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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면초가' 이주노동자 "지원금 없고 불법체류 우려도"

대부분 지원금 제외…"모두의 재난이고 세금도 내는데"
구직기간 차일피일…열악한 거주시설에 감염위험도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2020-04-26 06:03 송고
© News1 

"파주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18일부터 일이 끊겼어요. 가족한테 생활비 보내고 30만원 정도 남았어요. 사장님이 2주일 일을 쉰다고 했고, 기숙사에서 지내고는 있는데, 2주 지나도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풀만, 31세, 남, 네팔)

"3월부터 일이 없어서 출근을 못한 지 3주가 넘었어요. 일이 없는 친구들이랑 같이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한 달에 170만원 벌어서 125만원 정도를 가족한테 보냈는데 걱정이에요. 지금은 생활비가 없어서 친구한테 돈을 빌렸어요." (새톰, 25세, 남, 캄보디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조용히, 꾸준하게 고통받고 있는 집단이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긴급재난문자나 방역수칙 관련 안내문을 읽을 수 없다는 어려움을 겪었다. 마스크 지급에서도 소외됐다. 최근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지급하는 지원금에서 소외되고 있다.

제조업 현장과 농촌 등에서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채우면서 지역경제를 굴리고 납세의 의무도 다해온 이들의 마음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져온 차별에 이어 또 한번 생채기가 나고 있다.

사회로부터의 소외감과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한파와 생계 걱정 외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서 집단감염 우려가 나타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이 같은 국가적 홀대가 코로나19에 훌륭하게 대처했다는 '방역 모범국'의 품격에 흠집을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응에 호평을 받았던 싱가포르도 최근 이주노동자 생활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바 있는데, 한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News1 

◇"세금과 보험료 내지만 지원 제외…외국인은 바이러스 피해가나요"

우다야 라이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 평균 10통 이상씩 이주노동자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전화를 받고 있다. 늘상 있던 사업장에서의 차별대우에 코로나19로 인한 구직 어려움까지, 이주노동자들은 갖가지 이유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재난지원금 문제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달 중순 서울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1인시위 중 서울시에서 담당 직원이 나와서 '줄 근거가 없다'는 설명을 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지난 13일 문제를 제기하니 검토해보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 진행이 어떻게 됐다는 얘기는 없네요."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주민세와 소득세, 지방세 등 세금을 납부하고 있고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를 내는 등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대표도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 11만원가량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9년 7월부터는 외국인 건강보험이 당연가입으로 조정됐고,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도 내국인이 평균적으로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만큼을 의무로 납부해야 한다. 이 액수가 월 11만원 정도인데, 내국인의 70%선을 버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버거운 액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대표는 "사회적 존재로 취급받지 못하는 데 반해 세금과 보험료는 다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데도 이주노동자들은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니, 그들은 코로나19가 피해가기라도 한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경기도가 발표한 '재난기본소득' 지급안 초안에 외국인이 아예 빠져 있었던 점을 비판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한 '경기도 외국인 인권 지원에 관한 조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경기도는 지난 20일 도내 외국인 중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에게는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하지만 그 대상이 총 10만9000명으로, 경기도 내 60만명이 넘는 외국인의 수에는 여전히 한참 모자라다. 60여개 이주민 인권단체는 이 같은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형태로 제기했다.

이자스민 정의당 이주민인권특위위원장과 이주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이주민 차별·배제하는 재난지원금 정책 국가인권위 진정 공동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확산으로 각 지자체가 발표한 재난지원금 정책에,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이주민들을 제외하는 건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2020.4.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구직기간 끝나면 가족생계 막막…정부가 기간 늘려줬으면"

지원금이 '섭섭한' 문제라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기 때문에 '구직기간'이 차일피일 흘러간다는 건 덜컥 겁이 나는 문제다.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정해진 구직기간 내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이 되기 때문이다.

라이 위원장은 "일자리를 옮길 때 3개월 동안의 구직기간이 주어지는데, 이 기간에 일자리를 못 구하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나가면 다시 취업비자를 받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동안 생계유지가 막막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들은 3개월의 구직기간 동안 고국에 다녀온 뒤 나머지 기간 동안 일자리를 찾곤 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출국한 이들 중에는 고향에서 발이 묶여 구직기간을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입국하지 못한 채 구직기간을 모두 날려버린다면 다시 취업비자를 받을 때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라이 위원장은 "정부가 구직기간을 50일가량 늘려주기는 했지만 네팔 같은 경우는 공항이 폐쇄돼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상황이고,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구직기간을 조금 더 늘려주는 지원책도 정부가 생각해준다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안 이사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자가격리 대상이 될 경우 하루 10만원씩 14일 동안 총 140만원의 격리시설 이용비를 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외국인은 따로 머물 곳이 없는 경우 격리시설 이용비를 하루 10만원꼴로 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변변한 거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 고국에 다녀온 이주노동자 친구가 있는데 자가격리 대상자가 돼버렸다"며 "일단 재단 예산으로 140만원을 지원하고 있는데, 벌이가 넉넉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를 모두 부담하게 하는 것은 너무 배려가 없는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지난해 사울 중구의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어 차별을 멈추라고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박혜연 기자

◇"농촌 이주노동자, 80%가 열악한 곳서 거주…싱가포르 상황 우려"

최근 싱가포르 내 이주노동자 집단 생활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고, 미등록 외국인의 경우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80%가량이 비닐하우스 숙소,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간이시설, 컨테이너박스 등 '거주지'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런 임시거주시설에는 변변한 냉난방장치가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폐가를 일부만 개조해 숙소로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고용주들은 이처럼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면서도 한 달에 50만원가량을 월급에서 숙소 비용 명목으로 떼어간다"며 "고용노동부 지침이 이런 임시주거시설을 임금 공제의 근거로 정해주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방법은 노동부 지침에 사업주가 임금을 공제할 수 있는 주거시설이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요건을 정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17년 임시 주거시설의 안전·위생·사생활을 보장하고, 주거환경 기준 마련 및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하라는 내용의 권고를 한 바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던 싱가포르에서는 이달 이주노동자 기숙사 등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확진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한 달새 2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김 대표는 "위생을 유지할 수 없는 열악한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싱가포르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꼬집었다.

라이 위원장도 덧붙였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받는 차별은 더 아프고 화가 납니다. '차별하지 마세요'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세요' 하는 요구는 30년 넘는 이주노동자 역사가 흐르는 동안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요구를 해야 할까요?"

싱가포르 외국인 노동자들이 격리 중인 기숙사 건물 발코니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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