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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리뷰]익숙한 자본주의의 향기 '동숲' 모바일

겉모습은 ‘동숲’이지만 익숙한 모바일 게임의 향기
확률형 아이템도 등장…기존 ‘동숲’과 게임 방향성 달라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2021-05-01 09:03 송고
'나비보벳따우'로 유명한 '동숲' 캐릭터 K.K.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나비보벳따우'로 유명한 '동숲' 캐릭터 K.K.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인터넷을 떠도는 오래된 격언은 모바일 게임에도 적용된다. 무료로 풀려 모두가 즐길 수 있지만, 확률형 뽑기에 한번 맛 들이면 주식판 '잡주'에 물린 투자자마냥 헤어나올 수 없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무한 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모바일 게임은 경쟁 심리를 부추기며 '현질'을 유도했고, 어른이 된 게이머들은 불안한 미래에 저당 잡힌 삶에서 벗어나 게임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다.
게임에서도 무한 경쟁이 이어지지만 현실의 삶보단 덜했고, 게임에 들이는 비용은 현실 속 '현질'보다 '가성비' 높은 만족감을 줬다.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현실의 욕망을 대리하며 자본주의에 충실한 사업 모델을 가져갔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돈을 들인 만큼 강해진다.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이 같은 한국 모바일 게임의 대척점에 있다. 경쟁도 현질도 없다. 닌텐도 스위치와 게임 타이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게이머는 무인도에 덩그러니 내던져진다. 뚜렷한 목표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레벨로 대표되는 성장 시스템도 없다. 게임 속 시간은 현실과 동기화돼 천천히 흘러간다. 낚시나 하면서 안분지족의 삶을 즐기다 보면 동물 친구들이 늘고, 섬의 모습이 조금씩 바뀐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지 않아도 된다.

이 지점에서 '동숲'은 한국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리고 지난 3월 동물의 숲 모바일 버전인 '동물의 숲 포켓 캠프'가 국내 정식 출시됐다.

◇겉모습은 ‘동숲’과 같지만 과정은…

'동물의 숲 포켓 캠프'의 기본 골격은 기존 '동숲' 시리즈와 같다. 캠핑장을 배경으로 재료를 모아 가구를 만들어 배치하고, 아바타를 꾸밀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고, 주변 동물들과 친해지는 게 주된 내용이다. 또 캠프가 주제인 만큼 집 대신 캠핑카를 확장하고 꾸미게 된다.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꾸미기 요소가 중심이다. 가구, 패션 등 꾸미기 아이템을 하나씩 해금하고, 이에 맞는 재료를 모아 제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변 공간과 아바타를 꾸미고 이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게 전부다.

꾸미기 요소가 중심이 되는 건 기존 '동숲' 시리즈와 같다.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뉴스1
꾸미기 요소가 중심이 되는 건 기존 '동숲' 시리즈와 같다.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뉴스1
이 과정을 얼마나 지루하지 않게끔 알차게 꾸리느냐가 '동숲' 시리즈의 관건이다. 동숲 시리즈는 이를 게임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대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느린 호흡으로 게임을 천천히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실제 낮 시간대면 게임 속 세상도 낮이 배경이 되고, 밤이 되면 '동숲' 세계도 어둑어둑해진다. 계절도 현실과 맞물려 돌아간다. 각 시간대와 계절에 맞는 이벤트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365일을 주기로 꾸준히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게이머에게 플레이를 강요하거나 채근하지 않는 게 ‘동숲’이 추구하는 게임 디자인이다. 이른바 '느림의 미학'이다.

하지만 모바일 버전 '동물의 숲 포켓 캠프'는 이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돈을 들인 만큼 시간이 단축된다. 예를 들어 나무에서 과일 아이템을 따면 과일이 다시 자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현질'을 하면 바로 과일을 재수확할 수 있다.

또 가구나 패션 아이템을 제작할 때도 콘솔 버전 '동숲'과 달리 짧게는 수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씩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현질'을 하면 바로 제작을 마칠 수 있다. 정원의 꽃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 이 같은 장치가 들어가 있다.

모든 과정은 ‘현질’로 생략할 수 있다.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모든 과정은 ‘현질’로 생략할 수 있다.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동숲'의 탈을 쓴 '모바일 게임'…확률형 아이템도

시작은 좋았다. '나비보벳따우'로 유명한 강아지 캐릭터 'K.K.', 그리고 마스코트 '여울이'가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모바일로 ‘동숲’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느낌이 싸했다. 게임에 접속하면 연달아 등장하는 팝업창. 앞으로 며칠 남았다고 재촉하는 시즌 이벤트. 계절 아이템을 얻는 데 드는 시간과 이를 상쇄해주는 '현질'. 흔들리는 동공 속에 느껴지는 익숙한 K-모바일 게임의 향기.

그리고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했다. '포춘쿠키'라고 불리는 '가챠템'에는 종류별로 각 테마에 맞는 가구와 의상이 담겼는데 이 아이템들은 정해진 확률에 따라 등장한다. 대부분의 포춘쿠키는 게임 내 유료 재화 '리프 티켓'으로 사야 한다. 심지어 게임을 재접속하면 가장 먼저 발생하는 이벤트가 포춘쿠키를 사러 가는 일이다. 여기에 '시즌패스'식 구독형 과금 시스템도 있다. 글로벌 게임답게 동서양의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 모델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하는 모바일 ‘동숲’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하는 모바일 ‘동숲’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물론 일부 모바일 게임처럼 소수점 단위의 극한 확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적당히 못 생기게 꾸미면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나타나는 시각화된 시간과 수치들은 나를 채근했다.

한국 모바일 게임이 끊임없이 게이머들에게 강해져야 하는 동기 부여를 한다면 '동숲'은 멍 때리면서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함께 게임의 본질을 되짚어 준다. 경쟁을 통해 쥐어짜는 재미가 아닌 하나씩 천천히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물의 숲 포켓 캠프'는 '꾸밈 노동'을 강요하며 돈을 들인 만큼 꾸밀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결과물은 비슷해 보여도 그 과정과 게임의 방향성은 기존 '동숲' 시리즈와 전혀 다른 게임이다.

동서양의 과금 시스템을 총망라한 모바일 ‘동숲’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동서양의 과금 시스템을 총망라한 모바일 ‘동숲’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그런데 어느덧 시간 재촉에 익숙해지는 나. 목표 없는 '동숲'보다 도전 과제 팝업창을 가득 띄우는 '모바일 동숲'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정 없이 결과를 얻고 싶은 마음에 과금 창으로 손가락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그러고 보니 힐링 게임 '동숲'도 경쟁적으로 즐기던 한국인들이 아니던가. 잡초를 캐서 번 시드 자본으로 '무트코인'(시세가 달라지는 게임 속 ‘무’ 아이템을 이용한 시세차익)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게임기 시간을 조작해 현실과 동기화된 시간을 빠르게 돌려 무인도 속에서 단기간에 '새마을운동'을 일구는 의지의 한국인.

어쩌면 우리는 게임 속 힐링마저 사치로 여기는 건 아닐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현질의 기쁨에 빠져버린 몸이 된 건 아닐까.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동물의 숲 포켓 캠프 갈무리) © 뉴스1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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