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출입 다 이란 영해 거쳐라"…58년 호르무즈 통항체계 흔드는 이란

오만과 손잡고 '7해리 임시 항로' 추진…이란 영해 통과 강제
"해협 재개방은 별개 문제"… 이란, 해협 고삐 죄며 美와 기싸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란과 오만 양국이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운항 경로의 지리적 매개변수, 즉 실제 운항에 적용될 좌표와 경로에 관해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란과 오만이 논의한 새 방안의 핵심은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선박이 이란 쪽 항로를 이용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선박은 오만 쪽 항로를 이용하는 구조다.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이란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 체계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국제해사기구(IMO)의 승인을 받아 운영돼온 기존 분리통항제(TSS)가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이란이 자국 영해를 통과하는 새로운 항로를 제시하면서다.

이란은 새 항로를 임시로 운영한 뒤 오만과 협의해 영구적인 통항 체계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란의 요구대로 항로가 변경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수 있어 미국과 주변국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이란 외무부 법률·국제업무 담당 차관인 카젬 가리바바디는 25일(현지시간) 이란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의 새로운 선박 통항로를 마련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의 유일한 연안국이라며 "새로운 상황에 따라 선박의 진·출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란 외무차관 카젬 가리바바디가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 연례 고위급 토론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02.23 ⓒ AFP=뉴스1
기존 TSS 뒤흔든 이란 전쟁

핵심은 기존 항로다. 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IMO가 1968년 도입한 분리통항제(TSS)가 적용됐다. 해협을 지나는 선박이 이란 측과 오만 측 수역에 각각 설정된 폭 2해리(약 3.7㎞)의 진입·진출 항로를 이용하고, 가운데 2해리 폭의 분리 구역을 두는 방식이었다.

특정 국가가 선박의 통항을 개별적으로 승인하거나 관리하는 체계라기보다 안전한 국제항행을 위해 선박의 흐름을 분리하는 국제적인 항행 체계였다.

특히 기존 TSS의 통항로가 주로 오만 측 수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는 1968년 IMO의 TSS가 오만 영해에 설정됐으며, 이후 이란·오만 간 대륙붕 협정에 따라 항행 가능한 심수 수로도 주로 오만 측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이날 가리바바디 차관은 선박들이 지난 58년 동안 오만 쪽 수역을 통해 통항해왔으며 이로 인해 이란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시작된 이란 전쟁은 기존 통항 질서를 사실상 뒤흔들었다.

전쟁 이전 선박들이 이용했던 기존 통항 체계 외에도 현재는 이란 연안에 가까운 북쪽 항로와 오만 연안 쪽 남쪽 항로가 별도로 이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선박들에게 자국이 지정한 항로를 이용하도록 압박해왔다.

이날 가리바바디 차관이 제시한 새 항로의 핵심은 해협 진입과 진출 모두 이란 영해를 거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하는 항로는 이란 측 항로를 이용하고, 나가는 항로는 오만 영해를 이용하되 그 일부는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입과 진출 모두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구간이 있게 된다"며 전체 항로가 약 7해리 폭의 하나의 통항 회랑처럼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를 "해협 위쪽에 한 개 차선, 아래쪽에 한 개 차선이 있는 형태가 아니라 왕복 차선이 있는 고속도로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즉 기존 통항 체계 대신 상당부분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새로운 진·출입 항로를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란 측 설명대로라면 선박들이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갈 때 이란 영해를 반드시 통과하고, 나올 때도 일부 구간에서 이란 영해를 지나게 된다. 이에 따라 이란이 선박 통항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도 기존보다 커지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2026.6.15. ⓒ 로이터=뉴스1
새 항로와 해협 재개방은 별개

또한 이란은 새 항로 협의와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개방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이란과 오만의 합의가 내일부터 호르무즈 해협이 열린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만 연안 쪽 남쪽 항로가 미국과 이란 간 양해각서(MoU)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를 우선 폐쇄하고, 이후 30~60일 동안 이란과 오만이 새로운 영구 항로를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양국이 향후 해협 관리 방식과 정보 교환, 선박 통항 관리, 항행·안전 서비스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만 외무장관 역시 이날 양국이 임시 공동 통항 회랑을 조만간 발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해협 재개방이 미국이 기존 약속을 이행하는 데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은 모든 전선의 전쟁 종식, 봉쇄 해제, 그리고 예멘 사태 해결을 대가로 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항행 안전을 위한 항로 조정에 그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적인 관리체계에도 관여하려 한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호르무즈 해협에는 두 연안국밖에 없으며 이란과 오만"이라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국제해협으로, 국제해양법상 통과통항(transit passage)이 적용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연안국은 항행 안전을 위해 항로와 교통분리제도 등을 설정할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선박의 통과 자체를 임의로 금지하거나 사전 허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여기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른 통과통항 원칙이 호르무즈 해협에 적용된다고 본다. 반면 이란은 UNCLOS 당사국이 아니며 자체 해양법에 근거해 보다 광범위한 연안국의 권리를 주장해왔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