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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V] 김희애·박해준의 결말, '부부의 세계'란 무엇이었을까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0-05-17 05:30 송고
'부부의 세계' 캡처 © 뉴스1
'부부의 세계' 캡처 © 뉴스1

부부의 세계란 무엇일까. 한 번 무너지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헤어나올 수도 없는 '관계'의 늪지대. 결말이 그려낸 '부부의 세계'는 그랬다.

16일 오후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 최종회에서는 무너져 내려버린 이태오(박해준 분)의 모습에 일말의 연민을 느끼는 지선우(김희애 분)의 모습과 그런 부모의 모습에 혼란을 겪는 아들 이준영(전진서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태오는 여다경(한소희 분)에게 버림을 받은 후 폐인이 됐다. 모두들 그가 고산을 떴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조용히 고산 집으로 돌아온 지선우와 이준영의 주변을 맴돌았다.

술에 절어 사는 이태오는 지선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했다. 지선우가 찢어버린 리마인드 웨딩 사진과 결혼식 사진을 다시 이어붙인 그는 이어붙인 사진 한 장을 지선우에게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태오의 그림자에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던 지선우는 이준영이 사라져버리자 패닉에 빠졌다. 이준영은 지선우가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이 집을 찾아온 이태오를 따라갔다. 아빠를 증오하면서도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준영이 내가 데려갈게'라고 적은 쪽지를 본 지선우에게 이태오가 전화를 걸었다. 이태오는 지선우에게 "준영이가 보고 싶어서.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어. 그것 뿐이었어. 선우야. 미안해"라고 말했고, 지선우는 "알아, 이해해. 괜찮은거지. 별 일 없는거지?"라며 셋이 함께 밥을 먹자고 설득했다.

이태오는 옆에 앉은 이준영에게 "내가 네 나이 만할 때 아빠가 집을 나갔어. 다시 안 돌아오셨어. 죽을 때까지. 넌 나처럼 만들기 싫었어"라며 넋두리를 했다. "곁에 두고 싶었어. 떨어져 있으면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테니까. 절대 그럴 수가 없었어"는 말에서는 그가 여다경과 새로운 가정을 꾸렸음에도 계속해 이준영을 데려오고 싶어했던 이유가 읽혔다.

지선우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알아냈고, 그는 초췌한 이태오의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져 그를 데리고 아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이태오는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한 듯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지선우가 자신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우리 새로 시작하자. 그동안 서로 잘못한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나도 당신 용서할테니까 당신도 날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아들이 지켜보고 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준영이를 위해서 준영이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자, 처음엔 힘들겠지만, 서로 노력하다보면 준영이도 안정될 거고, 그렇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떼를 부렸다.

지선우는 여전한 전 남편의 모습에 분노했다. 그는 "처음부터 나한테 너 뿐이었어.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라고 말하는 이태오에게 재결합의 가능성이 없음을 밝혔다. 이어 "당신이 정신 못 차리고 우리 주위를 맴도니 계속 불안해 할 수 없어서 그래서 아들 앞에서 제대로 기회를 주려는데 이것마저도 망쳐버리냐"고 절규했다.

폐인이 된 아빠와 고통받는 엄마의 사이에서 힘겨워하던 이준영은 화장실에 들어가 홀로 오열했다. 세 사람은 식당을 나왔고 이태오는 "준영아 넌 아빠처럼 살지마. 네 곁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걸 잊어버리면, 아빠처럼 멍청한 짓을 하게 돼. 널 제일 아껴주고 지켜주는 사람을 잊어버리면 모든 걸 잃는 다는 거 명심하라"고 말했다.

"아빠 잊어버리고 살아, 다시는 안 나타날게"라는 이태오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이준영과 지선우는 자리를 떴고, 차에 타려고 했다. 그 순간 이태오가 달려오는 트럭에 사고를 당할 뻔 했고, 지선우와 이준영은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지선우는 독백을 통해 "내 심장을 난도질한 가해자, 내가 죽여버린 치열하게 증오하고 처절하게 사랑했던 당신, 적이자 전우였고, 동지이자 원수였던 내 남자, 남편"이라며 속내를 밝혔고, 이태오를 끌어안았다.

이준영은 그런 부모의 모습에 또 한 번 혼란스러워했고 결국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길로 이준영은 가출을 해버렸고, 1년간 부모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선우는 "잘못을 되돌릴 기회가 한 번은 있을까. 깨달은 뒤에는 모든 게 늦어버린 뒤였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며 후회했다.

이태오는 고산을 떠난 후 여기저기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재기를 위해 노력했다. 지선우는 아들을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잠깐이 될지, 영원이 될지 모르는 절망의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부부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남았다. "삶을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건 내 한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라는 지선우의 말에는 아픔과 후회, 지난한 시간들에 대한 용납이 담겼다.

지선우는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아프게 곱씹으면서 또한 그 아픔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매일을 견디다 보면 어쩌면 구원처럼 찾아와 줄지도 모르지. 내가 나를 용서해도 되는 순간이"라며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말미에는 아들 이준영이 집으로 돌아온 듯한 화면이 이어졌다.

'부부의 세계'가 그려낸 '부부의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지선우와 이태오는 강점과 결점이 뚜렷한 인물이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에게 지독한,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일면 닮은 부분도 있다. 이들은 종종 사랑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살아가며, 상대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느끼지만 한 번 무너져 내려버린 관계는 끝내 봉합할 수는 없었다.

이같은 '부부의 세계'는 손제혁(김영민 분)과 고예림(박선영 분)의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감정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고, 때로는 연민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요동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신뢰가 끊어져 버린 관계, 쏟아진 물이 돼버린 엄연한 현실을 지탱할 수는 없다. 결국 부부의 세계란 머리카락 한올처럼 작은 균열에도 무너져 내리기 쉬운 연약한 것이며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가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처절한 복수극의 뒤에 남는 교훈이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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