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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서해랑길을 가다…④신명의 장단 길(9코스)

금세 익숙해지는 장단에 메김 한 소리 실리면… “청산도 절로절로, 신명도 절로절로”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2024-04-27 09:09 송고
편집자주 날이 풀리고 산하엔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길 따라 강 따라 굽이굽이 얽힌 삶과 역사의 흔적을 헤아리며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뉴스1>이 '서해랑길'을 따라 대한민국 유일의 '민속문화예술 특구'인 진도구간을 걸으며 길에 새겨진 역사, 문화, 풍광, 음식, 마을의 전통 등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신들메를 고쳐 매고 함께 떠나볼까요.
진도 서해랑길 9코스는 국립남도국악원 초입의 귀성삼거리를 들머리 삼아 시작된다. 국악 전문연수와 활성화를 통한 지역 문화 예술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시설로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무료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국립남도국악원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국립남도국악원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남도국악원 옆에는 진도아리랑체험관과 진도홍주촌이 자리하고 있다. 아리랑체험관은  장구를 형상화한 건축물로 이색적 외관 자체가 눈길을 끈다. 전국 곳곳의 아리랑을 비교해가며 감상하거나 직접 불러볼 수도 있다.     
◇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나 가세"     

남도국악원과 아리랑체험관, 홍주촌에서는 '보배섬' 진도의 진면모를 체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어린아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도 제격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시설을 뒤로 한 남도의 신명이 발길을 따라 나선다. '놀다가세 놀다나가세/ 저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나 가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마을 입구의 조형물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아리랑마을 입구의 조형물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대칭을 이뤄 금세 익숙해지는 아리랑 장단에 메김 한 소리 실리면 '청산도 절로절로, 신명도 절로절로'다.

'서해랑길 9코스는 서망으로 가지만/ 우리네 인생길은 가는 길을 모르네/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메김소리 한 곡조 지어 읊으며 귀성삼거리를 지난다.

길은 나절로미술관을 지나 바닷길이 내륙으로 강처럼 길게 스며든 굴포리를 거쳐 천둥산으로 들어선다.     

◇ 민간 1호 간척지와 고산 윤선도     

굴포마을에는 400여 년 전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가 갯벌을 막아 농지를 조성했다는 우리나라 민간 1호 간척지가 있다.

간척사업에 굴포마을을 비롯해 백야, 신동, 남선마을 사람들이 노동력을 제공했고, 품삯으로 토지를 받았다. 노동이 끼니에 불과하고, 쌀이 권력이던 시절이다. 불하받는 땅은 꿈같은 생시였다.

굴포마을의 굴포항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굴포마을의 굴포항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지금도 이들 4개 마을주민들은 '고산사(孤山祠)'에서 당제와 고산을 기리는 감사제를 지내고, 고산이 막은 원둑은 '고산둑'으로 불린다.

고산사에는 220년 수령의 해송과 함께 고산의 '어부사시사'와 '오우가'를 새긴 대리석 시비가 세워져 있다.

'앞 포구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강촌 온갖 곳이 멀리서 보는 빛이 더욱 좋다'. 풀어 읽고 가는 어부사시사의 춘사(春飼) 한 대목이 봄길의 운치를 더한다. 

윤선도 사당 '고산사'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윤선도 사당 '고산사'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길은 굴포삼거리에서 남선마을과 동령개삼거리를 지나 천둥산 임도로 진입한다. 가는 길의 고갯길에 작은 시비 동산이 조성돼 있다. 발길은 그냥 가자며 재촉하고, 눈길은 쉬어가자고 떼쓴다.     

◇ 진양조 가락으로 흐르는 '천둥산 임도'     

재촉하는 발길을 달랠 겸 굴포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시비 동산의 쉼터에 앉아 돌에 새겨진 시 한 수 읽고 간다. 이향아 시인의 '여름산을 바라보고 있으면'이다.

시인은 '…/ 멀리 여름산/ 고매한 눈길을 쫓아가노라면/ 죽는다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모르겠다. 시인이 하필 '여름산을 보면 죽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했는지를. 산벚꽃 휘날리고 진달래 각혈하는 오늘 같은 봄산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천둥산 임도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천둥산 임도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대로를 벗어나 천둥산을 오르는 임도는 산길을 오간 자동차 바퀴자국을 따라 휘어지고 꺾어지며 느릿느릿 진양조 가락으로 흐른다.

우거진 숲 기슭에 동백꽃이 피고지고, 고개를 넘어 온 봄바람은 연두빛 초록에 살랑인다. 산길에서 누리는 오랜만의 호사다.  

오늘도 내일도, 낮에도 밤에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던 숲길은 남도진성(南桃鎭城)이 있는 남동리로 해안가로 들어서면서 소멸한다. 마을 앞 갯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곰솔밭을 지나면 진성의 남문 옹성이 자태를 드러낸다. 

◇ 남도진성과 최후의 항전     

남도진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으로 배중손의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과 최후의 항전을 벌인 성이다. 배중손 장군이 이곳 남도진성 전투 때 전사하고, 살아남은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간 곳이라고 전해진다.

남도진성의 남문 옹성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남도진성의 남문 옹성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남도진성 남문 앞으로는 '가는골(세운천)'이라고 부르는 개천 위를 두 개의 홍교(무지개다리)가 연이어 지난다. 홑 무지개 뜨는 단홍교와 쌍무지개 뜨는 쌍홍교다. 수군진 앞을 흐르는 개천과 홍교치고는 규모가 작지만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일품이다.

높이 5m 정도의 성벽에 오르면 서남방으로 튀어나온 서망산과 망대산 사이의 내해가 펼쳐진다.

진성 앞 내해에서 제주로 패주하는 삼별초군의 어지러운 뒷모습을 쫒으며 발길은 구간의 종점인 서망항으로 향한다.

패주과정이었을까. 제주로 가는 길목의 진도 앞섬인 하조도에는 배중손 장군의 후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사는 읍구마을이 있다. 행여 배중손의 마지막 숨결이 하조도에서 멈췄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망항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서망항  2024.4.26./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남도진성에서 서망항까지는 2.8㎞ 남았다. 바닷가 산기슭을 끼고 가는 길에 숲 사이로 바다가 숨바꼭질한다.     

여행 팁 – 진도 서해랑길 9코스는 국립남도국악원- 귀성삼거리- 굴포마을- 고산사- 천둥산 임도- 남도진성- 서망항으로 이어지는 12㎞의 길이다. 4시간이면 넉넉히 종주 가능한 난이도 중하급이다. 
굴포마을에 졸복탕으로 유명한 '굴포식당'이 있다. 된장에 끓여낸 복탕은 가격이 저렴(1인분 1만4000원)하면서도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무료 리필이 가능한 복탕 단품식당이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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