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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은 유통사 책임, '소비기한'은 누구 책임?…낙농·유업계 '반대'

식약처 '소비기한 표시제' 추진 vs "제품 변질 가능성 커져" 반발
"원유 재고량 늘어날 우려도"…"유통업계 감시 방안 필요" 주장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2021-06-09 06:30 송고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우유를 고르고 있다.2018.8.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우유를 고르고 있다.2018.8.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낙농가와 유업계가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문제가 생긴 제품과 관련해 제조·유통사·소비자까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고 원유 재고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현행 0~10℃ 이하인 유제품 냉장 유통 온도를 선진국 수준인 0~5℃ 이하로 먼저 조정하고 유통업계를 단속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오염도 낮출 수 있다"며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음식물·포장 쓰레기 증가 주범"…'유통기한'보다 긴 '소비기한' 추진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할 수 있도록 '식품표시광고법'을 포함한 관련 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다. 연내 논의를 마치고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1985년 도입한 유통기한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일정 기간 제품 섭취가 가능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 음식물과 포장 쓰레기가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반면 소비기한은 규정된 보관조건에서 소비하면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유통기한보다 더 여유가 있는 기준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을 포함한 (OECD) 37개국과 동남아·아프리카에서 사용 중이다.

소비기한 도입과 관련한 논의는 약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2009년 한국소비자원은 관련 조사를 통해 0∼5℃의 냉장온도를 유지할 경우, 우유는 유통기한 만료 후 50일, 유음료(액상커피)는 30일, 치즈는 70일이 경과한 시점까지 섭취 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국회 논의도 시작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소비자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건 심의가 보류되면서 논의가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유통기한은 '유통사' 책임이기도…법적 냉장온도 하향부터"


소비기한 도입에 낙농가와 우유업계의 반발이 거센 이유는 주요 식품 가운데 유제품의 변질 가능성이 비교적 높고 유통 환경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현재 우유 유통기한은 실제 섭취가 가능한 기간의 60~70%선에서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봉하지 않은 우유를 냉장보관할 경우엔 소비기한은 이보다 최대 50일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유업계가 지적하는 소비기한 도입의 가장 큰 문제는 제품 변질 문제다. 생산부터 소비자 섭취까지의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제품 변질에 개입하는 '변수'가 그만큼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유업계 관계자는 "현행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유통기한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납품 이후 유통업체가 정해진 기간 안에서 보호를 해주겠다는 책임이 있었다"며 "소비기한을 도입하게 되면 제품 변질 가능성은 높아지는 반면 문제 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우려는 우유 수요와 공급 순환이 느려진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유는 공산품과 달리 소가 원유를 만들다 보니 생산량이 불규칙적"이라며 "1주일에 우유 1리터(ℓ)를 보관 또는 소비하던 기간이 2주일로 길어지면 원유 재고량이 늘어나 타격이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소비기한 도입과 관련해 소비자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주부 박모씨(56)는 "오래된 제품을 먹게 될 것이란 생각에 찝찝한 마음이 든다"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대학생 이모씨(26)는 "우유는 유통기한이 조금만 지나도 배탈이 날 것 같아 버리기 일쑤였는데 보관을 길게 할 수 있다고 표기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소비기한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유제품 가격이 변동할 가능성은 당장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가격 연동제'에 따라 원유 공급량이 급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가공 업체는 시장 수요와 공급에 상관없이 통계청 우유 생산비 지표와 물가상승률에 연동한 원유 가격을 낙농가에 지불하고 있다. 낙농가는 우유 수요가 감소해도 공급량을 자발적으로 줄이지 않는다.

유업계와 낙농가는 소비기한 도입 이전에 유통업계를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사전 준비부터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합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지난 4월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성명을 내고 "법적 냉장 온도 기준을 현행 0~10℃ 이하에서 선진국 수준인 0~5℃ 이하로 조정해야 한다"며 "변질된 제품의 유통을 차단할 수 있는 법적 냉장 온도 관리방안과 감시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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