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면 전액 돌려줄게"…세차장에 날아든 가짜 양주시 공문

소방 기관 사칭만 1309건…피해액은 29억 5000만원
전문가 "사칭범죄 점점 고도화…확인 습관 들여야"

교묘하게 조작된 가짜 공문./뉴스1

(양주=뉴스1) 양희문 기자 = 소방용품 대리구매에 집중됐던 관공서 사칭 사기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장비 구매를 유도하는 '맞춤형 선구매·후환급후환급 사기'로 진화하고 있다.

금은방에는 본인 확인 키오스크를, 세차장에는 폐수처리 설비를 사도록 유도하는 행태가 횡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자체 로고와 직인을 흉내 낸 공문을 보내 "먼저 구매하면 비용을 전액 환급하겠다"고 유혹하고, 따르지 않으면 현장점검과 과태료가 기다린다고 겁줬다.

양주시 로고·직인까지 위조

12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경기 양주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A 씨는 양주시 환경정책과 수질관리팀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성은 개인 휴대전화로 "12일부터 오·폐수처리시설 점검을 실시한다"며 관련 공문을 받았는지 물었다. A 씨가 받지 못했다고 하자 문자메시지로 공문과 지원사업 신청서를 보냈다.

양주시 로고와 직인 모양이 찍힌 공문에는 폐수처리시설에 'IoT 기반 수질 모니터링 시스템'과 '자동 슬러지 제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설치 시 개선명령과 과태료,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적혀 있었다.

반면 지정업체를 통해 장비를 먼저 구매하면 심사를 거쳐 비용 전액을 돌려준다고 안내했다. 신청서에는 사업자등록번호와 사업장 소재지, 환급계좌와 예금주 등 사업·금융정보를 기재하도록 했다.

A 씨는 통화를 마친 뒤 양주시청 대표번호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시청은 해당 내용으로 전화하거나 공문을 보낸 사실이 없다며 사기 전화를 주의하라고 안내했다. 실제 구매나 송금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가짜 공문은 실제 부서명과 지원사업 용어를 섞어 신뢰도를 높였다. 양주시에는 폐수배출업소 지도·점검을 담당하는 환경정책과 수질관리팀이 실제 존재한다.

양주시가 사물인터넷 측정기기 설치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혼동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기후에너지과가 대기배출시설을 대상으로 설치비의 최대 60%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폐수처리 장비를 지정업체에서 구입하면 비용 전액을 돌려준다는 가짜 공문과는 다르다.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금은방엔 키오스크 구매 요구…소방 사칭 피해 29억 원

같은 날 서울 일부 금은방에도 유사한 가짜 공문이 전달됐다. 사기범들은 보이스피싱과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본인확인 키오스크 설치 지원사업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

서울시 명칭과 로고, 위조 직인이 들어간 문서에는 '설치비 100% 지원'과 '미설치 시 과태료 부과' 등의 문구가 담겼다. 특정 업체에서 키오스크를 먼저 구매하면 심사를 거쳐 비용을 환급한다는 방식도 양주 세차장 사례와 같았다.

두 사건의 범행 주체가 같은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관공서 로고와 직인을 위조하고 법령 개정과 현장점검을 내세운 뒤 특정 장비를 먼저 구매하게 하는 구조는 동일하다.

관공서 사칭 사기는 이미 전국적인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최근 1년간 확인된 소방기관 사칭 범죄 시도는 1309건이다. 그중 161개 업체가 실제 피해를 봤으며 피해액은 29억 5000만 원이다.

초기에는 소방서 명의로 구급함과 사다리 등의 대리구매를 요청한 뒤 대금을 가로채는 '노쇼 사기'가 많았다. 최근에는 점검과 과태료를 내세워 특정 업체의 고가 소화기나 소화장치를 구매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사칭 사기 피해 신고센터에도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225건이 접수됐다. 그중 17건이 실제 피해로 이어져 4억 3630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개인 휴대전화로 특정 업체를 소개하거나 긴급한 구매와 비용 선지급을 요구하면 거래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대가 알려준 번호가 아니라 기관 홈페이지에서 대표번호와 담당 부서 연락처를 직접 찾아 확인해야 한다.

김영식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 관공서 사칭 범죄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며 "개인정보나 금전을 요구할 시 무조건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주시 관계자는 "시에선 유선으로 지원 사업 안내를 하지 않는다"며 "최근 관공서 사칭 전화가 잇따르고 있으니 담당 부서에 전화해 꼭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피해를 당할 경우 경찰에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yhm9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