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용산 국방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회의장단과의 저녁 만찬에서 활짝 웃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5.2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취임 보름차 정치 신인 윤석열 대통령과 여의도 정치가 만났다. 인사 문제를 두고 시작부터 당정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향후 5년간 긴밀한 당정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당정 관계는 정국 기상도와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을 가늠할 핵심이다.
윤 대통령의 직전 경력은 법조인이 유일하다. 법조인 외에 경험이 전무한 그가 검찰총장직을 버리고 3개월 만인 2021년 6월 말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이후 8개월여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 입장에선 '굴러온 돌'인 윤 대통령이 마냥 반갑기만 할 수는 없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당정 간에 갈등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신임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단적인 사례다. 집권여당 원내지도부는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윤종원 행장 내정설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을 주도한 사람에게 윤석열 정부 경제수장을 맡기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려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낙마한 정호영 보건복지부 후보자 사례에서도 당정 간에 갈등이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민심에 반하는 인사는 안된다'며 대통령실에 임명 반대 의견을 전달한 끝에야 정 후보자는 자진사퇴했다. 윤 대통령은 낙마 직전까지도 정 후보자를 임명하겠다는 의중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참모진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대통령 주변에는 전문가 그룹과 검찰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검찰 재직 당시 한솥밥을 먹은 최측근 참모들을 요직에 기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함께 호흡을 맞춘 복두규 대통령인사기획관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한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기존 정치세력과 긴장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절차를 중시하고 토론과 정쟁이 많은 여의도식 정치가 관료 출신인 윤 대통령과 참모진에게 자칫 시끄럽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 대통령이 '자기 사람은 끝까지 밀어준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면서 계파를 형성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조적으로도 정부나 여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은 어렵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292석 가운데 167석(57.19%)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은 109석(37.33%)에 그친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윤 대통령의 득표율은 48.56%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차이가 불과 0.73%포인트(24만7000여표)였다.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가장 작은 득표율 차였는데, 그 표는 무효표 30만7000여표보다 적다.
가뜩이나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책을 추진할 힘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청 갈등까지 생기면 국정 난맥이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 금리인상 여파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가 심화하는 상황이라 거대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다.
새 정부 출범 직후 통상 6개월에서 1년가량 유지되던 여야 간 '밀월기간'은 검수완박과 청문 정국을 거치며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으로 핵심 쟁점은 타결했더라도 6월 지방선거라는 큰 산을 앞두고 있다. 정국 주도권 다툼이 한층 가열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비효율적이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비효율로 치부하면서 원만한 당·청, 대야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쓴맛을 봤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마포대교를 건너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는 의미다. 이 전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과도 거의 소통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국회의 고유 권한인 원 구성조차 대통령의 입김에 좌우됐고, 정권 말까지 청와대 우위의 당정 관계가 지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초반 당정 관계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 초기에 원활한 당정 관계가 성립된다면 새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국정 과제 역시 탄력을 받게 된다. 반면 불협화음이 계속된다면 향후 국정운영은 물론 레임덕이 일찍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오섭 국정상황실장과 김오진 관리비서관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치권 인사를 대통령실 비서관에 중용하지 않은 데서 윤 대통령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드러난다"라고 지적했다.
엄 소장은 "지방선거에서 크게 승리하면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 기조가 굉장히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기존 정당에 대한 물갈이 시도가 이어지면서 (당정 간에) 긴장관계가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