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프로이트가 모르핀 진통제를 거부한 이유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0-10-22 12:00 송고 | 2020-10-23 10:23 최종수정
정신분석학자로서 명성이 절정에 달할 때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른손에 시가가 보인다. / 사진제공 = 위키피디아
정신분석학자로서 명성이 절정에 달할 때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른손에 시가가 보인다. / 사진제공 = 위키피디아
얼마 전 연극 '라스트 세션'이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됐다. 이 공연을 직관하지는 못했지만 공연 리뷰 기사를 몇 번씩 정독했다. 이 연극은 무신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유신론자인 옥스퍼드대 교수 C.S. 루이스(1898~1963)의 가상 설전(舌戰)을 연극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루이스는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하다.  

'라스트 세션'은 1년간 런던의 하늘 아래서 산 83세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40세의 루이스가 만났더라면 하는 가정에서 연극 대본이 쓰였다. '라스트 세션'은 201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무대에 오른 연극 '프로이트의 마지막 강의'가 원작이다. 연극으로 올라가기에 앞서 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비교하는 하버드대 강의가 있었고, 그 뒤로 책과 TV 다큐멘터리로 나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평생을 산 프로이트는 1938년 3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영국 런던으로 망명해 1년여 뒤 런던에서 눈을 감았다.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의 연극 리뷰를 읽으면서 나는 프로이트가 던진 몇몇 대사에서 그만 혼자 실실 웃고 말았다.  

"믿습니다 하면 구강암이 '할렐루야!' 사라지겠군!"

"그래서 히틀러가 망치를 휘두르는 동안, 신은 그 망치질에 누가 살아남을지 기다리고 있는 거구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니, 폴란드 사람들은 탱크 타고 몰려오는 나치에게 왼쪽 뺨을 내밀라는 거냐?"

이 장면을 극장에서 신구의 연기로 봤다면 커피를 뿜었을 것이다. 내가 연극 리뷰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웃었지만 나중에는 웃을 수 없었던 대사가 있었다.

"믿습니다 하면 구강암이 '할렐루야' 사라지겠군!"   
빈 베르크가 19번지 프로이트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조성관 작가 제공
구강암으로 33번 수술받아

프로이트는 노년에 구강암으로 고통을 받았고, 눈을 감기 전까지 구강암 수술을 서른세 번이나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구강암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나는 '빈이 사랑한 천재들'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탐구했고, 이후 책 제목에 '프로이트'만 들어가면 일단 사놓고 봤다. 지금까지 연구한 국내외 천재 54명 중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인물이 프로이트다.

그의 강인한 삶에의 의지를 우러르지 않을 수 없다. 진료와 글쓰기의 루틴을 지키기 위한 무서운 자기 절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낸 강철 같은 용기!

그는 늘 죽음을 의식하며 살았다. 두 아들이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는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전사통지서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1920년 딸이 어린 자녀들을 남겨놓고 인풀루엔자로 세상을 뜨자 죽음의 본능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가 구강암 진단을 받은 것은 1923년. 시가(Cigar)를 좋아해 시가 향을 너무 오래 맡은 게 원인이었다. 시가를 피우면 입안이 칼칼해진다. 의사가 시가를 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진료실에서 원고를 읽고 있는 프로이트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진료실에서 원고를 읽고 있는 프로이트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스물네 살에 시가를 접한 그는 하루에 스무 개비 이상의 시가 연기를 공중에 날렸다. 진료실에서 찍은 대표 사진의 오른손을 자세히 보라. 시가가 들려 있다. 긴장 속에서 하루 8시간씩 진료를 끝내고 오후 시간에 즐기는 시가의 향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가를 태우지 않고는 집중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시가는 그에게 자유였고, 정체성 그 자체였다.  

