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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시추 씨름하던 SK이노베이션, 폐플라스틱서 원유 뽑는다

[그린경쟁시대 딥체인지②] 열분해유 불순물 제거 기술 특허출원
중소기업과 특허기술 공유 '상생' 모델 제시, ESG 경영 촉매 역할

(대전=뉴스1) 류정민 기자 | 2020-11-11 09:54 송고 | 2020-11-11 14:06 최종수정
편집자주 바야흐로 그린시대다. 환경은 이제 기업에게 ‘보호’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다. 환경(E)과 함께 사회(S)·지배구조(G)는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착한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원한다. 뉴스1은 ‘ESG’ 사례를 살펴보고 기업이 왜 필수 경영 요소로 선택해야 하는지 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미국 환경단체인 '오션 보이저스 인스티튜트'(Ocean Voyages Institute)가 지난 8월 하와이 인근 북태평양에서 걷어올린 바다거북 사체 사진. 플라스틱 섬유 소재를 원료로 한 폐그물에 걸려 끝내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바다거북은 뼈만 남은 채 환경단체 관계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출처 Ocean Voyages Institute)© 뉴스1
미국 환경단체인 '오션 보이저스 인스티튜트'(Ocean Voyages Institute)가 지난 8월 하와이 인근 북태평양에서 걷어올린 바다거북 사체 사진. 플라스틱 섬유 소재를 원료로 한 폐그물에 걸려 끝내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바다거북은 뼈만 남은 채 환경단체 관계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출처 Ocean Voyages Institute)© 뉴스1

"몇 해 전 중국의 수입거부로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이 있었던 것 기억하세요?"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만난 박재영 R&D 혁신추진실 연구원(36)은 이같이 말하며 폐플라스틱으로부터 뽑아낸 약 500ml 분량의 열분해유를 가리켰다.
열분해는 폐비닐을 포함한 폐플라스틱을 무산소 조건에서 섭씨 300~500도의 열을 가해 원유와 비슷한 물질을 얻어내는 기술이다. 박 연구원은 "열분해유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면 거대한 플라스틱 산이나 바다 위를 떠도는 플라스틱 섬과 같은 환경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힘줘 말했다.

이번에 SK이노베이션이 선보인 열분해유 시제품은 기존 열분해유보다 불순물 함량을 대폭 줄인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불순물 제거 기술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국내에서 열분해유 제조 관련 특허도 출원했다.

열분해유는 흙먼지, 음식물찌거기 등과 같은 오염물질이 묻은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들다보니 불필요한 성분이 함께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오랜 기간 쌓아온 석유화학제품 처리 노하우와 연구개발 역량으로 열분해유의 불순물을 대폭 줄인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아울러 1차적으로 얻어낸 열분해유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투명한 형태의 솔벤트나 윤활기유도 얻어냈다. 솔벤트는 세정제, 페인트 희석제, 화학공정 용매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화학 제품이다. 윤활기유는 자동차 윤활유를 만드는 주원료이자 품질을 결정 짓는 핵심재료다.

박 연구원은 "화학제품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불순물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며 "축적된 촉매·공정 기술을 활용하여 폐플라스틱에 특화된 불순물 제거 기술을 개발했고, 고객사로부터 기존 제품 대비 냄새에 강점이 있다는 피드백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박재영 R&D 혁신추진실 연구원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열분해유와 솔벤트 시제품을 가리키고 있다. © 뉴스1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박재영 R&D 혁신추진실 연구원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열분해유와 솔벤트 시제품을 가리키고 있다. © 뉴스1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조상현 오픈이노베이션 팀장(사진 좌측)과 박재영 연구원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조상현 오픈이노베이션 팀장(사진 좌측)과 박재영 연구원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SK이노베이션은 석유개발이 본업인 에너지·화학기업이다. 1962년 설립 이후 석유 탐사부터 개발, 정유까지 밸류체인을 구축해놓고 있다.

