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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도시' 김미숙 "빌런 서한숙, 멋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N인터뷰]

"데뷔 43주년, 걸어온 길에 만족"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2022-02-11 08:00 송고
김미숙 제공 © 뉴스1
김미숙 제공 © 뉴스1
또 하나의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했다. 10일 종영한 JTBC 수목드라마 '공작도시'(극본 손세동, 연출 전창근)이 바로 그 작품이다. 대한민국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성진그룹의 미술관을 배경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치열한 욕망을 담은 '공작도시'는 촘촘한 이야기를 담은 대본과 이를 살리는 연출, 캐릭터에 완벽히 스며든 배우들의 열연으로 흥미진진한 심리 스릴러를 완성했다. 덕분에 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배우 김미숙은 '공작도시'에서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성진그룹 실세 서한숙으로 분한 그는 본인이 만든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이 모든 일을 큰 감정의 동요 없이 해내는 서늘한 모습으로 '빌런 끝판왕' 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 '우아한 악역'은 여타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캐릭터라 시청자 반응이 더 뜨거웠다. 김미숙은 "대본을 보고 서한숙이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미숙은 그간 소화해온 악역들과는 또 다른 결의 서한숙을 빚어내며 박수를 받았다.
지난 1979년 KBS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미숙은 올해 데뷔 43주년을 맞았다. 데뷔 이후 1~2년에 한 작품 이상씩 꾸준히 하며 성실하게 일해온 만큼 필모그래피 역시 다채롭다. 특히 김미숙은 '틀은 깨는 배우'로 유명하다. 시대를 앞선 연하남과의 로맨스, 명품 악역 등을 소화하며 '한드'의 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지겨운 걸 싫어했다는 김미숙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 이에 맞는 배역들이 찾아왔다. 운이 좋아 원하는 걸 실현할 수 있었다"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본인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면 할 수 있는 나이까지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숙은 30년 가까운 경력의 라디오 DJ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부터는 평일 오전 9시 KBS 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진행 중이다. 차분한 목소리와 공감 어린 진행, 음악에 대한 풍부한 식견이 그의 강점이다. 김미숙은 "나라는 사람의 50%는 라디오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반추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도 배운다며 라디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배우로, 또 라디오 DJ로 여전히 활발한 활동하고 있는 김미숙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일해왔음에 감사하다며 대중에게 '괜찮은 배우', '멋진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일 앞에 열정적인 배우 김미숙을 최근 뉴스1이 만났다.
하이스토리디앤씨, JTBC스튜디오 © 뉴스1
하이스토리디앤씨, JTBC스튜디오 © 뉴스1
-'공작도시'가 종영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텐데 잘 끝마친 소감은.
▶이렇게까지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는 오랜만에 만났다. 사실 '공작도시'가 불친절한 드라마는 맞다.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들도 많은데 '공작도시'는 집요하게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으면 끈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가 어렵다, 꼬여있다'라는 반응들도 있었고, '이게 뭐냐'는 친구들도 있었다.(미소) 그래도 촉이 살아있는 분들은 이야기를 잘 따라가시더라. 내가 원래 댓글을 잘 안 보는 스타일인데, '공작도시'는 반응이 궁금해서 그때그때 찾아봤다. 댓글을 보면 나를 '김미숙'이 아닌 드라마 속 이름인 '서한숙'으로 칭해주시더라. 그만큼 극에 몰입해 있으시다는 게 좋았다.