구강암 진단을 받고서 그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랬기에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책을 읽지 않거나 글(이나 편지)을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심지어 구강암 수술을 받은 날조차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병석에서 시름시름 앓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에게 합당한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하나의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몸이 약해지며 정신까지 마비되지 않는 것입니다. 맥베스 왕이 말한 것처럼 갑옷을 입은 상태로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프로이트가 단골 카페 란트만을 찾을 때마다 앉곤 하던 거울이 있는 자리. 조성관 작가 제공
프로이트가 단골 카페 란트만을 찾을 때마다 앉곤 하던 거울이 있는 자리. 조성관 작가 제공
 개선장군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대로 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반역죄가 드러나 갑옷을 입은 채 반란군에 의해 살해된다.  

프로이트는 죽음의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런던에서 산 집은 런던 북부 햄프스테드의 '마레스필드 가든' 20번지. 햄프스테드는 거대한 천연림 숲 '햄프스테드 히스'가 있어 고급 주택지로 유명하다. 토트넘 홋스퍼의 축구 스타 손흥민의 자택이 햄프스테드에 있다. TV다큐멘터리 ‘손세이셔널’의 첫 장면이 햄프스테드의 프로이트 집이었다.

이 집은 현재 프로이트 박물관으로 운용되고 있다. 프로이트는  런던 집을 빈의 베르크 가세 19번지 진료실처럼 꾸며놓았다. 책상 위에는 이집트 조상(彫像)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고, 환자를 진료한 기록이 담긴 노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의식을 잃느니 당당히 고통을 맞이하겠다."

1939년 3월, 그는 방사선 치료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진료를 계속했다. 그가 고통에 시달릴 때마다 주치의와 친구들은 진통제를 권했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를 거부했다. 정신이 희미해지는 모르핀 진통제를 거부했다. 뜨거운 물주머니를 볼에다 대어달라고 할 뿐이었다. 고통이 잠깐 멈출 때 그는 말했다.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고통이 없는 것보다 차라리 고통을 받으며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겠다."

통증의 빈도가 잦아지면서 결국 진료는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펜은 놓지 않았다. 
런던 햄프스테드 마레스필드가든20번지의 프로이트 박물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런던 햄프스테드 마레스필드가든20번지의 프로이트 박물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케이티 로이프의 저서 <바이올렛 아워>에 보면 '마레스필드 가든 20'에서 일어난 마지막 순간들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자 입안에서 괴사(壞死)가 진행되었고, 볼에 구멍이 뚫렸다. 고약한 악취가 진동했다. 언제나 자신을 떠나지 않았던 애견마저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딸 안 나와 주치의와 친구들뿐이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9월 들어, 그의 병세는 악화되었다. 어떤 통증에도 그는 소리치거나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의식을 잡아두려 고통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글조차 쓸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명철한 두뇌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재깍재깍' 시곗바늘이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순간에도 그는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가 눈을 감기 하루 전까지 읽은 소설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이었다.  

파리 센강에서 자살을 기도하려던 청년 라파엘은 우연히 원하는 것을 다 이루게 해준다는 나귀 가죽을 손에 넣는다. 나귀 가죽은 욕망을 이루게 해주지만 그럴수록 가죽 소유자의 생명도 줄어든다는 내용이다.

"아편이 우리 몸에서도 비물질적인 부분에 물질적인 힘을 발휘한 탓에 무척 강력하고 활발한 상상력을 지닌 그도 게으르고 나태한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울창한 숲속에 식물처럼 꼼짝하지 않고 웅크린 채 만만한 먹잇감이 나타나도 꿈쩍하지 않는 그런 게으른 짐승의 수준으로."

프로이트는 그런 짐승처럼 죽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9월22일 그는 '나귀 가죽'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9월23일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연초에 한 모임에서 사전의료의향서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참석자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벌써요?"라고 했지만 "60 넘으면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 아니냐"라는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이트의 충직한 제자였던 정신분석학자 어니스트 존스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죽음의 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프로이트였을 것이다."


author@naver.com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