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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휴가 '꿈도 못 꾸는' 어린이집 교사·택배기사들 "아파도 출근"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한상희 기자 | 2021-08-05 06:30 송고
4일 서울 동작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시민이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2021.8.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4일 서울 동작구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시민이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2021.8.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평일 오전에 백신을 맞는다고 하니까 어린이집에서 '그러면 출근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다음날 보니까 저에게 말도 없이 월차 처리를 하셨더라고요."

제주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A씨(30대)는 지난 4일 백신 2차 접종을 마쳤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A씨와 상의도 없이 1차 접종 다음날을 '월차'로 처리한 어린이집이 2차 접종 당일도 월차 처리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는 원장이 "너 혼자 평일에 백신 접종하니까 미안한 줄 알라"며 "백신 맞는 평일에 월차 쓰고 가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A씨는 백신 휴가 없이 접종 후 월차를 소진하면서도 오히려 원장과 동료 교사의 눈치를 봐야했다.

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 시 접종에 필요한 시간을 포함해 최대 4시간까지 공가 처리가 가능하고,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최대 2일까지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대체 인력을 구하기 힘든 보육교사, 택배기사 등 일부 직군의 노동자들에게 백신 휴가는 '허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북구의 어린이집 보육교사 B씨(25) 역시 백신 접종을 앞두고 원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원래 목요일 접종 예정이었던 B씨는 "백신 맞고 금요일에 아프면 애들은 누가 보냐"는 원장의 질타를 들었다. 결국 B씨는 백신 접종을 금요일로 변경해야만 했다.

B씨는 "연장반 보조교사들은 아침에 백신을 맞은 뒤 당일 출근해 오후 3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했다"며 "자신의 상황은 연장반 교사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공공운수노조가 실시한 보육교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연차 휴가 사용을 강요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응답자의 48%에 달했다. 접종 후 백신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보육교사도 46%로 나타났다. 

박인화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부장은 "교육 현장에서 보육교사가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건 굉장히 자주 있는 일"이라며 "보육교사가 쉰다고 아이들도 쉴 수 없어 보육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간·법인·국공립까지 여러 어린이집에서 근무해온 C씨(30대)는 '대체 인력'이 부족한 교육현장에서 보육교사의 백신 휴가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평일에 백신을 접종한 후 교사가 아프면 보육 공백을 채울 인력이 없기 때문에 다시 현장에 복귀해 업무를 보게 한다는 것이다.

가마솥더위가 이어진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택배노동자가 집하작업을 하고 있다. 2021.7.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가마솥더위가 이어진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택배노동자가 집하작업을 하고 있다. 2021.7.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택배기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백신 접종 후 쉬지 못하고 출근해야만 한다. 

지난달 19일에는 경기도 지역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이모씨(39)가 백신을 맞고 다음날 평소와 똑같이 출근해 일하다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택배기사로 일하는 김윤씨(52)는 "저희 영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3분의 1이 백신을 맞았는데, 백신을 맞은 당일에도 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저희가 쉬고 싶으면 저희 대신 일할 수 있는 인력, 소위 말하는 '용차'를 구해야한다"며 "저희가 한 건에 880원을 받는데 용차는 한 건에 2500원을 지불해야한다. 쉬려면 그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하니까 휴가를 못 낸다”고 하소연했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택배 물량은 매일 오니까 휴가를 내면 다음날에 노동자 본인이 밀린 물량을 다 처리해야 한다”면서 “롯데택배는 용차를 불러서 노동자들의 백신 휴가 동안에 물량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CJ대한통운은 동료기사들이 대체 배송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백신 휴가를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대체 배송을 해줄 인력을 구하지 않으면 사실상 백신 접종 후에도 휴가를 내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현재 롯데택배와 CJ대한통운 이외의 택배회사들은 백신 휴가를 부여하지 않는다.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백신 휴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수원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김모씨(50대)는 "회사에 백신 휴가가 없어서 백신 맞은 다음 날에 출근했다"며 "인력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백신 휴가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내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백신 휴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 당일과 다음 날은 굉장히 피곤하고 졸려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며 "백신 맞은 다음날까지는 휴가를 보장하는 게 사고 방지뿐만 아니라 인권 보호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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