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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양구 상무룡리 희망배달원' 김동훈 씨의 하루

강원지방우정청, 오지마을 집배원 탐방 ①

(양구=뉴스1) 권혜민 기자 | 2014-02-21 21:59 송고
양구우체국 김동훈(45) 씨는 양구읍 상무룡리 우편물 배달을 담당하는 집배원이다.(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2.21/뉴스1 © 권혜민 기자


강원 양구군의 아침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내려간 21일 오전10시. 강원지방우정청 양구우체국 소속 김동훈(45) 집배원이 우편물 배달 준비에 한창이다.
김씨는 대한민국 국토 정중앙에 위치한 강원 양구군 상무룡리를 담당하는 집배원이다.

상무룡리는 화천댐을 막아 생긴 파로호 상류에 위치한 일명 ‘육지속의 섬’으로 52가구 9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수몰지역에서 주먹도끼, 찍개, 사냥돌 같은 구석기 선사유물이 출토되면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파로호의 원래 이름은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큰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 같다’는 뜻의 대붕호(大鵬湖)다. 지금은 ‘오랑캐를 깨뜨린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로 불린다.
파로호에 위치한 상무룡리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양구우체국에서 파로호 월명리 선착장까지는 승용차로, 선착장에서 상무룡리까지는 배로, 상무룡리에 도착해서는 이륜차로 배달해야 한다.

월명리 선착장에 도착해 30분이 넘도록 시동키를 당겼다, 놨다를 반복하자 가까스로 시동이 걸렸다. 김씨는 “추위 탓에 기름이 얼어 위로 잘 솟구치지 못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양구우체국 김동훈 집배원이 양구읍 상무룡리 우편물 배달을 위해 파로호 월명리선착장에 세워진 배의 시동을 걸고 있다.(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2.21/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김씨는 “이렇게 맑은 날씨에 여기 온 건 운이 좋은 것이다. 겨울에는 바람 없이 맑은 날이 별로 없긴 하지만 바람이 조금만 불거나 파도가 치면 배가 작아서 배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20여분정도 가니 4가구가 모여 사는 상무룡2리 아홉사리 마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니 때 아닌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선 “이 소리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니라 얼음이 우는 소리다. 얇게 언 얼음이 파도를 만날 때 이런 소리가 난다”며 “얼음이 우는 이때가 배달하기에 가장 위험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추운 겨울 얼음이 두껍게 얼면 호수위로 이륜차가 다녀도 되지만 그때마다 얼음에 금이 가면서 천둥치는 소리가 난다”고 덧붙였다.

아홉사리 마을에 도착한 김 집배원은 “주민들은 모두 배를 타고 앞마을에 마실 나가서 집에 없다”고 말하면서 배달할 채비를 갖췄다.

그의 핸드폰에는 상무룡리 50여 가구 주민들의 연락처가 저장돼있다. 김씨는 급히 전달해야 할 우편물이 있으면 꼭 전화를 먼저 한다. 반대로 주민들이 급할 때면 김 집배원에게 먼저 전화하기도 한다.

김씨는 전화로 부탁 받은 우편물을 선착장 수취함에 넣고 8가구가 사는 서호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주민들은 종종 김씨에게 심부름을 부탁한다. 시골마을 집배원들은 이런 저런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효자다. 주민들이 주로 부탁하는 것은 의외로 소금, 간장 같은 작은 것들이다. 하지만 소금과 간장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 우편물 배달을 담당하는 김동훈 집배원과 상무룡2리(서호마을) 이장 홍순하씨. 그리고 이들 옆에는 서호마을 길잡이 백구.(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2.21/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서호마을 선착장에 도착하자 진돗개 한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김씨를 반겼다. 이 진돗개의 이름은 백구다.

김씨에 따르면 백구는 배달할 집을 안내해주는 길잡이다. 김씨의 말을 듣고 보니 신기하게도 백구가 김씨를 앞에서 배달할 집을 안내하고 있다.

이날 마지막 배달지는 홍순하(65) 이장 댁이다. 사실 김씨는 상무룡리를 담당한지 1년 밖에 안 된 새내기 집배원이다. 홍 이장은 김씨가 처음 이곳 배달을 시작했을 때 “너와 나는 지금부터 친구”라며 김씨를 도왔다.

홍 이장은 마을에 사람이 들어오면 기쁜 마음에 지하관정도 뚫어 주고 각종 어려운 일도 직접 해결한다.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오면 위화감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그냥 같이 살아가는 곳일 뿐이다”라며 크게 웃었다.

홍 이장은 “서호마을은 통일이 되면 금강산을 가기 위해 꼭 거쳐 가야 하는 마을로, 평화의 댐을 축조하기 위해 댐 물을 비우는 과정에서 고인돌과 선사유적지가 발견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며 마을 자랑을 늘어놨다.

물에 잠기기 전 서호마을에는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인 ‘삼거리장터’가 있었다. 예전에는 서호마을에서 금강산까지 자전거로 3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서호마을에서 상무룡1리로 향하는 길에는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호수가 있다. 얼음이 녹으면 배로 이동할 수 있지만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아 월명리 선착장으로 되돌아가 양구 읍내를 거쳐 반대방향으로 20여km 정도 가야한다.



화천댐을 막아 생긴 양구군 파로호..(강원지방우정청제공).2014.2.21/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월명리 선착장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김씨는 집배원이 된 사연을 털어놨다.

김씨는 "전임 집배원이었던 친구의 부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며 "상무룡리에 우편물을 배달하려면 배도 있어야 하고, 배 면허와 이륜차 면허도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 산중에 배면허가 있는 사람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랜 고민 끝에 친구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계절마다 달라지는 배달환경과 생각보다 적은 보수에 힘들고 어려운 때도 있었다.

김씨는 ‘이렇게 어려운 일을 왜 계속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곳에서 태어나고 40년 넘도록 여기를 떠나기 싫었던 이유는 여기 호수가 좋고 물이 좋았기 때문이다. 강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좋다”고 답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들어가다 보니 첫 번째 집이 나왔다. 집주인 노부부가 손수 커피를 타서 김씨를 맞이했다. 사람은 귀하지만 인정이 넘치는 곳이다.

상무룡1리에는 주로 60대 이상 노인들이 산다. 김씨는 이 곳 배달을 시작하면서 집집마다 문을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마을 어르신들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육지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양구 상무룡리를 가려면 차로호 월명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양구우체국 김동훈 집배원이 우편물 배달을 위해 배에서 내리고 있다.(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2.21/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배달이 막바지를 향해간다. 김씨가 선착장에 보관된 이륜차를 보여준다. 아직 호수 얼음이 녹지 않아 배가 못 움직이자 이륜차도 덩달아 쉬고 있다. 따뜻한 봄이 오고 얼음이 녹으면 이륜차도 다시 제 역할을 할 것이다.

배달 완료 시간은 오후 3시. 배달 거리만 100km가 넘는다. 피곤할 만도 하지만 김씨는 “할 일이 많다”며 우체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로호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을 보니 상무룡리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oyanar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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