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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간 국회가 외면한 가사근로자법…민주당 의지만 남았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법적 근로자 지위 부여받지 못해
국회 무관심으로 18대 국회부터 법안 폐기만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김진 기자 | 2020-12-26 15:32 송고 | 2020-12-26 15:52 최종수정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조합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가사노동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1.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조합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가사노동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1.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여의도 정치권이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에만 매몰된 사이 국민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민생 입법들은 뒤로 밀리고 있다. 무려 67년간 법이 규정한 근로자에서 제외된 채 살아온 '가사 근로자'들이 대표적이다.

가사 근로자를 '법적 근로자'로 인정하면 당사자인 가사근로자도, 수요가 큰 맞벌이 부부도, 믿을 수 있는 가사·육아 도우미를 구하지 못해 경력단절로 내몰리는 3040 기혼자들도, 플랫폼 사업으로 키워보려는 혁신 기업들까지 모두 웃을 수 있지만, 정작 국회에는 그 목소리가 닿지 못하고 있다.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가사근로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법 제정안)은 가사근로자에 법적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는 동시에, 개인간 거래되던 가사서비스를 혁신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가사 사용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단 한 줄의 예외조항으로 인해 가사근로자들은 지난 67년간 법적 근로자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우리 일상에서 수요가 큰 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 간병인 등의 가사근로자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가사근로자협회)되는 가사근로자는 노동 관련 법령의 보호를 받지 못해 최저임금이나 연차휴가, 퇴직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같은 4대 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아직 기회는 있다. 법안 처리 의지가 없을 뿐이다. 

정부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가사근로자를 법적인 근로자로 인정하고, 4대보험 등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서비스의 내용과 이용요금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자와 이용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기준법 및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 등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각각 가사근로자법을 발의했다. 현재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에 계류 중이다. 소위 상정만 됐을뿐, 아직 본격적인 논의 전이다. 쟁점이 크지 않아 여당의 의지만 있다면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도 가능하다. 

이수진 의원은 뉴스1과 통화에서 "여야 간사에게 가사근로자법 공청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하겠다는 답도 받았다"며 "공청회를 열어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뜩이나 남성과 여성 임금 격차가 큰 현실에서, 여성 근로자들 비중이 높은 가사근로를 공식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난 17일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도 가사근로자법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고, 김태년 원내대표에게 요청했다"고 힘줘 말했다.

강은미 의원도 "가사근로자법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가 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안되고 사장됐다"며 "일단 이 법이 통과돼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가사근로자들은 임금을 지급받는 과정에서도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고 폭력 등 위험에도 노출돼 있어 법적인 필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의원과 강 의원은 최근 여성노동자 단체 등과 입법을 촉구하는 토론회를 가졌지만, 법안 처리의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환노위 관계자는 "이제 법안이 상정돼 논의될 타이밍인데 매번 다른 법안들에 밀려 올해도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근로기준법을 전면 개정하면 되지만 그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 우선 가사근로자에 대한 제정법으로 우회해 신속히 가사근로자들의 고용을 개선하자는 것인데 안타깝다"고 했다.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안호영 의원은 통화에서 "야당 간사(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와 이야기해보겠다"며 "빠른 시일내 논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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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통과를 관철하기에 가사근로자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힘이 약했고, 정치권도 무관심했다. 18대 국회에서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처음으로 발의한 이후 가사근로자법 제정은 10년여간 미뤄지기만 했다. 

노동자 보호 뿐 아니라, 시장과 산업 측면에서도 가사근로자의 양성화는 필수적이라는 평가다. 

영세 직업소개소를 통하거나 지인 소개 등 음성적으로 이뤄졌던 가사근로 서비스 시장은 서비스의 질과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표준계약서가 없어 서비스와 요금 관련 분쟁이 잦고, 가사근로자들도 폭언과 폭력 등에 노출된다.

가사근로자법이 통과돼 공식적인 가사서비스 업체들이 늘어나면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국회를 찾을 때마다 가사근로자법 처리를 호소하는 것도 이 분야 벤처 창업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최근 벤처업계에서는 가사근로자 플랫폼 형식의 사업들이 생기고 있다.

O2O(online to offline) 등 플랫폼 기술과 결합하는 벤처기업들이 시장을 키우려 하고 있다. 국내 한 스타트업은 1000명의 가사도우미를 직접 고용한 후 교육·훈련해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도로 관심을 모았다.

직접 고용으로 서비스 질을 높이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가사서비스 플랫폼 기업 생태계도 확대된다. 스마트폰 기반 서비스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험 가입 등 서비스 사후 관리도 가능해진다.

국내 대표적 업체인 '대리주부' 앱의 경우 누적 이용 고객이 150만명, 200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가사도우미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채용 계약이 불가하다는 호소가 나온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미국, 유럽 등 해외의 스타트업들은 가사근로자 플랫폼을 만들어 '일자리 붐(Boom)'을 띄웠다. 서비스 이용에 대한 세액공제나 그 인증기관에 대한 법인세 등 세제 지원, 바우처 제도를 통한 보조금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동반된다. 벨기에는 가사서비스에 대한 바우처 구매액의 약 60%를 정부가 지원하며, 제도 도입 5년 만에 관련 일자리가 150% 늘어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65개국 가운데, 10개국을 제외한 55개국이 노동법 또는 특별법을 통해 가사근로자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가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노동법 체계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나라는 터키, 이집트 등 극소수다.

노동법 전문가인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가사근로자의 법적 보호 측면과 산업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봐야 한다"며 "가사서비스 업계의 산업 관련 요청사항과 고용노동부의 구상, 경제부처가 할 수 있는 세제혜택 부분에 대해 합의점을 이뤄 정부안 수준에서 일단 입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seei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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