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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떠난 지 18년, 이제는 한국이 고향"…다문화 가정이 지방 지킨다

무주 전북서 두 번째로 인구 적어…다문화가정은 800명대
고향나들이 사업·기숙사비·교육비 지원 등 정책 다양화

(무주=뉴스1) 김혜지 기자 | 2023-09-29 08:05 송고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27회 무주반딧불축제에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반딧불이를 직접 보고 체험하는 신비탐사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2023.9.4.(무주군 제공)/뉴스1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27회 무주반딧불축제에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반딧불이를 직접 보고 체험하는 신비탐사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2023.9.4.(무주군 제공)/뉴스1

2만3370명. 전북 무주군의 올해 8월 기준 인구 현황이다. 2만5632명이 사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전북 14개 시·군 중에서는 장수(2만1084명) 다음으로 가장 인구가 적다.  

최근 이 작은 도시에 무주 인구 20배에 달하는 45만명이 다녀갔다. 바로 9일간 열린 '제27회 무주 반딧불 축제' 덕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3년 만에 방문객을 맞았던 지난해보다 2배 넘는 규모다.
반딧불은 친환경 지표 곤충으로 무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무주는 그만큼 물 맑고 공기 좋은 깨끗한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매년 반딧불축제뿐만 아니라 야외 잔디밭에서 초록빛깔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산골영화제'도 유명하다. 무주 매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매년 한 번씩 이곳을 찾는 이유다.

그러나 이곳 무주에도 큰 고민거리가 있다. 많은 지역이 직면한 인구 감소다. 무주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지방소멸 우려 지역 53곳에 포함됐다. 2002년 총 인구수 3만명이 무너진 이후 20년 넘게 회복되지 못한 채 해마다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무주는 산업도시보다는 청정환경을 기반으로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지향하는 휴양도시다. 교육 여건도 대도시에 비해 떨어진다.
고교 교육까지 마친 청소년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가까운 대전이나 전주, 서울 등 대도시로 향한다. 이를 시작으로 고향을 떠난다. 남아 있는 건 기성 세대. 그리고 타국에서 온 이주민들이다.

중국인 예경화씨(가운데)가 지난 4월 무주군 지원을 받아 딸(오른쪽)과 고향인 중국을 찾았다. 오랜만에 가족과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9.29.(무주군 제공)/뉴스1
중국인 예경화씨(가운데)가 지난 4월 무주군 지원을 받아 딸(오른쪽)과 고향인 중국을 찾았다. 오랜만에 가족과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9.29.(무주군 제공)/뉴스1

무주군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으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무주군에서 다문화 가정은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매년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 않고 무주에 머무는 이들이 다수였고, 이탈 인구가 있더라도 무주를 찾은 또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예경화씨(41·여)는 고향인 중국을 떠나 18년째 무주에서 살고 있다. 그는 "무주는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치켜세웠다.

예씨는 2005년 12월 중국에서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넘어왔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컸지만 평소 한국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예씨는 "그 당시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매우 인기였다"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큰 결심을 하고 남편만 믿고 무주에 왔다"고 회상했다.

예경화씨(오른쪽)가 딸(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찾은 고향 중국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무주군 제공)2023.9.29./뉴스1
예경화씨(오른쪽)가 딸(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찾은 고향 중국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무주군 제공)2023.9.29./뉴스1

하지만 평소 몸이 안 좋았던 남편은 결혼한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예씨는 남편 없이 지금까지 시부모를 모시며 고등학생 딸과 함께 무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예씨는 "무주는 마을 주민이 모두 한 가족"이라며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직접 만든 반찬을 나눠주고, 자녀가 있는 집에는 책이나 물건을 공유해주는 '나눔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주 여성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임 활동도 활성화된 편"이라며 "저는 관광해설사라는 나름 안정적인 직업도 갖고 있어 무주를 떠날 이유가 없다"고 웃었다.

무주군에 따르면 2019년~2023년 5월 말 기준 다문화 가정 가구수는 매년 230가구(800명대)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인근 장수, 진안 등과 비슷한 규모라는 게 무주군 설명이다.

무주군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무주를 떠나는 이탈 현상이 발생한 지 오래"이라며 "출산, 일자리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지역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중 하나로 다문화 지원 정책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경화씨가 무주광광사업소에서 관광객에게 책자를 보여주며 무주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무주군 제공)2023.9.29./뉴스1
예경화씨가 무주광광사업소에서 관광객에게 책자를 보여주며 무주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무주군 제공)2023.9.29./뉴스1

무주군이 다른 자자체보다 투자를 확대한 건 다문화 가정을 위한 '고향 나들이 사업'이다. 이 사업은 2년 이내 모국에 방문하지 않은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과 함께 고향에 방문할 수 있도록 왕복 항공료, 여행자 보험료, 왕복교통비 등을 지원한다.

무주군은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어난 예산(1억원)을 투입해 사업을 추진했다.

올해 사업 대상은 20가정. 지난해보다 7가정이 늘었다. 예씨도 이번에 대상자로 선정돼 지난 4월 고향 중국에 다녀왔다. 예씨는 "코로나19 사태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며 "2주 동안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왔다"고 말했다.

무주군은 군민을 비롯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교육 지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고등학교 기숙사 및 야간자율학생 조식·석식비 지원, 인터넷 강의 지원, 방학동안 기숙학원비 80% 지원 등이다.

황인홍 무주군수.2023.9.29./뉴스1
황인홍 무주군수.2023.9.29./뉴스1

뿐만 아니라 내년 4월에 준공될 복합문화도서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복합문화도서관에는 공공도서관과 가족센터, 생활문화센터 등이 들어선다. 공공도서관에는 유아·어린이·일반자료실·교육실이, 가족센터에는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공동육아나눔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돼 이윤 창출은 물론 문화 교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황인홍 무주군수는 "다문화 가정은 무주군의 핵심 인력이자 소중한 구성원"이라며 "이들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실질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아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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