조 전 고려일보 편집국장, 노은미 광주YMCA회장, 박병규 광산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행사장 맨 앞줄에는 지난해 전쟁을 피해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어린이들이 자리했다.

행사를 통해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사회단체, 고려인마을 주민들, 월곡동 주민들이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고 양한묵 선생의 현손 양보승씨의 선창으로 만세 삼창을 외쳤다.

기념공연으로 고려인극단 '1937'과 호남대 미디어영상공연학과와 태권도학과 학생들이 준비한 '그날, 우리는'을 선보였다.

기념공연은 1919년 3·1운동부터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거쳐 4·19, 5·18, 6·10항쟁에 이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역사를 담아 고려인들의 민족적 동질감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마련됐다.

이어 비전선포식을 갖고 고려인공동체 지원을 위해 오는 5월 광주에서 세계고려인단체총연합회 출범식을 다짐하는 비전 선포식을 갖고 만세 삼창을 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고 엘리나 양(오른쪽)과 할머니 고 릴리야씨(가운데)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국에 온 지 7년째인 고양은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다. 다들 한국 역사와 문화를 더 소중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2023.3.1./뉴스1

한국 근현대사 공연 모습을 빼놓지 않고 스마트폰에 담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5세 고 엘리나양(14·한국거주 7년)은 "대한민국 역사를 표현한 공연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며 "대한민국에 사는 모두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더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의 대모인 신조야(68) 고려인마을 대표도 "중앙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 3·1절이나 광복절을 쇠지 않기에 이번에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하는 이들도 있다"며 "고려인들에게 3·1절이나 광복절은 뜻깊은 날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병규 광산구청장도 "이역만리 중앙아시아에서 대한민국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이 누구보다 크게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감격스럽다"며 "광산구 고려인마을이 갖춘 역사적 자산을 활용해 역사테마 관광지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zorba85@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