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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못 따르겠다" 법 대놓고 무시되는 '특고 산재보험'

"당신 말고 일할 사람 많아"…울며 겨자 먹기로 산재 포기
"입사 서류 20장 속 제외 신청서…필수 서류인 줄 알았다"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20-10-22 07:22 송고 | 2020-10-22 14:45 최종수정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故 김원종씨의 유가족과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김 씨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CJ대한통운 사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2020.10.17/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故 김원종씨의 유가족과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김 씨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CJ대한통운 사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2020.10.17/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정부에서 광적으로 하는 것 마음에 안 들고 이 정부에 부화뇌동하기 싫어서 못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최근 경기도에서 화물운송을 하는 A씨는 운송사 사장으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산업재해보험 제외신청서'에 서명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운송사 사장이 직원도 아니고 개별사업자인 A씨에게 직원들처럼 산재보험을 들어줄 수 없다고 화를 낸 것이다. 
A씨는 개인 사업자가 맞다. 하지만 산업재해보험법 특례에 따라 올해 7월부터 산재보험 당연 적용 대상자가 됐다. 그런데도 운송사 사장은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었다"며 "못 따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제가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하라는 거잖아요"라고 항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21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관계자는 A씨와 같은 사례들이 최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운송사들이 화물기사들에게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를 작성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일부 사업장에서는 보험을 들어주는 대신 지입료를 높여 보험료 부담을 차주에게 전가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08년부터 전속성이 인정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가입을 가능하게 했으며 최초 4개 직종에서 올해 14개 직종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특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원해도 사업주가 가입을 방해·회유하거나 가입 가능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제도 시행 12년째인 올해도 특고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특소 노동자의 입직자 수는 53만2797명인데 그중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수는 10만8032명으로 20.3%에 불과하다. 더욱이 특고 노동자들의 경우 입직신고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들까지 고려하면 산재보험 가입률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특고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산재 적용 제외신청 제도가 산재보험 가입을 막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지적한다. 산재 적용 제외신청은 특고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보험 가입을 거부할 경우 이를 허용하는 것인데 A씨의 사례처럼 보험료 부담을 피하려는 사업주가 제외 신청을 강요, 회유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신청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강동헌 화물연대 전략조직부장은 "특고 노동자의 경우 외견상 자유로운 계약관계로 비춰지지만 한 사업장에서 고정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별다른 고용 안전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사업주가 '당신 아니어도 일할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나오면 사업주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근로자들이 연이어 과로로 사망한 택배업종의 경우에도 사업주들이 산재 적용 제외신청을 강요하고 신청서를 대리 작성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됐다. 특히 올해 택배기사 9명이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데 그중 아무도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9명의 택배기사의 경우 7명은 사업주가 입직신고도 하지 않아 사실상의 유령 노동자였고 2명은 입직신고를 했으나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를 접수한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그중 8일 근무 중 숨진 택배기사 고(故) 김원종씨의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가 대리점에 의해 대필로 작성된 것이었다.

김씨의 사례로 이후 사업주들이 조직적으로 택배기사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막고 있다는 증언들이 당사자들로부터 계속해 제기됐다. 김태완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기사들과 사업주는 주종관계에 가깝다"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서명을 하라고 하면 기사들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김 위원장은 택배기사들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산재보험 신청서인 줄 알고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공: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제공: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대표적인 특고 업종인 보험설계사 사이에서는 산재 적용 제외신청이 '의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30대 보험설계사 정민수씨는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두차례 회사를 옮겼다. 이때마다 정씨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정씨는 "위촉계약을 할 때 20장 정도 서류에 서명을 하는데 3분 걸린다"라며  "이 서류 중에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가 필수서류로 포함된다. 일을 하려면 필수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인데 누가 거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오세종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를 쓰지 않으려 하면 '보험료를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산재 신청해도 정작 산재보험은 받기도 힘들다'라는 식으로 가입을 못 하게 회유를 한다"라며 "2014년에는 보험사들이 설계사들에게 '산업재해 보험 의무화에 반대한다'는 서명을 강제로 작성하게 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습지 교사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오수영 전국학습지노조 위원장은 "입사를 할 때 제외 신청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계약 서류인 중 하나인 줄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회사가 상해보험이 산재보험보다 더 낫다고 설명하니 잘 모르는 교사들은 그 말을 듣고 제외 신청서를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고용노동부와 여당은 올해 안에 특고 종사자에 산재 적용 제외 사유를 질병, 육아 등으로 제한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든 특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산재 적용 제외신청 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편 노동계에서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일반 사업장과 달리 특고 노동자의 경우 사업주와 종사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과하고 있어 산재보험 가입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게 때문에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월 배달업 종사자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특고 노동자의 경우 일반 노동자와 달리 산재 보험료는 회사와 반반씩 부담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사회국가의 원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근로의 권리, 평등권, 재산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특례 적용을 받으려면 1개 사업주에 전속되어 있을하고 있다는 전속성을 인젇 받아야 하는데 사업관련 수익을 사업주가 가져가는 만큼 위험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라며"업무 특성을 본다면 자부담비를 없애고 사업주가 부담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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