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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 죽여 달라" 무속인 여동생에게 '불륜 의심' 남편 청부 살해

3명이 공모, 교통사고 위장…공범 말실수 13년만에 들통[사건속 오늘]
'보험금 좀 만졌다' 자랑하자 금감원 신고, 돈 흐름 추적해 자백 유도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4-05-03 05:00 송고 | 2024-05-03 09:06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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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를 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교훈을 알리려는 의도를 지닌 동화다.  

비밀 내용이 엄청날수록, 또 범죄와 연결될수록 관련자들의 입은 더욱 간지럽게 마련이다.
교통사고를 위장해 남편을 청부 살해한 혐의로 2016년 5월 구속된 A 씨(당시 65세) 일당 4명도 '임금님 귀'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 중 1명이 "사실은 말이야"라며 엉겁결에 누설하는 바람에 비밀이 13년 만에 들통나고 말았다. '당나귀 귀'를 2년 뒤에 외쳤다면 공소시효 만료로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았을 것이다.

◇ 남편 '너 바람 피우지' 툭하면 폭력…무속인 여동생에게 "형부 죽었으면 좋겠다" 하소연

경북 의성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하는 A 씨는 수십 년간 남편 B 씨의 의처증에 시달려 왔다.

남편은 술만 걸쳤다 하면 "너 누구와 눈 맞았나, 바른대로 대라"며 주먹질을 해 댔다. 그때마다 A 씨는 무속 관련 일을 하는 14살 아래 여동생 C 씨에게 하소연했다.
엄마 같은 큰 언니의 눈물을 볼 때마다 C 씨 가슴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이 빨리 죽었으면'하는 말을 하루에도 몇번씩 되뇌던 A 씨는 한때 보험 설계사로 일했던 동생 C 씨의 권유에 따라 2000년 1월과 10월에 남편 명의의 사망보험을 들어 놓았다.    

그 보험에는 '휴일, 뺑소니 교통사고 시 보험 지급액이 더 높은' 상품도 있었다.

◇ 형부 청부 살해 부탁받은 동생, 지인 2명 끌어들여 뺑소니 사망사고로 위장

A 씨는 2003년 2월 1일 설날에도 남편으로부터 봉변을 당하자 여동생 C 씨에게 "이렇게는 살 수 없다, 형부를 죽여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면서 "보험금이 나오면 나눠 주겠다"고 약속했다.

평소에도 언니 처지를 딱하게 여겼던 C 씨는 알고 지내던 D 씨(당시 57세)에게 '형부를 어떻게 하면 감쪽같이 죽일 수 있을까'를 의논했다.

D 씨는 중학교 동창 E 씨를 끌어들여 C 씨와 함께 머리를 맞댄 결과 △ B 씨가 술을 좋아하니 그 점을 노리자 △ 인적이 드문 시간을 이용해 뺑소니 교통사고로 위장하자 △ 휴일 밤 뺑소니 교통사고는 보험금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도 이용하자는 계획을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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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에게 '농사 가르쳐 달라'며 접근, 밤늦게까지 술대접…만취해 귀가하던 남편, 차로 팍

일당은 일요일인 2003년 2월 23일을 범행 날짜로 잡고 작전에 들어갔다.

D 씨가 짠 작전에 따라 E 씨는 정월 대보름날인 2003년 2월 15일 '농사를 배우고 싶다'며 B 씨(사망 당시 54세)를 찾아가 술대접을 시작했다.

E 씨는 2월 22일 토요일 저녁 6시쯤 '고맙다. 술이나 한잔하자'며 B 씨를 불러내 자신의 1톤 트럭에 태운 뒤 동네에서 18㎞가량 떨어진 의성읍 내로 가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건네 B 씨를 완전히 취하게 했다.

'집까지 모시겠다'며 B 씨를 자신의 트럭에 태운 E 씨는 2월 23일 새벽 1시 40분쯤 마을 입구에 B 씨를 내려 준 뒤 '잘 들어가시라'며 인사했다.

대취한 B 씨가 언덕길을 비틀거리며 내려가고 있을 때 E 씨의 트럭이 덮쳐 B 씨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늦은 밤, 그것도 추운 겨울이었기에 당연히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 사망 보험금 5억2000만원…여동생·작전 담당 각 1억2500만원, 실행범 5000만원, 언니 2억2000만원

2월 23일 아침 A 씨는 '남편이 뺑소니 사고를 당해 숨졌다'라는 동네 주민의 연락을 받고 마을 입구로 뛰어갔다.

경찰도 출동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사고가 일어난 순간, 깨어 있었던 주민은 없었고 한적한 시골인 관계로 CCTV가 있을 리 만무했다. 2024년이라면 마을로 연결되는 큰길에는 교통관제 CCTV, 방범용 CCTV가 설치돼 있지만 2003년 당시엔 꿈같은 이야기였다.

경찰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일단 사건을 마무리하자 A 씨는 3개 보험사로부터 5억 2000만 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A 씨는 약속대로 여동생 C 씨와 사건을 설계한 D 씨에게 각각 1억 2500만 원씩 총 2억 5000만 원을 줬다.

또 살해를 실행에 옮긴 E 씨에겐 5000만 원을 넘겼다.      

이렇게 하고도 A 씨는 2억 20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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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해 12년 9개월 뒤 공범 중 한명 '뺑소니로 위장해 돈 좀 만졌다'고 했다가 들통

경찰의 '미제 뺑소니 사건' 목록에 올라간 채 잊혔던 이 사건은 2015년 11월, 비밀을 참기 힘들었던 공범 중 한명이 아차 말실수하는 바람에 재등장했다.

공범이 술자리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 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 이를 들었던 사람이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금감원으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사건 파일을 다시 꺼내 살피는 한편 B 씨 사망보험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살폈다.

그 결과 돈이 A 씨, C 씨, D 씨, E 씨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차례로 불러 추궁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 뺑소니 교통사고 공소시효 10년 지나…살인 공소시효 적용해 기소

검찰은 A 씨 등을 살인, 보험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만약 뺑소니 교통사고였다면 공소시효(10년)가 완성된 관계로 이들을 벌할 수 없었다.

또 태완이법(살인 공소시효 폐지, 2015년 7월 31일부터 시행)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이들이 '임금님 귀' 비밀을 2년만 더 간직했다면 범행 사실이 발각됐을지라도 처벌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살인을 저질렀던 2003년 당시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으로 2018년 2월 23일이면 붙잡았어도 처벌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 청부살인 설계자 각각 징역 15년, 동생 12년, 공범 10년 형

A 씨는 1, 2심 모두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자 상고를 포기했다.

반면 징역 12년형의 여동생 C 씨, 15년형의 공범 D 씨, 10년형의 E 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당해 현재 옥살이 중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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