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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는 슬플 때 쓰는 것이란 어머니의 말, 깜짝 놀랐죠"

[이기림의 북살롱] 시집 '당신을 찾아서' 펴낸 정호승 시인
47년간 시 쓸 수 있던 원동력에 대한 정 시인의 생각들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20-02-22 14:26 송고 | 2020-02-22 19:37 최종수정
정호승 시인./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시 '수선화에게' 중)

산다는 건 즐거우면서도 힘든 일이다.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일 수도 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을 살다보면, 정호승 시인(70)의 대표시 '수선화에게'처럼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으면서 힘을 얻고, 다시금 살아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스물 넷, 푸릇푸릇한 나이에 시인이 된 정 시인도 그렇게 살아왔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을 쓰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꿈 많던 젊은 날을 살았다. 그러나 그도 세월을 피하지 못했다. 어느덧 일흔 살 노인이 됐고, 47년간 꾸준히 시를 쓴 덕분에 한국문학계의 거목이 됐다. 

정 시인이라고 어렵지 않은 삶,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았겠냐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계속 시를 쓸 수 있는 힘이 궁금했다. 최근 13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창비)를 펴낸 정호승 시인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카페 브람스에서 만났다. 그로부터 '꾸준함'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정 시인은 "지난 47년간 가슴 속에 시가 고이면 퍼내고, 다시 고이면 퍼내는 방식으로 시집을 냈다"며 "마치 옹달샘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물이 고이듯 시가 고이길 기다리면서 살았다"고 했다.

125편의 시를 담은 이번 시집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가 늘 그랬듯, 삶의 고통과 슬픔을 사랑과 용서로 승화하는 시를 썼다. 이번 시집의 신작시가 100편에 달하는데, 정 시인의 샘이 말랐을 것만 같았다. 47년을 그렇게 써왔는데, 아직도 남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정 시인은 "저는 시인이고, 시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 시는 인생을 다 바쳐야 겨우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시를 썼다"며 "시의 근원지는 항상 존재할지 모르는데, 제가 그 시의 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정호승 시인의 시에는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이나 고통스러운 현실이 많이 등장한다. 이번 시집의 원동력은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정 시인에게 "시는 슬플 때 쓰는 것"이라고 밝혓다. 

정 시인은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서 깜짝 놀랐다"며 "생각해보니, 저도 시를 쓰면서 기뻐서 써본 적이 없더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에 대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와 동료 작가의 죽음 등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일화를 소개했다.

정 시인은 "몇 년 전에 한 수녀님으로부터 비누로 만든 장미꽃다발을 선물 받아 어머니 머리맡에 둔 적이 있다"며 "그런데 1년, 2년이 지나도록 시들지 않더라, 나중엔 보기가 싫어져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장미를 버렸다"고 했다.

그는 "조화는 시들지 않기에, 생명이 없기에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꽃은 생명이 존재함으로 인해, 시들어버림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 시인은 인간에 대한 미움, 증오,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 시도 자주 쓴다.

"시는 역설과 반어의 형식으로 완성되는 것이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어머니 같이 진실된 희생적 존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내비친 것이죠."

정호승 시인은 이 시대에 시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점점 책과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시가 필요하고, 시인들이 필요한지.

"사람이 언제나 현실이란 도심 속에서만 살 수는 없잖아요. 정신없이 살다가 휴가를 떠나기도 하죠. 시를 쓰고 읽는다는 건, 바다를 보러가고, 자작나무 숲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아요. 바로 그런 곳에 시의 필요성, 효용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lg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