-'공작도시' 대본을 처음 읽어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서한숙 세상이구나, 서한숙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나머지 인물들은 꼭두각시일 수 있겠다, 본인들이 꼭두각시인 줄 모르고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구나' 싶었다.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었고, 서한숙이라는 캐릭터를 재밌고 멋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부터 '황금의 제국' 한정희까지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에서 악역을 해오지 않았나. 서한숙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

▶서한숙이 기존에 연기한 인물들과 다른 건, 가족이나 가정이 아닌 '나의 세계'를 지킨다는 점이다. 서한숙은 큰아들 정준일(김영재 분), 큰며느리 이주연(김지현 분), 정준혁(김강우 분), 윤재희(수애 분)는 물론 정재계와 언론까지 동원해 자기 세계를 움직인다. 표면적으로는 친아들인 정준일을 성진 회장 자리에 앉히는 게 목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세계를 지키기 위한 파워게임을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큰아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완전히 저지한다.
하이스토리디앤씨, JTBC스튜디오 © 뉴스1
하이스토리디앤씨, JTBC스튜디오 © 뉴스1
-서한숙이야말로 '우아한 빌런'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캐릭터를 현장에서도 많이 다듬었나.

▶사실 난 모니터를 잘 안 하는 사람이고, 현장 모니터는 더더욱 안 한다. 준비는 철저히 하되 현장에선 흐르듯이 하려고 한다. 본인이 본인 걸 보면 단점만 보인다. 비우고 가야지, 완벽이 어딨나. 다 채우려고 하면 못한다. 현장에는 수십, 수백 개의 조건이 있는데 뭐 하나 걸린다고 해서 의식하면 잘 못하게 된다. 약속된 걸 충실히 이행하되 오차 범위 내에 있으면 만족한다. 나도 방송을 통해 내 연기를 봤는데 눈빛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웃음)

-서한숙이 피도 눈물도 없어지기까지 서사가 있었을 듯하다. 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아마 서한숙도 어릴 때는 행복한 가정을 꿈꿨을 거다.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만난 남자가 발등을 찍은 거지. 서한숙의 바람과는 다르게 한량이었던 남자는 그의 배경을 더 좋아한 게 아닐까. 자신이 바랐던 것과는 반대이니 임신한 채로 그 남자를 떠났고 미혼모의 길로 들어섰지만, 아버지가 기사와 결혼을 시켰으니 잘 살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싶다. 기사는 서한숙과 잘 지내보려 했지만, 집안에서는 머슴 취급했을 거고, 그 사이 남자는 혼외자를 만들어왔다. 서한숙이 그 혼외자를 받아들인 것조차 품위와 집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믿을 사람도 없고 남편도 자신을 배신한 상황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느꼈을 거다. 그래서 서한숙은 더 본인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 게 아닐까 한다.

-서한숙이 서늘하게 뱉는 말은 항상 임팩트가 있었다. 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품위라…고분고분 네 말대로 움직여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남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고상한 척 소꿉놀이하는 걸 품위라고 하는 거니?'라는 대사다. 큰 며느리의 이혼 선언을 듣고 일갈하는 신에 나오는데, 각자 목표는 다르겠지만 두 손 놓고 앉아서 뭔가를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서한숙은 선대 때부터 모아 온 치부책으로 본인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서한숙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사가 아니었나 한다. 품위를 지키기 위한, 세상을 지키기 위한 서한숙의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하이스토리디앤씨, JTBC스튜디오 © 뉴스1
하이스토리디앤씨, JTBC스튜디오 © 뉴스1
-수애와 전작에선 모녀로 만났고, '공작도시'에서는 고부로 재회했다. 연기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수애와는 드라마 '우리집에 사는 남자'에서 잠깐 만났던 인연이 있고, '공작도시'에서 재회하게 됐다. 극 전반부에서는 서한숙과 윤재희가 좋은 고부 관계였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적이 되지 않았나. 배우들은 연기할 때 극과 현실 사이 괴리가 안 되다 보니,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감정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연기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수애가 몰입감과 집중력이 좋다. 본인의 역할에 충실해서 화면으로 연기를 볼 때 긴장감이 느껴지더라.

-'공작도시'가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공작도시'를 통해 배우 김미숙과 거물 서한숙을 동일시하지 않을까.(웃음) 가상 속 인물의 삶 스케일이 남다른 드라마라 하면서도 신나고 재밌었다. 특히 '공작도시'는 완성도가 좋았다. 대본도 잘 썼고, 작은 역할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내지 않았나 한다. 캐스팅도 절묘했고, 연출도 좋았다. 조명부터 카메라 앵글까지 구석구석 신경을 써서 연출을 하셨더라. 좋은 작품이었다.
김미숙 제공 © 뉴스1
김미숙 제공 © 뉴스1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1~2년에 한 작품 이상 꾸준히 해온 점이 눈길을 끈다.

