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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소양호 고립마을의 희망 통로' 김영권 집배원

강원지방우정청 오지마을 집배원 탐방④

(춘천=뉴스1) 권혜민 기자 | 2014-04-25 06:53 송고
편집자주 강원지방우정청과 뉴스1 강원취재본부는 강원도 오지 산간마을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의 하루 일과와 가족같은 사이가 된 집배원과 주민들 간 미담사례 등을 매월 취재해 연재한다.
강원 홍천군 자은우체국 소속 김영권 집배원(오른쪽)은 춘천 북산면 조교리, 물로리 지역 우편배달을 맡고 있다. 이 마을은 소양호에 고립된 마을로 김 집배원은 마을주민들과 세상 간 소통의 통로가 돼주고 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4.25/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25일 오전 9시 강원 홍천군 자은우체국 김영권(51) 집배원은 직원들과 “실천하는 안전운전, 행복한 나의 가정 안전지킴이 자은우체국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우렁차게 외친 후 적재함 가득 우편물을 싣고 조교리로 향했다.
김 집배원은 강원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 물로리 지역을 맡고 있다. 이곳은 104가구, 3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소양댐 상류에 위치한 작은 섬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춘천시 북산면이지만 우편물은 홍천 자은우체국에서 배달한다. 소양호에 고립돼 배로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은우체국에서 약 11km, 원동리를 지나 구불구불한 삽다리 고갯길을 넘어야 조교리가 나타난다. 호수 가까운 수몰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높은 재를 넘어야 마을이 나타난다. 삽다리 고갯길은 경사가 심해서 승용차로도 쫓아가지 못할 정도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 마을에도 완연한 봄이 왔다. 만발한 봄꽃들이 지천에 가득하다. 조교2리의 첫 번째 집에 도착했다.
봄을 맞은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에 벚꽃이 만개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4.25/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그 곳에서 농사준비에 여념이 없는 윤득모(77)씨를 만났다. 우편물만 주고 가려했는데 모판 만드는 법, 농약살포기 작동법 등을 물으며 김 집배원의 발길을 잡았다.

그는 우편물보다도 농사일 어려운 점을 물어보고 또 그걸 대답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로 산 농약살포기가 말썽인 것 같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김영권 씨는 1996년부터 집배원 생활을 시작했다. 휴일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해왔기에 해박한 농사 지식을 갖고 있다.

이어 조교 2리로 향했다. 길을 따라 맑은 개울이 이어진 가운데 개울물에서 빨래하는 할머니가 눈에 띈다.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겨운 마을이다.

물로리와 조교리 갈림길에서 조교1리 최성배(59) 이장을 만났다. 오미자 밭에 비닐을 덮고 있었다. 그는 이 곳 오지마을 택배배달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윤이 남지 않아 택배회사가 들어오지 못하는데 우체국에서 도맡아 배달을 해주니 지자체 예산으로 우체국을 지원해주면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산간오지 택배배달은 우체국이 도맡아 하고 있다.

조교2리 모예골 끝자락. 임도 포장길을 20여분 가량 들어가니 이영자(77) 할머니가 택배를 받으러 나왔다. 택배는 경기 광주에 사는 며느리가 보낸 기침약이란다.

이씨는 “우체국 택배가 없으면 이 약을 받을 수가 없어요. 여긴 약국이 없으니 우체국 택배가 약국이에요”하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모예골은 약 10여가구가 흩어져 사는 마을이다. 과수원집 앞에 이륜차를 세웠다. 지금부터는 이륜차로도 통행이 어려운 산길이 시작되기에 걸어서 30분을 이동해야 한다.
소양호의 전경. © News1

걷다 보니 작은 집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김근호(75)씨를 만났다. 낭떠러지 같은 산비탈 꼭대기에서 도라지 씨를 뿌리다가 집배원이 왔다고 소리치니 반갑게 맞아주신다.

김씨는 "멀리서 왔으니 커피를 대접해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가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줬다. 백발이 성성하지만 밝게 웃는 인상이 참 매력적이다.

모예골을 벗어나 조교2리 마을 끝 집으로 향했다. 강아지가 많은 집인데 주인은 없었다. 이 마을에는 장뇌삼을 재배하는 주민들이 많다. 이번에 도착한 집 주민도 산에 삼을 심으로 갔다고 한다. 삼은 싹이 나기 전에 심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산에 심어놓은 장뇌삼 때문에 이곳에서는 산에 함부로 들어가면 도둑으로 오인 받는다. 마을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어 침입과 동시에 경보가 울리면서 경찰이 출동한다.

