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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양양군의 큰 일꾼' 권홍영 집배원의 하루

강원지방우정청 오지마을 집배원 탐방⑤

(양양=뉴스1) 권혜민 기자 | 2014-05-23 21:59 송고
편집자주 강원지방우정청과 뉴스1 강원취재본부는 강원도 오지 산간마을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의 하루 일과와 가족같은 사이가 된 집배원과 주민들 간 미담사례 등을 매월 취재해 연재한다.
강원 양양우체국에 근무하는 권홍영(49) 집배원이 22일 배달준비를 서두른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 © News1


22일 아침 양양우체국에 도착한 권홍영(49) 집배원은 배달준비를 서두른다. 양양군의 어성전리, 법수치리, 면옥치리를 담당하는 권씨가 배달할 우편물은 200여통에 달했다.
'강원 양양군' 하면 바다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설악의 끝에 있어 골이 깊고 비포장 산길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사륜구동차가 없으면 배달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권 집배원은 먼저 첫 번째 배달지역인 어성전리로 향했다.

어성전의 뜻은 '물고기가 밭을 이룬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뜻이다. 남대천 상류지역에 물고기가 많고 성 같은 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곡식 또한 풍부해 처자식 부양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도착하니 농사일을 나가려고 준비 중인 한 마을 주민을 만났다. 그가 "이곳 봄바람은 유난하다"고 말했다.

농사를 시작하는 5월에 부는 바람은 불청객이다. 가뜩이나 건조한 봄에 수년 전 이곳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장본인이며 젖어있어야 할 모판을 메마르게 하고 떠버리게 만들어 못쓰게 한다. 또 갓 올라온 고추 등의 새순을 부러뜨려 한 해의 농사를 망친다.

마을 사람들은 이맘때쯤 바람을 '고비를 넘겨야 농사가 잘 되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고부(고비)바람'이라고 부른다.

어성전리 배달을 끝낸 후 법수치리로 향했다. 남대천 상류지역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펜션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산 속 깊은 곳 까지 펜션이 들어서면 그 만큼 집배원들의 배달 여건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권씨는 "우편물은 줄어들고 있다는데 여긴 펜션들이 늘어나서 인지 오히려 우편물이 많아지는 것 같네요"라며 어려움을 에둘러 얘기했다.

건널 다리도 없는 곳에 들어선 펜션으로 가려면 강위에 임시로 다져놓은 길을 따라 건너야 한다. 장마철에는 다리가 끊어지기도 해 먼 길을 걸어 배달하기도 한다.
권홍영 집배원이 최영실씨가 운영하는 펜션에 도착해 수취함을 들여다보고 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 © News1


이윽고 마을주민인 최영실 씨가 운영하는 펜션에 도착하니 "수취함에 새가 집을 지어놨다"며 새집을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새집을 옮기려니 새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집이 망가질까하는 걱정 때문이다.

권씨는 마을 주민의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다. 수취함에 자리 잡은 새집은 곧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어 양인승(70), 안순한(66) 부부의 집에 도착해 빈집 문을 열고 들어서 미리 부탁 받은 우체국박스 5개를 배달했다. "농사일로 낮에 집을 비워야 하니 입구 옆에 잘 놓아 달라"는 부부의 부탁 때문이다.

다음 배달장소로 이동했다. 서봉순(70) 할머니가 집 밖까지 나와서 우편물을 받아갔다. 아들하고 관련 있는 우편물이라고 했다. 아들이 보낸 특별한 편지인가 싶어 물었더니 아들이 사용한 신용카드 고지서다. 생각과는 달리 그것이 곧 아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에는 전망 좋은 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배수겸(62)씨가 커피를 타서 내왔다. 배달하면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는 것이 인정 많은 주민들의 인사법이다.

배씨는 "여기 시골 마을 사람들은 집배원이 없으면 불편해서 못살 겁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말은 '시골지역 집배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일꾼'이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권씨를 의지하는 마을사람들이 많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다. 권씨가 배달하는 것은 우편물만은 아닐 것이다.
양양우체국 권홍영 집배원과 김성수 씨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5.22/뉴스1 © News1


배달이 이어지고 모 기업체 연수원에서 권씨가 '우리 형님'이라며 소개한 김성수(62)씨를 만났다. 흰 수염에 웃는 인상까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200% 이상 해내고 있는 친구입니다"라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권홍영 집배원은 경북 예천 출신이다. 약초재배와 농사 등 다른 일을 해오다 10여년 전 아내의 고향인 양양에 들어와 정착했다.

마을주민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호탕함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다.

다음 배달장소에서 전직 경찰인 배정순(58·여)씨를 만났다. 배씨는 산림청에서 산사태가 걱정된다며 사유지에 사방댐을 지으려고 해 씨름을 벌이는 중이다. 권 집배원은 "들어가는 입구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아 걱정"이라는 배씨의 말에 "공사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양양우체국 권홍영 씨가 법수치리 마을 주민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5.22/뉴스1 © News1


배달 중 이장수(63)씨가 산불감시초소를 지키다 차를 막아섰다. "비도 왔는데 무슨 산불감시냐"고 묻자 "산나물 불법 채집꾼을 단속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이 시기에 가방을 들고 산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불법채취자로 오인 받기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세 번째 마을 면옥치리로 향했다. 마을 중 비포장 산길구간이 가장 많아 배달하기에 가장 어려운 곳이다. 법수치 계곡에서 넘어가는 시작부터 비포장 길이 시작돼 차가 덜컹인다.

힘 좋은 사륜구동차가 헉헉대며 헛바퀴를 돈다. 산 하나를 넘으니 컨테이너 4동이 보인다. 이곳에 권씨가 배달한 것은 두 장이다.

깊은 산골을 따라 가다보니 홀로 사는 김길래(80) 할머니 집이 보인다. 김 할머니는 자식 7명 중 5명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냈다. 이제 남은 자식은 둘뿐이다.

김 할머니는 "자식을 먼저 보낸 죄인인데 나는 왜 안 데려 가는지 모르겠다"며 회한 섞인 혼잣말을 늘어놨다. 남은 자식들은 그마저도 생업에 쫓겨 얼굴보기 힘들다.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권 집배원이다.

김 할머니는 권씨가 도착하자 문 앞까지 나와 반겨줬다. 잠시 방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할머니가 권씨의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집배원은 할머니의 아들이자 친구다.
양양우체국 권홍영 집배원은 양양 면옥치리 서종원 씨의 말동무이자 아들 같은 존재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 © News1


마지막에 특별한 주민 한명을 만났다. 검은색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서종원(76) 할아버지다. 권씨에 따르면 집배원은 배달하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권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서씨를 위해 도착한 우편물을 모두 읽었다.

할아버지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통로는 집배원이다. 방안에는 할아버지의 귀여운 애완견인 뚱이가 권씨를 흘끔 쳐다보고 있었다. 권씨는 뚱이에게 "할아버지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하며 문 밖을 나섰다.


hoyanar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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