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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덕후의 인썸니아] 2015년의 인디음악을 돌아보며

(서울=뉴스1) | 2016-01-01 08:00 송고
지금은 사라진 프리버드에서 공연 중인 밴드 IMGL.
새로운 것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것을 돌아보고 잘한 일, 잘못된 일을 가려 반성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듯합니다. 잘한 일은 더 잘 하도록, 그리고 잘못된 일은 또다시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겠죠. 2016년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저도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기억하고 싶은 일들을 기록해 두고자 합니다. 물론 인디 음악에 관해서요.

많은 밴드가 앨범을 냈고 공연을 했고, 새로운 밴드가 생겨났고 또 어떤 밴드는 사라졌습니다. 홍대 인근의 유서 깊은 공연장 몇몇은 문을 닫았습니다. 인디밴드의 공연을 처음 시작했다는 '살롱 바다비'와 오랫동안 새로운 밴드를 발굴해왔던 '프리버드'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영업을 종료했지요. 핫한 동네가 아니어서 임대료가 그리 비싸지 않았던 때 밴드의 공연이라는 문화가 창조되고, 점차 그 문화가 알려져서 덕분에 유명해지면 임대료가 올라 더이상 문화가 유지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은 홍대 인근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현상이 일어난 대표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겠죠. 암울한 현실입니다.
그 외에, 한 해 동안 인디 음악계에서 일어난 일 중 잊을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 매우 주관적인 시각에서 다뤄보겠습니다. 덕후아줌마가 선정한 네 가지 사건!

로로스의 해체
밴드 로로스의 단독공연.

로로스는 2005년에 결성되어 무려 10년 동안 훌륭한 음악을 해 왔습니다.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도재명 님과 지금은 '라이프 앤 타임'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기타 진실 님이 만든 로로스는, 간혹 멤버가 바뀌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밴드가 지향하는 음악의 완성도를 높여가며 꾸준하게 활동을 해 왔습니다. 10년간 딱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두 앨범은 모두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2014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W.A.N.D.Y'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과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1집 이후 6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2015년 3월에는 화려한 단독공연을 펼쳤던 로로스는 7월에 갑작스러운 팀 해체 소식을 전했습니다. 도재명 님이 밝힌 해체의 이유는, 그간 일부 멤버들이 밴드 탈퇴 의사를 밝혀왔으며 리더로서 그로 인한 죄책감과 피로감의 누적으로 더이상 밴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꺾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도재명 님은 지금까지 두 번의 싱글을 발표하며 솔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로로스의 음악을 2집이 나오고서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조용하고 몽환적인 보컬이 끝나면서 이어지는 웅장한 연주와 아름다운 첼로 소리에 홀딱 반해서, 앞으로 이 밴드의 공연은 몽땅 다 보러 다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시점에 이들의 해체 소식을 듣고는 너무나 허망해서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슬프게 남아 있습니다. 사랑이 막 시작된 순간 연인이 외국으로 영영 떠나버린 심정이랄까요.

제가 로로스의 공연을 처음 본 건 영등포 아트홀에서 열린 3월의 단독공연이었는데, 크고 깨끗한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속에서 어마어마한 연주를 펼치는 이들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지루함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대단한 음악이었고 대단한 연주였는데도 연주자들의 표정은 어딘지 어두워 보였어요. 10년간 밴드를 유지한다는 게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아니면 밴드 내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훌륭한 밴드의 공연을 더이상 볼 수 없고 그 멋진 음악을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건 엄청난 상실감이었습니다.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 반의 사망

브로큰 발렌타인의 멋진 모습. (사진출처 :  www.facebook.com/brokenvalentine )
로로스의 해체 결정 후 얼마 되지 않은 8월의 어느 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밴드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 반(본명 김경민) 님의 사고사 소식이었습니다. 교통사고라고도 했고 계곡에서 익사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이 뭐든 서른네살 젊은이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2002년에 결성되어 국내외의 여러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2011년 제 1회 탑밴드에 출연하여 존재감을 굳힌 밴드입니다. 반 님은 2002년부터 무려 13년간, 잠시 해외 유학을 갔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최초멤버로서 꾸준히 보컬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뛰어난 보컬 실력에 출중한 외모, 게다가 지(知)력까지도 갖춘 완벽한 남자였습니다.

저는 브로큰 발렌타인의 공연을 세 번밖에 본 적 없지만,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반 님의 멋진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특별한 의미를 두었던 밴드가 아니었음에도, 재능있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브로큰 발렌타인의 팬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절절한 슬픔을 고스란히 느꼈고 함께 슬퍼했습니다. 내가 애정하는 밴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자꾸 떠올랐고 2015년의 여름은 우울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제8극장 서상욱, 월세요정 되다
밴드 제8극장의 보컬 서상욱.
제8극장은 이전에도 이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 밴드인데요.(http://news1.kr/articles/?2485816 참조) 이 밴드의 보컬 서상욱 님은 작사, 작곡, 연주, 노래실력은 물론이고 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사람입니다. 표리부동한 면이 전혀 없고 생각이나 감정을 항상 솔직하게 표현하여, 공연을 한번 보면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되는 좋은 사람이지요.