사실 열분해유는 연매출이 49조원(2019년 기준)에 달하는 SK이노베이션의 주요 수익원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으로 제주클린에너지, 중부인더스트리 등 10여개 업체들이 열분해유 관련 사업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제조한 열분해유는 산업용 보일러 연료, 화훼농가 열공급원 등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품질과 가격경쟁력의 문제를 항상 안고 있다.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하다 보니 불순물이 유입되기 쉬운 데다 원료 자체를 구성하는 성분이 다양해 균일한 품질의 열분해유 제조는 쉽지 않다. 한 예로 분리수거하는 비닐류 중 가장 흔한 라면봉지만 하더라도 다층 필름구조로 다양한 성분의 화학원료와 금속 성분인 알루미늄마저 사용된다. 최근에는 환경 규제 강화로 LNG(액화천연가스)와 같은 연료에 밀리고 있는 데다, 유가마저 급락하면서 설 자리가 더욱더 좁아졌다.

박 연구원은 "판매처 확보가 쉽지 않다 보니 열분해유 생산을 아예 중단한 업체들도 최근 발생하고 있다"며 "양질의 열분해유 생산을 통해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중소기업과의 기술 공유를 통한 상생 모델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쓰레기선별업체 근로자가 재활용쓰레기 선별장에 쌓인 쓰레기를 포크레인을 이용해 분류하고 있다. 2020.5.4/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지난 5월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쓰레기선별업체 근로자가 재활용쓰레기 선별장에 쌓인 쓰레기를 포크레인을 이용해 분류하고 있다. 2020.5.4/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미국 환경단체인 '오션 보이저스 인스티튜트'(Ocean Voyages Institute)가 지난 8월 하와이 인근 북태평양에서 촬영한 폐그물 등 해양 쓰레기.(출처 Ocean Voyages Institute)© 뉴스1
미국 환경단체인 '오션 보이저스 인스티튜트'(Ocean Voyages Institute)가 지난 8월 하와이 인근 북태평양에서 촬영한 폐그물 등 해양 쓰레기.(출처 Ocean Voyages Institute)© 뉴스1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지난해 '그린밸런스 2030'이란 목표를 세우고 플라스틱 재활용과 같은 환경문제 해결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일환으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제주클린에너지와 열분해 유화기술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함께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번 열분해유 특허기술개발은 그 결실 중 하나다.

그린밸런스 2030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한 ESG(환경·사회적가치·거버넌스) 경영의 일환이기도 하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추석을 앞두고 '플라스틱 오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청을 임직원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플라스틱은 소비재부터 산업재까지 활용범위가 매우 광범위해 빠르게 늘어나는 생산량만큼 다량의 폐기물도 유발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7년 기준 3억4800톤에 달했다. 이는 10년 사이 42% 증가한 양이다. 이로 인한 플라스틱 폐기물도 급증하고 있는데, 2016년 기준 약 2억4200만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다. 이는 생산량 대비 72%에 해당한다.

폐플라스틱은 물에 뜨는 특성상 많은 양이 바다로 유입되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해양생물 몸속에 축적되는 등 각종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2050년에는 11억24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플라스틱 생산량도 지속적인 증가 추세여서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2011부터 2018년까지 지속적으로 연평균 2.2%씩 증가했다. 2017년 생산량은 1400만톤으로 추산되며, 이 추세대로라면 2030년이면 국내 플라스틱 생산량이 1740만톤에 달할 것으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추산한다. 재활용률은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플라스틱류 재활용 비율은 44.8%였다.

자료=환경부© 뉴스1
자료=환경부© 뉴스1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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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스프(BASF), 미국의 다우(DOW),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자회사 사빅(SAVIC) 등 글로벌 화학사들은 열분해유 생산에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 예로 국내에서 열분해유는 폐기물관리법상 발전용 연료와 같이 산업용 에너지원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를 제한하고 있다. 또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대법)상 SK이노베이션과 같은 석유정제업자는 석유와 석유 제품만을 정제 원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폐자원을 활용해 생산한 열분해유는 상업적인 용도로 정제할 수도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석대법 상 열분해유를 석유 및 석유제품에 포함토록 하고, 폐기물관리법상 재활용 가능 유형에 열분해유 관련 조항을 신설할 것을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에 건의하고 있다.

조상현 SK기술혁신연구소 오픈이노베이션 팀장(45)은 "열분해유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과 같은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및 협력 모델 구축도 추구할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과 SK에너지 등이 추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열분해유를 통해 플라스틱 원료까지 생산하는 과제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만난 이호원 수석 연구원(36)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시제품 생산시설 앞에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 뉴스1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소재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에서 만난 이호원 수석 연구원(36)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시제품 생산시설 앞에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 뉴스1



ryupd01@new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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