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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 선물하고 떠난 아이, 무덤조차 만들 수 없었다"…위로의 공간

[장기기증 그후]②작년 9월 국내 첫 장기기증 조형물 보라매 공원 설치
장기기증, 숭고한 생명나눔이지만 편견 여전…인식 개선 계기 되길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2024-04-30 06:30 송고 | 2024-04-30 09:11 최종수정
편집자주 장기기증을 가리켜 삶의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그 기적 같은 여정을 지켜보고 함께해 온 이들이 있습니다.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기적'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는 데 앞장서 온 사람들입니다. <뉴스1>이 이들이 말하는 '장기기증'의 순간을 전해드립니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나누고 더하는 사랑' 조형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나누고 더하는 사랑' 조형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저희 석민이는 무덤이 없어요."

2000년 3월 강호 목사(69)는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아들 강석민 군을 떠나보냈다. 강 목사는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참척(慘慽)'의 한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참척은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고 박완서 작가가 본인의 에세이에서 사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강 목사는 아들의 무덤을 볼 때마다 '참척'의 한이 느껴질 것만 같아 무덤을 만들지 않았다. 주위에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식의 무덤을 따로 만들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신 자식의 얼굴이 아른거릴 때면 강 목사를 비롯한 이들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나누고 더하는 사랑' 조형물이다. 강 목사의 아들 강석민 군은 뇌사 판정 후 8명에게 장기를 기증, 새 생명을 선물했다.

지난 9월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장기기증 유가족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지난 9월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장기기증 유가족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나누고 더하는 사랑'은 국내 최초로 설치된 장기기증 운동 기념물로 2017년 논의 시작 6년 만이 2023년 3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3개의 구로 구성된 조형물은 장기기증자, 기증자 유가족, 수혜자를 상징한다.

강 목사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15명 남짓한 유가족들과 이곳을 찾아 조형물을 쓰다듬고 주위를 청소한다고 했다. 조형물을 직접 보며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돼서다. 그는 처음 조형물을 봤을 때의 느낌에 대해 "울컥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며 "반갑기도, 쓸쓸하기도 한 감정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는 "저희 장기기증 유가족 모임에 자주 나오시는 분들이 한 번에 많으면 20명 조금 넘는 정도인데 지난 9월 조형물 기념식엔 100명 넘는 분들이 오셨다"며 "내 가족이 그냥 잊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고 기뻐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해당 작품을 기획한 이수홍 홍익대 조소과 교수 역시 '기억'의 구현을 염두에 두며 작업을 진행했다. 이 교수는 "(장기기증과 관련해) 기쁜 마음으로 생명이 오가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해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너무 어둡게 표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적혈구의 원형을 참조한 구형의 조형물이 기증자-유가족-수혜자 사이를 연결하며 생명의 숭고함을 보이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홍익대 환경미술연구소에 몸담으면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 연을 맺게 됐다. 기증자가 생전에 기증을 원해도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는 사례를 들으며 자신도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이번 사업 참여했다. 이 교수는 장기기증은 생명이 오가는 한 사회의 성숙한 제도"라며 "기증자와 수혜자, 유가족이 서로 자부심을 느끼며 제도 속에서 서로 기쁘게 주고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2001년~2022년 국내 장기기증 연도별 추이(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2001년~2022년 국내 장기기증 연도별 추이(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하지만 여전히 국내 장기기증이 받는 따가운 시선들은 녹록지 않다. 강 목사가 온전한 구 형태가 아닌 옴폭 파이고 불룩하기도 한 조형물을 보면서 한때 본인이 가졌던 "찌그러졌던 마음"이 연상됐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식이 죽었는데 그걸로 이름을 알리고 싶으냐' 등 주위의 편견, 신체 훼손에 대한 동양 문화의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점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뇌사장기기증자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573명이던 뇌사 장기 기증자는 2022년 405명까지 감소했다.

처음에는 조형물 옆에 현판을 세우고 기증인들의 이름을 새기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무산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장기기증 추모 공간 사업에 참여한 관계자 A 씨는 "아직 한국 정서상 기증 사실 공개 자체를 꺼리는 문화가 남아 (이름 공개를) 원치 않았던 분이 생각 외로 많았다"고 언급했다.

이번 장기기증 추모 공간 사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 B 씨도 "보라매 공원을 비롯한 다른 장소들을 후보군에 넣고 현장 답사를 할 때 일부 나이 드신 분들께선 '왜 죽은 사람 이야기를 공원에서 하느냐'며 항의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들었다"며 "납골당, 장례식장 등과 비교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장기기증 문화에 대해서 많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느낀다"고 덧붙였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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