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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강릉 부연마을 지킴이' 이완수 집배원의 하루

강원지방우정청, 오지마을 집배원 탐방 ②

(강릉=뉴스1) 권혜민 기자 | 2014-02-28 21:59 송고
편집자주 강원지방우정청과 뉴스1 강원취재본부는 강원도 오지 산간마을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의 하루 일과와 가족같은 사이가 된 집배원과 주민들간 미담사례 등을 매월 취재해 연재할 계획이다.
강릉시 연곡면 부연마을 우편물 배달을 담당하는 주문진 우체국 이완수 집배원.(강원지방우정청 제공) © News1 권혜민 기자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28일 아침. 아직 살을 에는 듯한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문진 우체국 이완수 집배원의 하루는 어김없이 시작된다.
이완수 씨의 하루일과는 아침8시 우편물 구분작업으로 시작된다. 자신 몫의 작업이 끝난 후 동료들을 도와주는 이씨는 주문진 우체국의 맏형이다.

이씨가 배달은 맡은 지역은 우체국에서 20km 떨어진 강릉시 연곡면 부연마을. 이륜차로는 1시간 거리다. 작업을 마친 이 씨는 6번 국도를 타고 부연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도착 시간은 11시.

부연마을은 첩첩산중 속 숨어있는 요새 같은 마을이다. 맑은 물에 가마솥처럼 생긴 넓은 소가 많아서 ‘가마소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일제 때 ‘부연’(가마모양의 연못)으로 그 명칭이 굳어졌다고 하는데 ‘가마소 마을’이라는 이름이 더 예쁜 것 같다.

마을입구에서 6km에 걸쳐 있는 전후재를 통과해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전후재는 앞뒤거리가 같다는 뜻에서 유래한 명칭인데 입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가파르다.
이완수 집배원이 강릉 부연마을로 가려면 구불구불한 전후재를 지나야 한다.(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2.28/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이 재는 가파른데다가 구불구불하게 급경사 져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집배원 경력 30년의 이씨도 긴장하는 눈치다. 그는 급커브를 돌 때마다 빵빵 경적을 울린다.

전후재 오르는 길에 그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씨는 1984년 10월 연곡우체국에 근무할 시절 이곳을 걸어서 넘었다. 전보가 오는 날이면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면서도 누군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릴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며 배달에 나섰다.

산속에 고립된 마을은 겨울이면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어느 겨울에는 폭설로 마을에 고립되기도 했다. 그는 “그때 당시 동네사람들과 마을주민 집 아랫목에 모여앉아 밤새도록 얘기꽃을 피우다가 새벽녘에야 부랴부랴 눈길을 헤치며 마을을 벗어났다”며 추억에 잠겼다.

이어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려 이륜차로도 배달이 가능해졌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씨에 따르면 부연마을 사람들은 6·25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 70~80년대 무장공비가 자주 출몰하던 시절 ‘여기는 사람이 못 살 곳’이라며 떠나간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무장공비 덕분에 군인들이 길을 닦게 되었으니 세상만사 새옹지마다.

강릉 부연마을 입구에 있는 표지석. 표지석에는 '작은 동물이 지나가고 있으니 서행합시다'라는 글귀가 있다.(강원지방우정청 제공) © News1 권혜민 기자

이 씨를 따라간 산속마을은 고요했다. 마을 입구에는 ‘작은 동물이 지나가고 있으니 서행 합시다’라고 쓰인 표지석이 서있다. 따뜻한 마을이다.

그는 “겨울이면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일이 자주 있다”며 “눈이 많이 쌓이면 동물들이 배를 굶지 않게 집 앞에 먹이를 놔두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마을입구 표지석 글귀는 동물도 부연마을 한 가족이라는 뜻으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겨울에 집을 비웠다가 봄이 되면 약초농사와 산촌체험마을을 운영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북적대던 마을이 겨울만 되면 사람 발길이 끊긴다.

이씨는 처음 도착한 집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없다. 그는 많은 집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지만 문을 꼭 두드려본다. 배달 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강릉 부연마을의 수호목이라는 '제왕솔'(강원지방우정청 제공).2014.2.28/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마을을 지키는 적송은 제왕솔이다. 제왕솔은 수령 500년 이상 된 마을의 수호목이자 국내 최대의 금강송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고 해서 ‘호랑이 솔’이라고도 불린다.

마을의 수호목이 제왕목이라면 부연마을 지킴이는 이완수 집배원이다. 그는 우편물을 배달하기 전 반드시 문을 두드린다. 이 겨울 오지마을 주민들에게는 ‘안녕’의 두드림이다. 도회지에 사는 자녀들이 시골집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는 집배원의 보살핌 아래 전달된다.
부연분교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각지로 알려졌다. 학생들이 하나 둘 떠나 폐교가 된 부연분교는 산촌마을 체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그는 눈 덮인 부연분교를 바라보며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버렸는지 모르겠네요. 지난 시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아쉬움 속에 남겨뒀습니다...”라고 읊는다.

그러면서 연신 올해 3살 된 손자 자랑이다. 배달을 마친 그는 다시 주문진우체국으로 향한다. 아직 배달을 끝내지 못한 동료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맏형 다운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배달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건 마을 주민들 모두가 ‘안녕하다’는 뜻이다.
이완수 집배원과 강릉 부연마을 주민의 화기애애한 모습(강원지방우정청 제공) © News1 권혜민 기자


hoyanar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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