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홍준표 감독 "전태일 이야기를 왜 '애니'로? 3개월 고민했죠" [N인터뷰](종합)

명필름 애니메이션 '태일이' 연출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1-12-21 10:37 송고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전태일 열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2030세대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수도 있다. 1985년생인 홍준표 감독에게도 전태일 열사는 처음에는 역사책에서 가볍게 지나쳐갈 법한 존재였다. 그 때문일까. 유명 영화 제작사 명필름으로부터 애니메이션 '태일이'의 연출 제안을 받은 그는 수락 여부를 두고 무려 3개월간 고민을 했다고 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이 있었어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데 왜 전태일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 궁금증이 해결돼야 진심으로 이해하고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을 하며 어느 정도 감이 왔지만 결론적으로 뭔가가 뚜렷하게 떠오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왜 해야할까?' 하는 질문, 그 자체가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의 이야기를 하고싶어하는 데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지점이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해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태일이'는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지난 1일 개봉했다. '바람을 가르는'(2012) '맵: 프롤로그'(2013) 등을 연출한 홍준표 감독의 첫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이후 제작자 명필름이 10년 만에 내놓는 두번째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의 개봉 쯤 제작사 스튜디오루머에서 만난 홍준표 감독은 "긴장도가 다르다"며 데뷔작이자 신작을 선보이는 소감을 밝혔다.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br><br>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시사회 때는 부산영화제 상영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었어요. 직접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오신 분들이 보기 전에, 또 보고난 후에 로비에 모여 얘기하시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죠. 그 중에는 영화를 간접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도 동시에 들었어요."
'태일이'가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하기까지, 홍준표 감독에게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제작 과정보다는, 연출을 맡을지 맡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치열했다.

"시작부터 무겁다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했어요. 제안받을 때 (명필름 쪽에서) 상당한 부담감을 주셨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인이고 열사고 이분의 이야기를 거짓 없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 모르는 게 많아요. 자칫 틀리게, 잘못 그려내지 않을까 하는 두 가지 지점 때문에 부담이 있었어요. 제안 받고 자신감이 없어 3개월은 고민한 것 같아요."
'태일이' 포스터 © 뉴스1
'태일이' 포스터 © 뉴스1

고민을 하는 시간 동안 홍 감독은 '열사' 아닌 '인간' 전태일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전태일이 쓴 메모와 일기들을 읽었고, 20대 청년 '태일이'와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제안을 받기 전까지)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고 하는 수준이었어요. 저에게는 그냥 위인이었죠. 이런 인물이고 이런 행동을 해서 이런 결과를 끌어냈다, 정도만 알고 있는 거였죠. 교과서에서 한 문장 정도로 본? 지금은 꽤 오랜기간, 혹은 짧다면 짧지만 가깝게 지낸 친구처럼 느껴져요. 많이 연구했어요. 공부했다기 보다는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사적인 부분을 많이 찾아봤죠."

실제 영화 속에는 전태일 열사의 일기와 노트 등이 등장한다. 홍준표 감독은 영화 속 등장하는 전태일 열사의 노트 속 글씨들이 실제 전태일 열사의 것을 필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런 친필 기록들이 있어요. 그걸 애니메이션 영상에 옮기기 위해서 소스로 제작했어야 했어요. 전태일 열사의 글씨체가 매력이 있거든요. 삐뚤빼뚤 하지만 나름대로 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조형감이 있는 글씨였어요. 직접 보면서 필사를 해 소스를 만들었어요. 그 과정이 굉장히 재밌었어요.(웃음)"

홍준표 감독은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려 50년 전 인물이 처했던 환경과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평화시장과 청계천 인근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여러 장 찾아 정확한 시점과 시간의 흐름을 파악해 반영했다. 전태일재단의 협력을 받았고, 당시 여공으로 일했던 이들을 인터뷰하는가 하면 중고 미싱기를 사서 작동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전태일이라는 인물과 시대를 공부하며, 홍준표 감독은 인간 전태일을 이해하게 되는 한편, 그의 위대한 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태일이' 홍준표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진짜 대단하다고 느낀 지점은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근로기준법을 외치고 가신 분인데, 들여다 보니까 단순히 근로기준법만을 위해 행동하신 게 아니란 점이었어요. 근로기준법을 외친 목적과 이유가 명확하게 있었다고 보여요. 당시 공장 안 인력들의 구조 상, 가장 하단에 있는 사람들과 여공들은 어리고 돈도 별로 못 받았어요. 일을 하게 되면 미싱사도 되고 그 위에는 재단 보조가 있고 재단사가 있어요. 공장 안에서 재단사는 권력에 있는 위치에요, 공장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입장이니까요. 당시 사회상으로 (전태일 열사는) 재단사이고 남성인데,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이들과 여공들을 보살펴줄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바느질을 도와주고 안쓰러워 풀빵을 사줄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전태일 열사는)그런 걸 했어요. 저때는 그렇게 하는 게 '너 왜 그래?' 할만큼 이상한 일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을 당연히 여겼고,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미래를 봤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홍준표 감독은 '태일이'의 연출 수락을 놓고 3개월간 고민을 하는 중에 재밌는 일을 경험했다. 길을 가다 우연히 쪽지를 주웠는데 '전태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는 것. 누군가는 '운명'처럼 받아들일지도 모를 에피소드지만, 홍 감독은 이 에피소드가 '태일이'를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장담했다. 그럼에도 불구, 홍 감독의 '쪽지 이야기'는 '태일이'의 탄생을 더욱 극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아무도 믿지 않는데 사실이에요.(웃음) 우연찮게 길에 뭘 떨어진 걸 잘 줍는데 누가 봐도 뭔가 재밌을 거 같다 하는 걸 주워요. 그때도 밥을 먹으러 나가던 중이었고 시나리오를 받은 후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그때는 경희대 근처에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경희대를 넘어가 정문에서 밥을 자주 먹었어요. 정문에 도달하기 전에 내려가는데 누가 봐도 줍게 생긴 딱지가 놓여 있었어요. 주울 수밖에 없었죠. '누가 이런 걸 떨어트렸어? 뭔가 재밌는 게 있는 게 있을까?' 하고 봤는데 '전태일'이라고 써 있었어요. 수업 강의를 필기하다가 버린 건가봐요. 그걸 왜 그렇게 버렸을까요?"


eujenej@news1.kr

오늘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