서상욱 님은 11월의 어느날 월세를 내는 날이 다가오는데 돈이 부족한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호소하기 위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 링크와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순식간에 글이 공유되어 퍼졌습니다. 2000건 넘게 공유된 이 글은 심지어 유명 가수 이승환 님도 공유를 했고, 그래서 신문기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으며 결국 세 신문사에서 이 글을 기사화했습니다. 자고 나자 스타가 되었다는 말처럼, 글을 써 올려놓고 잠이 들었던 서상욱 님은 깨고 나서 벌어진 사태를 보고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며, 밀려드는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받기 위해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야 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uhgan/posts/10207634631361840

내 집을 갖기는 고사하고 전세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집 또는 운영하는 가게에 매달 월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가게를 운영하여 손님이 많아지면 건물주는 건물값이 올랐다며 월세를 올리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운영을 하겠다며 가게 주인을 내쫓기도 합니다. 인디밴드 역시 열심히 공연을 해서 가난한 관객들이 돈을 모아주면 적은 액수의 돈을 받아 살고 있는 집의 월세를 내야 하며, 공연을 주최하는 클럽은 그렇게 번 돈으로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번 돈은 모두 건물주에게 월세로 바쳐야 하는 모든 월세쟁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상욱 님이 위트있는 글로 표현해 준 것이죠. 사람들은 상욱 님을 월세요정이라 불렀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저는 사실 좀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글 하나가 기사화되었다고 제8극장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리야 없겠으나, 이런 일을 계기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제8극장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들의 음악을 들어본다는 건 좋은 일임에 틀림없으니까요. 사실, 며칠 후 제8극장의 단독공연 티켓이 판매되었는데 오픈된 지 2분 만에 완전히 매진되었답니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것이 아니라 우연한 일이었지만 얼마나 기분 좋은 보상인가요.(좀 더 큰 장소에서 하면 좋았을걸)

인디뮤지션에 의한, 인디뮤지션의 모욕
나상현씨밴드 (사진출처 : 나상현씨밴드 페이스북 페이지)
나상현씨밴드는 서울대학생들로 이루어진 학생밴드입니다. 요즘 서울대에서는 밴드활동이 인기인지 제법 많은 밴드들이 만들어졌으며 낙성대 부근의 카페에서 학생밴드들이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그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나상현씨밴드는 홍대의 인디 신으로 진출하여 활발하게 공연을 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음악은 스물두 살이라는 멤버들의 나이에 어울리는 귀엽고도 발랄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반복적인 멜로디와 의미 없는 듯 의미 있는 가사가 매우 중독성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밴드의 보컬로 활동 중인 중견 뮤지션과, 현재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 등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에서 나상현씨밴드를 모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비평'이라는 미명으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저질스러운 대화를 통해서 나상현씨밴드에 대해 '음악을 진지하게 업으로 삼지도 않을 거면서 서울대랍시고 허접한 콘셉트로 장난이나 쳐대는 밴드' (나상현의 페이스북 글 : www.facebook.com/sanghyun.nah 에서 발췌)라 치부하며 그들의 노래 '뿌리염색'을 '가치도 실체도 없는 빵점짜리 음악'이라 폄하했습니다. 더욱이, 나상현씨밴드의 팬들까지도 음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외모나 학벌에 눈이 먼 '빠순이' 취급을 하며 히히덕거렸습니다. 그들은 방송에서 또 다른 밴드를 언급하면서, 영국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는 그 밴드의 보컬이 변태적 성행위를 경험했을 것이라는 등 있지도 않은 일을 떠들어대며 성적으로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대체 어떤 음악이 다른 음악보다 우월한지 열등한지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걸까요? 듣고 감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음악이 아닐까요? 그것도 같은 뮤지션의 입장에서, '내 음악이 너의 음악보다 우월하다' '너의 음악은 가치가 없다'고 평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뮤지션들과 팬들은 모욕감에 격분했고 크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팟캐스트 방송의 운영자들이 인디 신에서 어느 정도 파워를 가진 존재이고, 또한 그리 크지 않은 인디음악 사회에서 다들 이래저래 얽혀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응하거나 거세게 항의하지도 못하고 분을 삭여야만 했습니다.

팟캐스트 방송의 운영자들은 나중에, 그렇게 해서라도 인디음악에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아마 그들도 해서 되는 말이 있고 안 되는 말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관심을 끌고자 한다면 같은 판에 있는 후배 뮤지션을 조롱할 것이 아니라 대형기획사와 대기업 음원판매 사이트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음악산업에 대해 용감하게 대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바른음원 협동조합'을 만들어 달걀로 힘껏 바위를 내리치고 있는 신대철 님처럼 용감하게.

2016년에는

새해에는 더이상 밴드의 해체나 공연장의 폐업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일도 상처를 주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갖지 못한 훌륭한 창작력을 가진 사람들은 복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정해 놓은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계속 행복한 덕후생활을 이어나가시고, 인디밴드의 공연을 한번도 본 적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은 한번쯤 공연장을 찾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필자 강지연은 

나이가 좀 되는 서울아줌마.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패션스쿨을 다녔으나 배운 것을 써먹은 적은 없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 시골의 대명사 오클라호마에서도 살았던 경험 있음.
2007년 우연히 본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에게 한눈에 훅 빠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탠딩 공연이라는 걸 가보게 되고…
그 공연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연주 모습에 넋을 잃고 그 후 홍대 인근 클럽을 쏘다니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Bunka 패션스쿨 졸업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졸업


k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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