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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채플린, 칸영화제에 소환되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2-05-26 12:00 송고 | 2022-07-06 14:58 최종수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칸 영화제 개막식에서 깜짝 영상 연설을 했다. © AFP=뉴스1 © News1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칸 영화제 개막식에서 깜짝 영상 연설을 했다. © AFP=뉴스1 © News1 

찰리 채플린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현재 세계 문화계의 관심은 이달 17일(현지시간) 개막한 프랑스 칸영화제에 온통 쏠려 있다. 오는 28일 폐막하는, 가장 권위 있는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은 어느 작품에 돌아갈 것인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칸영화제 개막식 화상 연설에서 찰리 채플린 영화의 한 대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인간에 대한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는 죽을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간 권력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는 한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 대사는 찰리 채플린이 제작·감독·주연한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분이다. 알려진 대로 '위대한 독재자'는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를 조롱한 영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화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 채플린을 불러냈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독재자가 있고 자유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영화계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영화계가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새로운 채플린이 필요하다."
"우리는 승리의 결말을 보장할 영화가 필요하고, 영화는 매 순간 자유의 편에 서 있을 것이다. 채플린의 영화가 독재자를 무너뜨린 것은 아니지만 영화 '위대한 독재자' 덕분에 영화계가 조용히 있을 수 없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 포스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영화 '위대한 독재자' 포스터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찰리 채플린(1889~1977).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영화인. 찰리 채플린의 이름 앞에는 배우, 감독, 제작자, 작곡가가 붙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왜 채플린을 등장시켰을까. 앞서 언급한 대로 그가 '위대한 독재자'로 아돌프 히틀러를 조롱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독재자'는 유성영화다. 이 영화가 나온 1940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8년의 뮌헨협정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합병한 독일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전 유럽이 히틀러에 벌벌 떨 때다.

'위대한 독재자'는 토매니아라는 가상의 나라에서 펼쳐진다. 채플린은 1인 2역을 맡는다. 독재자 힌켈과 기억상실의 유대인 이발사. 유대인 이발사는 기억을 잃기 전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다.

유대인 이발사는 파시스트들이 유대인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콧수염을 달고 나온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한 장면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채플린과 젤렌스키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희극배우 출신이라는 점이다. 젤렌스키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도 화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의 연설을 분석해 보면 인문적 교양이 상당한 수준임이 드러난다. 코미디는 연예계의 여러 분야 중 머리가 좋고 독서량이 많은 사람만이 살아남는 분야다.

채플린은 무성영화의 황제였다. 대나무 지팡이를 든, 출신도 거처도 불분명한 떠돌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인생 낙오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감독은 채플린이 최초였다.

사회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패배자'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 곤경에서 구하거나 악행을 일삼는 자들의 양심을 일깨운다는 게 채플린 무성영화의 일관된 주제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채플린은 어떻게 떠돌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떠돌이는 채플린의 어린 시절의 투영(投影)이다.

채플린의 아버지는 뮤직홀의 3류 가수 찰스, 어머니는 뮤직홀의 3류 배우 한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3류 연예인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승자 독식'이 가장 적나라하게 전개되는 곳이 연예계다. 두 사람은 뮤직홀 포스터 맨 아래에 이름을 올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찰리 채플린이 열살 무렵 1년여 살았던 집 외벽에 붙어 있는 플라크. 조성관 작가 제공
찰리 채플린이 열살 무렵 1년여 살았던 집 외벽에 붙어 있는 플라크. 조성관 작가 제공

사글셋방을 전전하던 때인 1889년 런던의 빈민가 램버스에서 채플린이 태어난다.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부모는 출생 신고도 제때 하지 못한다.  

생활이 쪼들리고 좋지 않은 일이 겹치면서 부부의 골은 깊어졌고, 결국 찰스가 집을 나간다. 홀몸으로 형제를 돌봐야 하는 한나. 집세가 싼 다락방에 살며 삯바느질로 하루 벌어 하루 먹었다. 형제는 누더기를 걸쳤고 다락방을 옮겨 다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에게 정신질환이 나타난다.

어머니의 양육이 불가능해지자 형제는 고아원에 보내진다. 모성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형제는 고아원에 방치된다. 1년6개월 만에 어머니와 재회하면서 형제의 밑바닥 생활은 다시 재연된다.

갖가지 허드렛일을 하며 푼돈을 버는 희망이 없는 나날. 1898년 채플린에게 가느다란 빛이 비친다. 며칠간 아들을 데리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이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연기의 기본은 흉내 내기다. 아들은 한번 본 것을 기막히게 재연했다. 자신은 가수로서 실패했지만 아버지는 연예계에 나름 안목이 있었다. 인맥을 활용해 아들을 아역극단에 취직시킨다. 하지만 아동극단 생활은 2년으로 끝난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어머니가 아들을 극단에서 나오게 했기 때문이다. 열두살 소년은 다시 기약 없는 생계 전선에 내몰린다. 이발사 조수, 병원 심부름꾼, 호텔 보이, 옷가지 행상···.

'셜록 홈스'에서 급사 빌리역을 연기할 때의 찰리 채플린/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셜록 홈스'에서 급사 빌리역을 연기할 때의 찰리 채플린/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어머니가 정신병이 재발해 병원에 들어가면서 채플린은 홀로 남겨진다. 이때 형 시드니가 동생을 다시 극단에 데리고 가면서 드디어 서광이 찾아온다. 극단에서 '셜록 홈스'의 급사인 '빌리'역 즉석 오디션이 벌어진다.

급사역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몇 년 후 채플린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카노극단에 발탁되었고, 1910년 대망의 미국 순회공연을 하게 된다.

1913년 미국 순회 공연 중 무성영화사의 사장 맥 세넷이 그를 발견한다. 그는 채플린이 무성영화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영화 촬영을 하면서 채플린은 스스로 지구상에 없던 떠돌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 세상에 왔다갔거나, 지금 활동하는 배우 가운데 채플린만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찾기 힘들다. 채플린이 미국 무성영화의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그의 연기력은 이미 런던에서 체득한 것이다.

떠돌이는 언제 다시 봐도 웃음을 준다. 그런데 웃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웃음 뒤에는 묘한 페이소스가 한 줄기 바람처럼 인다.  

1913년 미국 순회 공연 중 카노 극단의 신문광고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1913년 미국 순회 공연 중 카노 극단의 신문광고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런던 램버스에 가면 채플린과 연관된 장소가 여러 곳 있다. 케닝턴로 287번지 타운하우스, 메슬리가 2층집 등이다. 케닝턴로 287 타운하우스 옆에는 '도그 하우스'라는 술집이 있는데, 이곳에 들어가면 아버지 찰스의 단골 술집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메슬리가 집은 채플린이 아역배우 시절 잠깐 살았던 집이다.    

수년 전 전국노래자랑팀과 1박2일간 지내며 MC 송해를 취재한 적이 있다. 송해씨와 전남 고흥의 한 체육관 대기실에서 만났다. 그때 송해씨가 말했다.

"망가지는 연기, (그)거 영리하지 않으면 못 해요. 정극(正劇)과 비극을 모르면 희극은 절대로 못 해요. 우리는 정극과 비극을 다 배운 뒤 희극을 한 거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비극을 알아야 희극을 연기할 수 있다고 말한 채플린이 떠올랐다. 송해의 말은 곧 채플린의 말이었다.            

채플린의 어록으로 회자되는 말이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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