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레이와 시대]근대 연호는 어떻게 바뀌었나?
유일하게 연호쓰는 국가…245번째 연호 '레이와'
2차 대전 패전 후 일왕 신격 부정…'상징적 존재'로
-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4월30일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이 물러나고 5월1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즉위한다.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令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연호(年號)는 군주국가에서 자신의 치세연차(治世年次)에 붙이는 칭호로 중국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러나 현재는 전 세계에서 일본만 유일하게 연호를 쓰고 있다. 일본의 첫 연호는 아스카 시대인 645년 정해진 '다이카'(大化)다. '레이와'는 245번째 연호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연호 사용을 금지하면서 연호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1979년 연호법을 제정하면서 연호를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법제화했다.
다음은 일본의 근대 이후 연호의 변천사다.
◇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
'메이지 시대'란 1868년 군주제를 부활시키자는 왕정복고의 대호령에 의해 막부가 물러나고 천황을 중심으로 메이지 정부 수립 후 무쓰히토(睦仁) 일왕이 서거할 때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
이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일본이 서양 문물을 흡수했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에게도 이 시기는 잊지 못할 굴욕을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이 외세와 맺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1876년)와 한일병탄(1910년)이 메이지 시대에 이뤄졌다.
◇ 다이쇼(大正) 시대(1912~1926)
무쓰히토 일왕의 뒤를 이어 요시히토(嘉仁) 일왕이 통치하던 때로 식민지를 확대하던 시기다. 앞서 메이지 시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군사력과 군비 산업은 급격하게 확대됐다.
여기에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영국과의 동맹에 따라 연합국 측에 합류해 전쟁에 참전,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일본은 당시 중국 산둥성(山東省) 내 독일의 영토를 점령하고, 태평양의 마리아나 제도와 캐롤라인 제도 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만주와 몽골 등에서 이권을 얻어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은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이 시기부터 일본의 군비 증강과 중국 진출 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 쇼와(昭和) 시대(1926~1989)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64년간 재위하던 시기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연호다. 이 시기 일본은 전체주의와 군부독재의 파시즘 등이 절정에 이르렀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등으로 격변을 겪었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한 뒤에는 국민주권과 인권 등이 강조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 민주 국가로 재탄생했다. 그러면서 일왕이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시기가 저물어 갔다.
이 시기 일본 경제는 1950년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고 이는 '일본의 기적'(Japanese Miracle)이라 불렸다. 이 당시 일본의 성장 속도는 다른 주요 국가들보다 세 배 더 빨랐다. 그러나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무역 침체를 겪으면서 가팔랐던 성장세는 완만해졌다.
◇ 헤이세이(平成) 시대(1989~2019)
히로히토 일왕의 뒤를 이어 아키히토 일왕이 재임하던 시기다. 헤이세이 시대가 앞선 시대와 극명하게 다른 점은 일왕에 대한 인식이다. 히로히토 선왕이 2차 대전에서 패한 이후 '인간 선언'을 통해 자신의 신격을 부정하면서 일왕의 역할은 축소됐다.
이에 따라 아키히토 일왕은 재위기간 중 '상징적 존재'로서만 머물렀다. 전쟁을 직접 겪은 아키히토 일왕은 침략 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평화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권의 보수와 우경화현상에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경제적으로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강세를 보이고 금리가 낮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투자 붐이 일어났다. 도쿄의 부동산 가치는 그 해에만 60%까지 뛰었다. 닛케이225지수도 3만9000포인트까지 급등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어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이른바 '잃어버린 10년'에 들어갔다. 이 시기 동안 물가는 하락했고 경제 성장세도 고꾸라졌다.
이후 2010년대 들어서면서 과도하게 높게 평가된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등의 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최근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고용 시장에서는 '오와하라' (기업이 합격한 구직자가 더 이상 구직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약속을 강요하는 신조어)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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