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매우 신중했던 경청가"…참모들이 떠올린 '인간 노태우·대통령 노태우'

'브레인' 김종인 "돌다리 두들기고도 안 건너고 걱정하는 사람" 회상
노재봉 전 총리 "데모 진압 건의에 '과거로 돌아가란 말이냐' 질책"…반기문·김기춘도 조문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2021-10-28 17:39 송고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6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 정부는 국가장을 결정했다. 2021.10.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6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 정부는 국가장을 결정했다. 2021.10.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향년 89세의 일기로 별세하면서 대통령 시절 그를 보좌했던 참모들이 회상하는 '인간 노태우, 대통령 노태우'에 대한 평가가 주목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30년 가까이 흐르면서 보좌진들도 대부분 70~80대의 고령이 되었으나 노 전 대통령과의 몇 가지 '일화'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 참모·각료 출신들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그 가운데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가 한 명 있다. 바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 전 위원장은 정치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일조했고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역임하며 '노태우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을 한 마디로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고 요약했다. 김 전 위원장은 28일 뉴스1과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은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두드려보고 또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출간한 자신의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상세히 풀어놨다. 이날 통화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먼저 한·소 수교 과정에서의 일화다. 김 전 위원장은 "1990년 6월 소련과의 수교를 위해 미국에서 극비리에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만남이 예정돼 있었는데 말 그대로 예정이지 확정된 만남은 아니었다"며 "미국에 도착하자 우리와 소련의 가교 역할을 한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이 느긋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골프나 치자'고 했지만 노 대통령은 호텔에서 계속 회담이 확정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과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정의당 대표가 되면서 대통령을 목표로 할 때 같은 국회의원이었던 김 전 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김 전 위원장은 "부탁을 받아서 수락했고 이후 내가 '사회개발연구소'라는 지금의 여의도연구원장 같은 것을 맡았는데 주 업무가 여론조사였다"며 "당시 여론조사가 매우 생소하던 때인데 여론조사를 열심히 했고 그때 우리의 결과가 다른 업체에서 하는 결과보다 노태우 후보(당시)의 지지율이 좀 낮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노태우 후보가 1등인 건 맞는데 다른 업체보다 우리 조사가 지지율이 좀 낮다 보니 노태우 후보가 나를 만날 때 '당신네 여론조사는 왜 그렇게 인색하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 위원장이 조문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0.2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 위원장이 조문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0.2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지나치게 신중한 인물이라고 기억된다는 노 전 대통령의 장점으로는 '경청'을 꼽았다. 김 전 위원장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1년 넘게 연락이 없다가 어느날 연락이 와서 만났을 때 나는 노 대통령이 불편할 수 있는 말을 쏟아냈다"며 "꽤 긴 시간 이야기했는데 표정은 불쾌했지만 느긋이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그게 노 대통령의 장점이자 강점"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도 커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보건사회부 장관을 하다가 경제수석을 해달라고 하길래 함께 일할 파트너들에 대해 좀 깐깐하게 군 적이 있다"며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내 의견을 다 반영해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억을 가진 김 전 위원장은 전날(27일)에 이어 이날도 빈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전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내가 모시던 분이니까 떠나기 전에 매일 같이 와서 보고 해야지"라고 헛헛한 마음을 나타냈다.

'노태우 청와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이후 국무총리까지 오른 노재봉 전 총리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노 전 총리는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은 산업화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성향에 대해서는 "서울에서 데모가 심한 날 한 참모가 '명령만 내려주면 확실히 진압하겠다'고 요청한 적이 있다"며 "그때 노 대통령은 그 참모를 보면서 '여보게, 나보고 과거로 돌아가란 말인가'라고 꾸짖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전두환 정권'과 다른 길을 가고자 했던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5·18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나타낸 데서도 잘 드러난다는 평가다. 아들 재헌씨는 매년 5·18국립묘지를 찾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재헌씨는 전날 "아버지께서 5·18에 평소 갖고 계셨던 미안한, 사과하는, 또 역사를 책임지는 마음을 중간중간 많이 피력했는데 직접적으로 말씀으로 표현하지 못하신 게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이날 조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반 전 총장은 "1966년 체결된 주한미군지위협정의 법적 문제를 개정한 것이 노 전 대통령의 공적 중 하나"라며 "당시 제가 이 내용을 노 대통령께 직접 보고드린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날 조문을 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정부로 이행할 때 과도기적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하셨다"며 "소련·중국과의 외교 수립, 올림픽, 인천공항과 고속철도 등 많은 업적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ickim@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