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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억장 무너져"…'과수 에이즈'에 허허벌판 된 사과농장

과수화상병에 풍년 기대는커녕 한해 농사 벌써 포기
양평서 지역 첫 발생…4개 농가서 0.819㏊ 피해

(양평=뉴스1) 양희문 기자 | 2023-05-24 18:38 송고
경기 양평군 개군면 한 사과농장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24일 방역당국이 매몰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농장주 이모씨(79)가 작업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2023.05.2/뉴스1 양희문 기자
경기 양평군 개군면 한 사과농장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24일 방역당국이 매몰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농장주 이모씨(79)가 작업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2023.05.2/뉴스1 양희문 기자

“이렇게 독한 병이 우리 농장에 찾아올 줄은 몰랐지. 자식 같은 놈들인데…”

봄은 농번기의 계절이다. 농민들은 저마다 궂은 땀을 흘리며 다가올 가을에 풍년을 기원한다.
하지만 경기 양평군에서 5년째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이모씨(79)는 풍년에 대한 기대는커녕 올 한해 농사를 벌써부터 포기했다.

‘과수 에이즈’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농장을 덮치면서 애지중지 키우던 사과나무 1450여 그루를 땅 속에 묻었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찾은 양평군 개군면에 있는 이씨의 과수원은 독한 병에 걸린 나무들의 매몰 작업이 한창이었다.
 24일 방역당국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기 양평군 개군면 한 사과농장에서 매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23.05.24./뉴스1 양희문 기자
 24일 방역당국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기 양평군 개군면 한 사과농장에서 매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23.05.24./뉴스1 양희문 기자

이씨는 자식 같은 나무가 하나씩 뽑힐 때마다 차마 볼 수 없는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지만, 중장비는 무심하게도 모든 나무를 제거했다.

5m 깊이의 구덩이에는 수백 그루의 나무가 쌓였고, 그 위로 다시 흙이 덮이고 감염병 확산을 막는 석회가루가 뿌려졌다.

전날만 해도 푸른 잎으로 가득했던 농장이 하루아침에 허허벌판이 되자 이씨의 얼굴은 깊은 시름에 잠긴 모습이었다.

“사과나무가 4~5년차부터 열매가 많이 나오는데, 딱 그 시기에 죽을 병에 걸린 거야. 열심히 가꿨는데 이렇게 보내야 하니 가슴이 쓰리지.”

이씨는 5월 초까지만 해도 싱싱한 이파리를 보며 올해 농사는 지난해보다 풍년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24일 방역당국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기 양평군 개군면 사과농장에서 생석회 가루를 사용해 살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23.05.24./뉴스1 양희문 기자 
24일 방역당국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기 양평군 개군면 사과농장에서 생석회 가루를 사용해 살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23.05.24./뉴스1 양희문 기자 

그러나 이씨의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근 들어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이씨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군 농업기술센터에 연락을 해 사진을 보내줬다.

이를 본 센터 직원은 곧장 농장으로 달려와 “정밀검사를 해봐야 한다. 일단 외부인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며 시료를 채취해 갔다고 한다.

초조하게 몇날 며칠을 기다리던 이씨에게 소식이 전달됐다. 말라버린 잎처럼 그의 농심도 타들어가는 결과였다. 원치 않았던 화상병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씨는 “5년째 홀로 가꾼 농장인데 이놈의 병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최소 억 단위 피해는 봤을 것”이라며 “나이가 80인데 언제 또 묘목을 심고 수확을 하겠느냐. 이대로 농사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24일 방역당국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기 양평군 한 사과농장에서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2023.05.24./뉴스1 양희문 기자 
24일 방역당국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기 양평군 한 사과농장에서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2023.05.24./뉴스1 양희문 기자 

화상병은 사과나 배에 주로 피해를 주는 세균병의 일종이다. 나뭇잎이 불에 타 화상을 입은 듯 검게 그을린 증상을 보이다가 나무 전체가 말라 죽는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발생 농장 주변 100m 안에 있는 과수는 뿌리째 캐내 땅에 묻은 뒤 생석회 등으로 덮어 살균해야 한다. 발병 농가는 3년간 과수 재배가 금지된다.

양평 지역에선 이번에 처음 발생했으며, 현재 4개 농가(0.819㏊)에 화상병이 퍼져 매몰처리 된 상태다.


yhm9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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