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마가 월드컵' 온다…'묘한 A조' 뛰는 韓[최종일의 월드 뷰]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 FC와 파리 생제르맹 간의 FIFA 클럽 월드컵 2025 결승전 경기 후, 첼시 FC의 24번 리스 제임스가 팀의 승리 후 클럽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데 옆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 있다. 2025.07.13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선임기자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 FC와 파리 생제르맹 간의 FIFA 클럽 월드컵 2025 결승전 경기 후, 첼시 FC의 24번 리스 제임스가 팀의 승리 후 클럽 월드컵 트로피를 들고 있는데 옆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 있다. 2025.07.13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 축구협회가 2018년 캐나다, 멕시코 측과 공동 제출한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통합 유치 신청서'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월드컵을 치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2년차였다.

신청서는 "2016년 논란이 많았던 선거 이후, 미국 내의 정치적 환경은 양극화된 상태로 남아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조사도 있지만, 지지층으로부터는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임기 제한으로 인해 그는 2026년엔 대통령 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내 정치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미국은 해외 일부 지역에서 이미지가 손상됐을 수 있으나, 여전히 전 세계 대다수에 의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청서는 유치 신청의 3대 키워드로 '연대', '확실성, '기회'를 내세우며 월드컵을 "인간적 화합의 가장 위대한 축제"라고 표현하며 "인권 및 기본 가치 존중"을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협회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정치적 양극화는 1기 때보다 심화됐고, 해외에서 미국의 이미지는 더 나빠졌다. 또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간 '연대'는 무역전쟁과 국경·관세 정책으로 사라져 대회 개최의 명분은 크게 약화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 도전에 실패한 뒤 4년을 쉬고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백악관에 복귀, 월드컵 준비를 총괄하는 백악관 태스크포스의 의장도 맡았다. 연임만을 전제로 2026년엔 트럼프 대통령이 없을 것이라던 2018년의 예상은 틀어졌다.

대전제가 바뀌었으니 앞으로는 트럼프의 방향으로 더욱 달려갈 것이다. 지난 7월 뉴저지에서 열린 피파 클럽월드컵 시상식에선 트로피를 받는 첼시 선수 바로 옆에 오랫동안 서 있어 축구 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옆으로 물러나 달라는 권유에도 자리를 지켰다.

이달 5일 열린 월드컵 조 추첨 행사는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은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열렸다. 이 센터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메시지 홍보 공간으로 활용돼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국제적 화합을 기념하기 위해 '피파 평화상'도 신설됐는데 첫 수상자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조 추첨 행사에서도 그의 '센터 본능'은 여전히 두드러졌다.

이렇다보니,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월드컵 무대가 사실상의 유세장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억측만은 아니다. 비판적 미국 언론들은 '마가 월드컵' '미국 우선주의 월드컵'이란 단어를 벌써 쓰고 있다.

마가 지지층은 "대통령이 세계 스포츠 무대의 중심에 있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다수 시청자는 위대해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트럼프의 미국'을 떠올릴 것이다.

정치·외교계 인사를 대상으로 잦아지는 테러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의 폭력 그리고 도심에 주방위군과 해병대가 배치된 혼란스러운 광경 말이다.

특히 한국이 속한 월드컵 A조엔 공교롭게도 2기 트럼프 행정부와 큰 갈등을 겪고 있는 멕시코와 남아공이 속했다. 유럽 플레이오프 D조의 유력 승자인 덴마크 역시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가 크게 악화했다.

그의 정치적 개입이 커질수록 축구장 안팎에선 경기에 불필요한 정치적 긴장이 흐를 수 있는 배경이다. 대회 개막 전후로 멕시코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경기가 영향을 받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백악관은 "월드컵 개최는 미국을 하나로 모으고, 미국의 우수성을 기념하는 기회"라고 했지만 '마가 월드컵'의 색채가 짙을수록 월드컵 개최는 미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할 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대회가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지배한 이래로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한 지도자의 영광을 위해 이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냉전 시기 체제 경쟁과 군사 정권의 정통성 홍보 등에 스포츠가 이용된 과거가 재현되질 않길 바란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