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날 국회·선관위·체포조로 흩어진 軍 1600명의 행적 총정리
정보사, 계엄 선포 2시간 전 선관위 인근 대기…'사전 공모' 정황
일부 계엄군, 국회 계엄해제요구안 통과 후에도 즉시 복귀 안 해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국방부는 지난 2024년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총 1600여 명의 군 병력이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1600여 명의 병력은 국방부·합동참모본부·육군본부를 비롯해 △국군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육군 특수전사령부 △국방부조사본부 등의 소속으로 계엄 선포 직후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선거연수원, 방송인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업체 '꽃', 더불어민주당 당사 등에 투입됐다.
국방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태스크포스)는 이날 그간 확보한 제보와 조사·감사 결과로 확인한 비상계엄 당시 군 병력의 이동 및 부여 임무 등을 재구성한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군 조사에 따르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쯤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회의로 개최했다. 그는 이후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정진팔 전 합동참모본부(합참) 차장을 부사령관에 임명하고 작전회의실에 계엄상황실 구성을 지시했다.
이로부터 17분 후 박 전 사령관은 조종래 전 육군본부(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에게 연락해 육본 소속 부·실장들을 서울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육본 부·실장 등 34명은 버스 2대를 나눠 타고 4일 오전 3시쯤 계룡대를 출발했으나, 30여분 만에 차를 돌렸다. 이 버스는 '2차 계엄 선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계엄 당일 국회에 투입된 병력은 총 740여 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계엄 선포 후 가장 먼저 국회로 출동한 부대는 특전사였다. 특전사는 3일 오후 10시 21분 출동지시를 받았다. 707특임단은 헬기 12대에 나눠 탑승해 3일 오후 11시 48분쯤 국회에 착륙한 후, 다음날 오전 0시 30분쯤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특전사 소속 1공수여단 소속 280여 명은 707특임단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작한 시간쯤 국회에 도착했고 시민들의 저지로 50여 명만 국회 경내에 진입했다. 1공수여단 병력 114명은 민주당사로 출동하기도 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3일 오후 오후 10시 53분 출동지시를 받고 같은날 오후 11시 30분쯤 국회에 도착해 직접 현장을 지휘했다. 수방사만 유일하게 사령관이 직접 현장을 지휘했다.
수방사 군사경찰단 소속 70여 명은 4일 오전 0시 4분쯤, 제1경비단 병력 130여 명은 오전 0시 10분쯤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계엄 당시 부정선거설 수사를 목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여론조사 업체 장악을 위해 동원된 군 병력은 약 650명으로 조사됐다.
특히 정보사는 계엄 선포 전부터 병력을 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동희 전 계획처장을 비롯한 정보사 인원 10명은 계엄 선포 2시간 전인 3일 오후 8시 30분쯤부터 출동해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 인근에서 대기했다.
이들은 계엄 선포 직후 선관위에 진입해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뒤이어 특전사 3공수여단 병력 130여 명은 4일 오전 1시 7분쯤 선관위에 도착해 청사 내부로 진입했다. 방첩사 소속 27명은 4일 오전 0시 55분부터 과천 선관위로 출동했다.
또 경기 성남에 있는 정보사 100여단에는 계엄 선포 1시간 전인 3일 오후 9시 30분부터 김봉규 전 중앙신문단장을 비롯한 정보사 요원들과 구삼회 2기갑여단장, 방정환 전 국방부 전시작전통제권전환TF장 등 4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계엄사 산하 제2수사단을 맡아 부정선거설 수사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사와 특전사 인원들은 선관위 과천청사와 수원연수원, 여론조사업체 '꽃' 사무실로도 출동했다.
김용현 장관은 3일 오후 10시 27분 방첩사에 주요 인사 체포를 지시했다.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10분 뒤 조지호 경찰청장과 박헌수 국방부조사본부장에게 체포조 구성 지원을 요청했다.
이어 방첩사는 4일 오전 0시 25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주요 인사 체포를 위해 49명의 수사 인력을 국회로 출동시켰다.
노영훈 전 방첩사 군사기밀수사실장 등 4명은 수방사 B-1 벙커를 구금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방첩사의 요청을 받은 국방부조사본부는 각 군 수사단을 포함해 수사관 100명 명단을 작성하고 수방사와 수도군단 구금시설 가용 여부를 확인해 방첩사에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조사본부 수사관 10명은 4일 오전 0시 58분쯤 국회로 출동했으나 국회 계엄해제요구 결의안 통과 후인 오전 1시 10분쯤 복귀했다.
일부 계엄군은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이 통과됐음에도 원대복귀 하지 않았고, 계엄사령부는 추가 가용 병력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박안수 전 사령관은 계엄해제요구안 의결 이후에도 경기 양평에 있는 육군 제2신속대응사단의 출동 소요 시간을 확인하는 등 추가 가용부대를 파악해 역시 '2차 계엄 선포'를 준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회 츨동 계엄군 중 1공수여단 병력은 4일 오전 1시 40분부터 다른 병력들보다 가장 먼저 철수를 시작했다. 뒤이어 수방사 병력들은 오전 1시 50분쯤 철수했다.
김 전 장관은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의결로부터 2시간여 뒤인 4일 오전 3시 20분쯤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병력 복귀를 지시했다. 이를 기점으로 707특임단은 국회 투입 병력 중 가장 늦은 오전 3시 23분에야 국회를 떠났다.
대통령실은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가결로부터 3시간여 뒤인, 3일 오전 4시 26분 국무회의를 거쳐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부정선거설 수사를 맡은 2수사단 인원들은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를 결정한 지 1시간여 뒤인 4일 오전 5시 30분쯤에야 해산했다. 방첩사 주요 인사 체포조 인원들도 계엄 해제 이후에야 복귀했다.
국방부는 이같은 조사 결과에 기반해 계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원 180여 명을 파악했고, 이 중 114명을 수사 의뢰했거나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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