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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름 딴 태양·청자마을 기지개를 켜다

(대전·충남=뉴스1) 박종명 기자 | 2017-01-07 10:10 송고
담배 태양의 이름을 딴 태양마을 입구. 2017.1.7./뉴스1 박종명 기자 © News1
담배 태양의 이름을 딴 태양마을 입구. 2017.1.7./뉴스1 박종명 기자 © News1

30년도 더 된 일이다. “청자 피우는 남자한테는 선도 보지 말고 시집가라”는 말이 나돌던 적이 있다. 그 만큼 청자라는 담배는 한국 최초의 고급 담배로 70년대를 풍미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즐겨 피웠다고 알려진 태양(썬)이라는 담배도 있었다.

대전에 그런 담배 이름을 딴 마을이 잊힌 세월만큼이나 그 동안의 쇠락에서 벗어나 요즘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모자이크로 만든 태양마을 이야기  2017.1.7./뉴스1 박종명 기자 © News1
모자이크로 만든 태양마을 이야기  2017.1.7./뉴스1 박종명 기자 © News1

대전에서 신탄진 시가지에 이를 무렵 KT&G 공장 뒷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재해있는 공장들 사이로 마을이 보인다. 마을 초입 왼편에는 입석, 오른편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과 함께 태양마을이라는 이정표가 선명하다. 대전시가 시민제안 공모사업에 선정돼 1억 원을 들여 지난해 마을 전체 담장과 외벽 색채를 정비해서인지 말끔하게 단장한 담장을 따라 양옆으로 들어선 집들이 잘 닦아 놓은 세트장 같다.

태양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조병숙 노인회장(76)과 주민들에게 마을의 유래를 물어봤다. “남편이 전매청에 다녔는데 1974년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새마을 내 집  갖기 운동의 일환으로 50가구가 들어와 여태 살았죠. 신탄진연초제조창에서 만든 담배 ‘태양’을 따 태양마을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은 거고요. 직장도 가깝고 돈도 별로 안 들어 반지 팔아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샀거든요. 얼마나 튼튼하게 졌으면 요즘도 못을 못 박을 정도예요. 공기도 맑고 직원들이 모여 살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철도공작창이 들어오고 하나 둘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다들 시내나 외지로 나갔는데 우린 나가 살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요.”
청자마을 안태균 노인회장이 '마을과 함께 한 담배' 담장 앞에서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17.1.7./뉴스1 박종명 기자 © News1
청자마을 안태균 노인회장이 '마을과 함께 한 담배' 담장 앞에서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17.1.7./뉴스1 박종명 기자 © News1

태양마을에서 50m를 더 올라가면 이번에는 청자마을 그림지도가 길을 안내한다. 이 마을은 옛날에는 동네가 무진장하게 발전한다는 의미에서 무진니라 불렀는데 담배인삼공사가 들어선 후 1970년대 생산했던 ‘청자’ 담배 이름을 땄다.

태양마을보다 3년 정도 늦게 지어졌지만 마을 분위기는 담배마을 분위기는 더 역력했다. ‘담배 속에 나타난 자연’이라 쓰인 담장에는 무궁화, 나비, 백조, 사슴 등이, ‘마을과 함께 한 담배’에는 도라지, 태양, 청자, 장미, 아리랑, 신탄진 등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또 다른 담장에는 포도밭을 없애고 지어진 주택에 리어카를 이용해 이사를 하고, 뒷산 부처바위와 처녀바위에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는 모습 등 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담장 벽화를 위해 나선 마을 주민들의 핸드프린팅과 옛 사진을 걸어놓은 나무액자, 솔방울을 이용해 만든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발길을 붙잡는다.

청진경로당에서 만난 안태균 노인회장(76)은 “전매청에 다니던 사람들을 위해 만든 사원 주택이 태양마을이나 청자마을 말고도 거북선마을이 또 있다”며 “공기 좋다고 했던 마을이 공장이 들어서면서 낙후됐는데 근래 들어 시, 구청, 대덕문화원 등이 관심을 가지면서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청자마을 주민들이 대덕문화원의 문화 활동가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임대한 카메라를 나눠주자 카메라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대덕문화원 제공) © News1
청자마을 주민들이 대덕문화원의 문화 활동가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임대한 카메라를 나눠주자 카메라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대덕문화원 제공) © News1

대덕문화원은 2015년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으로 주민들과 청자마을 담장에 벽화를 그린데 이어 지난해에는 청자마을 어르신들의 삶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문화활동가 양성 사업 ‘찰라의 순간. 청자를 담다’를 벌였다. 마을 어르신 25명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월요일 두 시간씩 임대한 카메라로 사진 촬영하는 방법을 배워 자신만의 초상 사진을 꾸며보고, 나의 버킷 리스트도  만들었다. 서툰 솜씨로 마을의 이곳저곳을 누빈 발자취는 청진경로당 2층 갤러리에 걸리며 마을의 기록이 됐다.

안태균 노인회장은 “카메라를 들고 마을 이곳저곳을 찍어 매주 지도 선생님과 함께 평가하면서 주민들에게 삶의 의욕이 생겼다”며 “이런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던 마을에 외지인들이 구경하러 찾아온다는 게 반갑고 뿌듯해 차를 기꺼이 대접하곤 한다”고 말했다.

대덕문화원 김인숙 사무국장은 “청자마을과 인연을 맺은 뒤 마을을 찾을 때마다 안내방송과 함께 늘 따뜻하게 맞아주신 어르신들의 손길과 마음씨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접한 어르신들이 어색함도 잊고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들고 다니며 사라지는 마을과 이웃 어르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kt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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