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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고성 진부령' 넘나드는 박진수 집배원의 희망배달

강원지방우정청 오지마을 집배원 탐방⓷

(고성=뉴스1) 권혜민 기자 | 2014-03-20 21:59 송고
편집자주 강원지방우정청과 뉴스1 강원취재본부는 강원도 오지 산간마을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의 하루 일과와 가족같은 사이가 된 집배원과 주민들 간 미담사례 등을 매월 취재해 연재한다. [편집자주]
20일 강원 고성군 진부리와 흘리 지역을 담당하는 간성우체국 박진수 집배원(오른쪽)이 우편 배달을 하며 마을 주민과 즐겁게 대화하고 있다.(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3.20/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20일 강원 고성군 진부리와 흘리 지역을 담당하는 간성우체국 박진수(43) 집배원은 이른 아침부터 배달준비에 한창이다.
대학생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는 대학생 자녀를 둔 대한민국의 어엿한 가장이다. 그가 오늘 배달할 우편물은 250여통.

그가 있는 고성군은 금강산으로 가는 통로이자, 북한과 맞닿아 있어 일명 ‘금강산의 관문’이라고 불린다.

영서지방에서 고성으로 가려면 미시령터널을 거치거나 진부령을 넘어야 한다. 인제군 용대 삼거리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진 46번 국도를 타면 알프스리조트 입구와 진부령 고개를 만난다. 이곳에서 진부령을 넘어서면 고성이 나타난다.
그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진부리와 흘리는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강원도 최북단 산간마을이다.

진부리와 흘리에는 4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약초판매, 피망농사와, 생태체험 및 휴양시설, 황태덕장 운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배달 준비를 마치고 첫 번째 배달지인 진부리로 향한다.

간성우체국에서 차로 40분 정도 이동하면 재추마을에 도착한다. 주민들이 우편물을 받기위해 마을 앞길까지 나와 있다. 주민들은 “아무리 먼 곳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배달되니 우체국택배가 최고”라며 그를 반겨준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처럼 봄이 왔지만 산간마을 깊은 곳에는 아직 눈이 쌓여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월 중순에도 여전히 눈이 쌓여 있는 강원 고성군 진부리 산길.(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3.20/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소똥령옛길 표지가 보이는 눈 쌓인 길을 20분가량 올라간 끝에 강아지를 벗 삼아 지내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이 연금관련 우편물을 보고는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내자 그는 성심성의껏 답변한다.

그는 눈 많은 산 골 깊은 곳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을 보면 마음은 아프지만 안녕하시라는 인사를 건네고 다음 배달을 위해 발길을 돌린다.

마을 깊은 곳은 아직 눈으로 덮여 있어 차로 들어갈 수가 없다. 쌓인 눈이 녹지 않아 막다른 골목에 몰리기를 서너 차례. 2km 넘는 길을 후진으로 되돌아 나올 때는 긴장한 탓인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지난 달 중순 강원 영동지역에 1m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그때 쌓인 눈은 3월 중순이 된 지금까지도 녹지 않고 있다.

배달에 집중하다보니 어느 덧 해가 중천에 떠있다. 이제 진부령 정상에 도착했다. 인제군 용대리로 배달을 가려면 진부령을 넘어야 한다.

진부령은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 남한의 최북단 고개로 예전에는 동서를 잇는 유일한 오솔길이었다. ‘신라경순왕 김부가 넘은 곳’이라 해 김부령으로 불리다 진부령이 됐다고 전해진다.

진부령의 또 다른 이름은 ‘조쟁이’와 ‘조장이’다. 영서지역의 곡식과 영동지역의 해산물이 고갯마루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새벽장이 서게 됐다. 사람들은 이를 조장(아침장)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곳은 6·25전쟁 이전까지 북한 땅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북으로 가거나 위협을 피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때의 아팠던 흔적은 진부령 정상 전적비에 그대로 남아있다.

20일 강원 고성군 진부리와 흘리 지역을 담당하는 간성우체국 박진수(43) 집배원이 우편 배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3.20/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그는 진부령 정상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는 주로 도시락을 싸다닌다. 도시락 중 최고는 산채밥이란다. 점심을 먹다보니 그가 집배원이 된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는 어린시설부터 유난히 병치레가 심했고 5년 전부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러다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운동이 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집배원 일을 택했다.

진부리와 흘리에는 산길이 많아 차로 배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걸을 때가 많다. 덕분에 매일 운동 삼아 걸어서 배달을 한다. 몇 해가 지나자 박 집배원의 건강도 회복됐다고 한다.

산골 깊은 곳을 걸어서 배달하는 게 힘들 만도 하건만 그는 “즐겁다”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일본 방사능 여파로 동해안 황태 소비가 줄면서 인제 용대리 황태덕장이 텅 비어있는 모습이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3.20/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진부령을 넘어 인제 용대리 마을로 이동했다. 어찌된 일인지 가득 매워져 있어야 할 황태 덕장이 절반 이상 비어있다.

그는 “동일본대지진 때문에 발생한 방사능 여파로 인해 황태 소비가 줄면서 벌어진 일이다. 팔리지 않은 황태가 아직 창고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성은 ‘금강산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부터 관련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은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에 설상가상으로 방사능 문제까지 생겼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용대리 배달을 끝낸 후 다시 진부령 정상으로 이동해 알프스리조트가 있는 흘리로 향한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는 흘리(屹里)는 해발 1052m의 마산 아래에 펼쳐진 고산지다. 이곳은 한때 스키장을 찾는 사람들로 전성기를 이뤘다. 스키를 찾는 사람들의 고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눈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키를 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적은 끊기고 문 닫은 리조트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방치돼 있다. 멈춰버린 시계탑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20일 강원 고성군 진부리와 흘리 지역을 담당하는 간성우체국 박진수(43) 집배원이 지금은 문을 닫은 알프스리조트에 우편 배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3.20/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지금은 안전상의 문제로 관리인 한 명이 리조트를 지키고 있다. 이 넓은 리조트에 배달한 우편물은 겨우 몇 통에 불과하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리조트는 문을 닫았다. 거기에다 황태 장사까지 어렵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피망농사가 주민들의 마지막 희망이 됐다. 흘리 구석구석에는 피망농사를 짓는 하우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박 집배원은 “피망농사는 그나마 어려운 이 지역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마지막 집이다. 몸이 아파 홀로 지내는 김춘규(80)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그는 매일 이 집을 찾아 우편물을 배달하고 할머니의 안부를 살핀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배달 전 보건소에서 약을 타와 우편물과 함께 전해드리기도 한다.

할머니는 “나에게는 손 과 발 그 이상이 되어 주는 사람”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할머니 집 문을 두드렸겠지만 할머니는 그 이상의 것, 그의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

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 © News1 권혜민 기자


이날 박진수 집배원이 차로 이동한 거리는 80km에 달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배달이 끝이 났다. 간성우체국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통일의 관문 고성’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안타깝지만 고성은 규모가 작아 이곳을 총괄하는 우체국이 없이 속초우체국에 소속돼 있다. 고성군은 특히나 남북한에 걸쳐 있어 남쪽지역 보다 북쪽지역이 더 넓다. 통일의 그날이 오면 금강산의 관문인 이곳에 큰 우체국이 생기길 염원해본다.


hoyanar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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