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만의 '알박기' 파월에…트럼프 '워시 연준' 매파에 먹힐 위험

파월, 5월 의장직 물러난 뒤 '평이사' 유지 시사…'친트럼프 소수' 구도 불가피
트럼프 '파월 수사' 고집하다 워시 인준 지연시 의장 공백…금리인하 더 멀어져

2017년 11월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시 자신이 지명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17.11.02.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리 인하의 드라이브를 걸려면 현재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에게 겨눈 '수사의 칼날'부터 거둬들여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파월 의장이 관례를 깨고 202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해 금리 결정에 결정적 한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연준 의장에 지명한 케빈 워시가 제때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할 위험까지 더해지면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금리 인하를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의사봉 넘겨도 '4대 3'…파월이 쥔 과반, 트럼프파 수적 열세

파월이 임기가 끝나는 5월 의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연준을 떠나지 않고 이사직에 남아 2028년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월가와 워싱턴 정가에서 우세하다. 이 경우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표 대결 구도는 트럼프에게 불리해진다.

FOMC는 의장을 포함한 연준 이사회 7명, 당연직인 뉴욕 연은 총재 1명, 그리고 지역 연은 총재 4명(순번제)으로 구성된다.

현재 이사회 7명 중 트럼프와 코드가 맞는 비둘기파는 스티븐 마이런(1월 임기 종료), 크리스토퍼 월러, 미셸 보우먼 3명이다. 마이런은 1월 임기가 종료됐는데 후임이 결정되지 않아 잔류 중이다.

관례대로 파월이 그만두면 그 자리에 워시를 앉혀 7명 중 4명을 친트럼프 인사로 채울 수 있지만, 파월이 이사직을 고수하면 마이런 후임에 워시를 채우는 고육지책이 불가피할 수 있다.

파월을 필두로 필립 제퍼슨 부의장, 마이클 바 감독 규제 부의장, 리사 쿡 이사 등 4명은 연준 독립성 수호를 중시하는 파월 진영으로 분류돼 친트럼프 인사 3명보다 많다.

여기에 투표권을 가진 5명의 지역 연은 총재들까지 가세하면 트럼프의 입지는 더 좁아진다.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로운 지역 연은 총재들은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 성향이 강하다.

파월의 이사직 유지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이는 1948년 매리너 에클스 이후 78년 만의 사건이 된다. 해리스 트루먼 당시 대통령에 의해 의장직에서 해임된 에클스는 평이사로 남아 후임 의장을 견제하며 3년을 더 버텼다.

파월은 가장 최근 FOMC 이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연준 이사로 남아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경제 모델이 인공지능(AI) 혁명을 반영하지 못하는 뒤처진 것이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말도 안된다(Don't make sense)"고 일갈했다.

그는 "더 완벽한 모델이 있다면 가져와 보라(Bring them on). 우리가 검증해보고 쓰겠다"고 맞받아쳤다. 불확실한 미래의 직관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인플레이션 재발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이는 파월이 이끄는 연준을 강하게 비판한 워시 지명자와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다.

워시는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인플레이션은 성장이 아닌 정부의 과도한 지출 탓이라며,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과감히 축소하되 기준금리는 내려 실물 경제의 숨통을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AI가 가져올 물가 하락 효과를 낙관하며 글로벌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중소 은행 규제를 풀어 신용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강력한 '친시장 개혁'을 예고했다.

'5월 15일의 악몽'…의장 공석시 불확실성 위험

또 워싱턴 정가가 긴장하는 이유는 워시가 제때 인준을 받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15일 끝난다. 이때까지 워시가 인준받지 못하면 연준은 사상 초유의 의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된다. 상원 인준을 맡은 상임위원회의 공화당 핵심 의원인 톰 틸리스 의원은 법무부의 파월 의장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어떤 연준 인사도 인준할 수 없다고 벼르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후임자 취임 전 임시 의장을 누가 지명하느냐를 두고 법적 해석이 엇갈린다. 백악관은 대통령 권한이라 주장하겠지만, 연준 규정상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블룸버그는 "누가 임시 의장을 뽑을지는 해결되지 않은 법적 문제"라며 "트럼프 참모들도 이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비화해 금리 인하가 더 늦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파월 죽이기가 자칫 연준의 마비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원하는 11월 중간선거 전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파월을 살려 보내주는 '출구 전략(Off-ramp)'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블룸버그는 표현했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파월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트럼프의 결단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는 2일 파월에 대한 수사를 중단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 끝까지 간다(No, take it to the end)"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공화당에서 파월 수사 중단을 지지하는 틸리스 의원이 은퇴하는 2027년 1월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틸리스 의원은 11월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