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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처음 경험하는 철창 밖 세상, 더는 죽음이 아니길"

웅담 채취 사육곰 400마리 고통…동물단체 "로드맵 필요"
곰 보금자리 '생츄어리' 프로젝트 "관심·후원 이어졌으면"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2021-07-11 06:00 송고 | 2021-07-11 08:47 최종수정
경기 용인시, 환경부, 경기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곰 사육장을 점검하고 있다.(용인시 제공) © News1 김평석 기자
경기 용인시, 환경부, 경기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곰 사육장을 점검하고 있다.(용인시 제공) © News1 김평석 기자

"곰이 죽어 안타깝지만, 결국 죽은 곰이 산 곰을 살리는 격이죠."

사육곰 구조단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최태규 활동가는 최근 경기 용인시의 곰 사육농장에서 사육곰이 탈출했다가 사살된 일을 두고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데 대해 뉴스1에 이렇게 말했다.
사육곰은 웅담 등 곰의 신체 부위를 먹기 위해 사육되고 있는 곰을 뜻한다. 최 활동가는 "(탈출했던 곰은) 내내 철창 안에서만 살다가 철창이 녹이 슨 틈을 타 처음 밖으로 나갔고, 생전 처음 보는 환경이니 오히려 무서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1일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이런 비극은 정부가 1980년대 재수출 목적의 곰 사육을 권장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가 CITES(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 거래 협약)에 가입하고 멸종위기종 보호 여론이 높아지면서 곰 수입·수출은 곧 중단됐으나, 정부는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10살 이상의 곰의 웅담채취를 합법화했다.

이후 정부는 사육곰의 개체수를 더 이상 늘리지 않기 위해 2014~2017년 중성화 조치를 취했으나, 제대로 된 후속조치를 진행하지 않으면서 사육곰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됐다. 현재 남은 사육곰은 전국 28개 농가 약 400마리 정도다.

베트남 탐 다오 국립공원의 생츄어리. (출처 :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 뉴스1
베트남 탐 다오 국립공원의 생츄어리. (출처 :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 뉴스1

최 활동가는 "정부는 사육곰들이 그냥 나이들어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곰을 고통 속에 놔두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생츄어리(이른바 보호구역)를 만들어 사육곰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생츄어리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동물을 구조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돌보는 시설을 뜻한다. 동물을 이용해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서 단지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생츄어리 탈출 사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유기동물보호소는 동물을 구조해 일시적으로 보호한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라는 점에서 생츄어리를 대신 할 수 없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측은 이를 위해 2018년 가을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곰 생츄어리를 견학했고 2019년에는 전국 사육곰 농장을 전수조사 했다. 또 △사육곰을 위한 해먹을 제작·설치하거나 △곰이 본래 먹고 자랐어야 할 호박, 바나나, 사과 등을 제공하는 일 등을 해왔다.

이 프로젝트에는 수의사인 최 활동가 이외에도 이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한 수의대학생, 동물훈련사, 웹 디자이너, 변호사, 인문학 연구원 등 19명이 참여하고 있다.

최 활동가는 "만약 도망쳤던 곰이 생포되었다고 한들, 다시 그 농장에 돌아가 우리 안에 갇힐 뿐"이라면서 "전국에 사육곰이 약 400마리 정도 남은 지금이야말로 사육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이고, 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해먹에서 노는 사육곰의 모습. (출처 :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 뉴스1
해먹에서 노는 사육곰의 모습. (출처 :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 뉴스1

사육곰 문제는 2000년대 초부터 제기돼 왔다. 정부와 동물단체가 내린 최선의 방법은 사육곰을 구조해 이들이 살 수 있도록 생츄어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는 2024년 정부 주도로 전남 구례에 곰 생츄어리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시설 완공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남았다. 곰의 평균 수명은 25년이다. 특히 최 활동가는 "불법 증식 개체만 압수해서 기를 계획이고, 합법적으로 기르는 곰들은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곰 보금자리 측은 사건 당일인 6일 SNS를 통해 "곰들이 처음 경험하는 철창 밖 세상이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남은 곰들이 철창 속에서 죽어가지 않도록 사육곰 문제에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다행히 최근 며칠간 사육곰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는 모양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등 관련 단체 후원이나 사육곰 구하기 서명운동 등의 참여자가 늘어난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용인 **곰 사육장 폐쇄해 주세요', '[곰사육 폐지] 정책수립을 통해 해결 요청 건', '용인 곰 사육농장 철거해주세요' 등의 청원이 일제히 올라온 상태다.

이와 관련 최 활동가는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이 사육 곰 관련 후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생츄어리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에는 적어도 연 10억원 이상의 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큰 돈이 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츄어리는 비단 사육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는 "국회에서 동물원법 전면개정안이 통과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곳들이 꽤 있는데 추후 거기서 라쿤이나 미어캣, 앵무새 등 야생동물이 엄청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다른 야생동물들도 함께 (생츄어리에)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출처 : 녹색연합 홈페이지) © 뉴스1
(출처 : 녹색연합 홈페이지) © 뉴스1

한편 2003년부터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해 활동해 온 녹색연합에 따르면 사육곰 탈출 사고는 2000년 이후 확인된 것만 20건 발생했다. 바로 직전에는 지난 5월 울산의 농장에서 사육곰이 탈출했다가 5시간 여만에 포획된 바 있다. 

동물단체들은 이날도 사육곰 산업 종식에 대한 환경부의 로드맵 수립과 실행을 요구하고 있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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