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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정리뷰] 비극의 런웨이에 선 '벌거벗은 왕'…국립극단 '메디아'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17-02-28 11:24 송고 | 2018-06-24 11:56 최종수정
국립극단 정기공연 '메디아'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정기공연 '메디아'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메디아(이혜영)는 자신이 낳은 두 아이를 칼로 찔러 살해한다.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국립극단 정기공연작인 연극 '메디아'의 핵심 장면 중 하나다. 아이의 피에 검붉게 물든 이혜영의 원피스는 국내 디자이너 1세대인 진태옥(82)의 작품이다.

진태옥은 패션 런웨이와 연극 무대가 닮았다고 했다. 그를 위한 배려인 듯, 작품 속에선 각각 다른 옷을 입은 합창배우(코러스)들이 무대를 런웨이처럼 앞뒤로 걸어가는 움직임이 많았다. 연출가가 이 작품을 현대여성을 염두에 두고 원래 합창배우 60명을 요구했으나, 극장 사정상 15명으로 줄었다는 후문이다.
죽은 아이들 곁에 누운 메디아는 뒤늦게 온 남편 이아손(하동준)에게 단검을 휘두르며 접근을 막는다. 분노한 이아손이 완력으로 아내의 목을 졸라 죽이면서 비극의 막이 내려온다. 이런 결말은 헝가리 출신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만의 새로운 해석이다. 에우리피데스(BC 480~BC 406)가 쓴 고대 그리스 원작에선 메디아가 다른 남자 아이게우스(남명렬)에게 떠난다.

이 작품에 대해 "이혜영 배우의 등장과 동시에 공기가 달라졌다"라거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박수를 치는것 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슬픔으로 가득 찼다"고 극찬하는 관객들이 있었다. 심지어 "여태까지 봤던 연극은 뭐였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비판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았다. 멋진 옷을 원했으나 사기꾼에게 속아 알몸으로 행진한 우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보낸 찬사처럼 공허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메디아'는 2017년 국립극단 두 번째 정기공연작이자 첫 번째 신작이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는 '배우·서사·개념 중심 연극'의 결정판으로 이 작품을 택했으며 로버트 알폴디, 이혜영, 진태옥을 섭외했다.
지난 3일로 임기를 마쳤으나 후임자가 올 때까지 국립극단을 이끌어야 하는 김 예술감독은 헝가리 연출가인 로버트 알폴디가 '개념연출의 실체'를 보여줄 것이며, 메디아 역을 맡은 이혜영이 '배우예술의 극치'를 표현하고,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이 '현대적 감각'을 그리스비극에 덧입힐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김 예술감독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진태옥의 손길을 거친 무대의상은 아름다웠으나 제각각 튀어서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이혜영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으나 극의 핵심 내용인 아이를 죽이기 직전의 심적 갈등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몇몇 독백은 성량 조절에 실패해 명동예술극장 객석에서는 명확히 들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는 헝가리 출신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의 '안이한' 생각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알폴디는 '메디아'를 '아주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혹은 '격렬한 사랑과 위험한 자유'로 규정하고 연출 의도에 맞게 표현했다. 그는 헝가리의 현실을 반영한 연극을 만들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다가 헝가리 국립극장 예술감독직을 2013년 사임해야 했다. 이런 그가 지난해 '겨울 이야기'에 이어 이번 '메디아'까지 왜 한국 국립극단에만 오면 고전극이란 의미 외엔 다른 사회적 의미가 없는 '무색무취'의 작품을 올리는지 의문이다.

알폴디가 지난 13일 메디아 기자간담회에선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연극에 담아내기 어렵고, 오랜만에 한국에서 순수한 연극을 올리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조만간 고국 헝가리로 돌아가 치열한 작품을 올린 알폴디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무대가 국립극단이 된 셈이다.

한국에는 지난 4년간 정치적 성향 때문에 국공립기관에서 지원이 배제된 연극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광화문광장에 임시 천막을 설치해서 명동예술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등 공공극장이 어떤 공연을 올려야하는지를 묻는 공연을 올리고 있다. 알폴디가 출국하기 전에 블랙텐트에 들르지는 않더라도, 그의 다음 휴가지가 국립극단은 아니길 바란다.

4월2일까지. 입장료 2만~5만원. 문의 1644-2003.

국립극단 정기공연 '메디아'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정기공연 '메디아'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정기공연 '메디아'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정기공연 '메디아'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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