▶내겐 배우가 직업이니까, 직업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라는 배우를 원하는데 가서 잘해야지, 재밌게 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한다. 

-1970년대에 데뷔해 수십 년째 활동 중이다. 과거에 비해 중년 여배우, 특히 기혼 여성이 할 작품이 다양해졌다고 느끼나.

▶연기 좀 한다는 중견 배우들이 주인공의 이모, 고모 역할을 할 때가 많았는데, 이젠 그런 역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 그런 걸 생각하면 오히려 해볼 만한 역할이 생겼구나 싶어 좋다. 다만 못 보던 배우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오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항상 틀을 깨는 역을 많이 해온 것 같다. 연하남과 로맨스는 시대를 앞섰고, 명품 악역은 김미숙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지.

▶연하남과의 로맨스도 거의 처음이었고, '명품 악역'이라고 불러주시는 캐릭터도 내가 지향하는 것이었다. 지겨운 걸 못 견디긴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 이에 맞는 배역들이 찾아왔다. 행운이었지. 덕분에 원하는 걸 실현할 수 있었고, 시청자들에게 회자되는 그런 캐릭터를 보여준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외출'이다. 결혼하고 첫 애를 낳은 뒤 마흔 초반에 한 멜로인데, 지금 봐도 대사와 연출, 연기가 다 좋았다. 악역으로 나온 작품 중에선 '찬란한 유산'. 거칠 것 없는 여자가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남았나.

▶이만큼 와서 보니 웬만한 건 다 했더라. 안 한 건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특별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기보다,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면 할 수 있는 나이까지 열심히 해보고 싶다. 연극도 좋아해서 몇 년 전에 다시 해보려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무산됐다. 여전히 관심은 있지만, 이제 체력적으로 가능할까 싶은 생각은 든다.
김미숙 제공 © 뉴스1
김미숙 제공 © 뉴스1
-라디오 DJ로도 오랫동안 활약해왔다. 4년 전부터는 KBS 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진행 중이고. 라디오라는 매체가 주는 매력이 있나 보다.

▶DJ를 한 지 28~29년 정도 됐다. 라디오를 좋아한다. 아마 김미숙이라는 사람의 50%는 라디오가 만들었을 거다.(미소) 라디오는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청취자는 내가 하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고, 나 역시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들의 삶을 상상하고 반추하는 시간을 가진다. 세상을 가능하면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보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게 DJ의 본분이다. 사는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고,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한 동질감을 배우는 것도 의미 있고, 그래서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바라보도록 해주는 게 DJ다. 라디오는 가장 아름다운 매체다. 요즘에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품위 내지는 전문가의 방송이라는 포장이 돼 있는 클래식FM에서 나는 이단아 같은 케이스다.(웃음) 그래도 우리 프로그램 타이틀이 '가정음악'인 만큼 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을 담은 게 우리의 시간이다. 일상을 전하고, 농담하고, 울기도 웃기도 하며 위로받는다. 주변에서 햇빛처럼, 바람처럼 스며드는 방송이고 싶다.

-올해로 데뷔 43주년을 맞았다. 오랫동안 활발히 활동하는 건 노력 없이는 안 되는 일인데, 돌아보면 어떤지.

▶만족한다. 한 직업을 43년 동안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감사하게도 일해왔고, 하면서 행복한 날들이 더 많았다. 일하면서 칭찬을 들을 때가 있는데,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고 자기 인생을 잘 살도록 노력하는 사람 중에 하나여서가 아닐까 한다. 잘 가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김미숙이라는 배우에 대한 이미지가 팬들에게 있을 텐데, 많은 분들이 떠올렸을 때 '괜찮아, 멋진 배우지' 이런 정도로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breeze5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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