발걸음을 옮겨 소양호 조교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육로로 갈 수 없는 곳에 사는 5가구를 위한 우편함인 보관교부지가 있다. 이곳에 우편물을 넣어 두면 마을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와서 우편물을 가져간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장마철 소양댐 수위가 높아져 물이 차오르면 수취함을 뽑아서 높은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물이 차오르는 시기를 놓치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수취함을 뽑아 옮겨야 한다. 사실 집배원의 수고를 덜려면 보관교부지를 늘려야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김영권 집배원은 육로로 갈 수 없는 지역에 사는 마을 주민을 위해 소양호 조교리 선착장에 설치된 보관부교지에 우편물을 넣어 놓는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4.25/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조교리 배달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지마을이라 식당이 없어 보통은 조교리의 본가에서 식사를 해결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자은우체국장이 직접 도시락을 싸 마을회관으로 나왔다.

인근에서 오미자 밭을 일구던 조교1리 이장도 함께 했다. 그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과 집배원의 고생했던 여러 일화 등을 들려줬다.

점심을 서둘러 먹고 물로리로 향했다. 조교리로 가기 위해 지나왔던 마을회관 앞 갈림길에서 물로리 방향으로 다시 와서 물로고개를 넘었다. 조교리에 비해 골은 훨씬 깊었다. 김 집배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교리는 ‘도시길’이다.

물로리는 무로골 또는 무로곡에서 유래됐는데 ‘늙지 않는 마을’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 예로부터 주변경관이 뛰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다고해서 붙여졌다.

김 집배원은 “물로리라는 명칭 때문에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하고 놀러온 사람들이 물놀이는 커녕 땡볕 아래에서 호수만 보고간다”며 우스갯 소리로 얘기했다.
우편물을 받은 마을주민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4.25/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명칭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에는 70세가 넘은 노인들이 많이 산다. 물로리 첫 번째 골 깊은 곳에는 6.25전쟁 때 대위로 전역하고 홀로 지내는 전요현(85)씨가 산다.

그와의 얘기가 끝 없이 이어졌다. 김 집배원이 "가장 힘들 때는 일 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말을 끊고 돌아서야 할 때를 모를 때"라고 귀띔했다.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공과금을 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배달을 위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물로리 깊은 곳을 한참 들어가니 산에 가려있던 소양호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소양강댐은 강원도의 험하고 높은 산을 막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댐 건설 후 대부분의 집이 수몰됐다. 또한 주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진입하는 길이 매우 비탈졌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배달은 계속 이어지고 승용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이륜차를 타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서광선(86), 변순애(78)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지난 겨울 협심증으로 갑자기 쓰러진 할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해 구급대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옮겼던 사람도 김영권 집배원이다.

재작년에도 그런 일이 있어 할머니는 “2번이나 우리 할아버지 목숨을 구한 영웅”이라며 집배원에게 엄지손가락을 펴보였다.
김영권 집배원은 지난 겨울 배달 중 집에서 쓰러진 마을주민을 발견하고 변원으로 신속히 옮겼다. 김 집배원은 우편배달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의 안위를 살피는 가족 같은 존재다.(사진제공=강원지방우정청).2014.4.25/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훌륭한 일을 알리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하니 김 집배원은 “당연한 걸요. 뭘…”이라며 말을 돌렸다. “겨우 내 할아버지가 집에 없어서 강아지 3마리 밥 챙겨주느라 혼났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을 어귀마다 산불감시원들이 지키고 서있다. 이들도 마을주민이다. 김 집배원은 어디에 누가 있는 지 마을주민 대부분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다. 산불감시원들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자 마을 출입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우리도 차량번호와 핸드폰번호를 제출하고 나서야 마을로 들어살 수 있었다. 외부 출입자가 불이라도 내면 큰일이다.

마지막 배달장소는 가리산 끝자락에 위치한 은주사다. 지난해 여름 수해를 크게 입어 들어가는 입구가 어지러웠다.

비포장 산길 1km가 이어졌다. 이곳에 택배를 배달하려면 우체국에서 사륜차에 택배를 싣고 배달한 다음 다시 우체국에 들어가서 이륜차로 나머지 구역을 배달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택배가 없고 신문 같은 일반 우편물만 있었기에 걸어서 올라갔다.
김영권 집배원이 배달을 맡은 춘천 북산면 조교리, 물로리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다. News1

비포장 길이라 걷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경사가 심한 곳이라 김 집배원이 지난 겨울 눈길을 헤치고 힘들게 배달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비구니 스님 몇 분만이 살고 있는 곳, 은주사. 이곳에서 10분정도 올라가자 이 지역 최고의 명당 한천자의 묘가 나타났다.

배달을 마치고 다시 자은우체국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30분. 오늘 움직인 거리는 차로만 약 70km다. 걷거나 이륜차로 다닌 거리까지 합하면 100km가 넘는다.

집배원의 기본적인 업무야 우편물 배달이지만 산속 깊은 곳에 홀로 사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건강악화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가장 먼저 발견하고 연락해 주는 응급구조사의 역할도 한다,

요즘 같은 건조한 봄에는 산불을 예방하고 신고하는 역할도 하는데다 농사일 자문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산간오지 마을에 집배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hoyanar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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