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이스라엘·레바논 기본합의…"교착 상태만 굳어질 것"

로이터 "레바논에 헤즈볼라 무장해제 떠넘겨"…자칫 내전 우려
이스라엘의 철군 보장 없어…레바논 남부 무기한 주둔 가능성도

이스라엘, 레바논, 미국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기본합의에 서명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예히엘 라이터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합의 서명 후 박수를 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이스라엘과 레바논, 미국의 3자 기본합의서가 레바논에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넘기면서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교착 상태만 굳힐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29일(현지시간) 전망했다.

이 합의서에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 설정한 완충지대에서 일부 철군하고 헤즈볼라는 무장 해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합의가 헤즈볼라를 무장 해제시킬 책임을 레바논 정부에 지우고 있는데, 레바논 정부는 그런 역량이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레바논 주둔이 장기화해 헤즈볼라와의 교착 상태가 굳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바논에 헤즈볼라 무장해제 떠넘겨…종파 균형 깨져 내전 우려도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티레의 한 건물 옆 임시 묘지에서 현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란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2026.4.16 ⓒ 로이터=뉴스1

레바논은 마론파(동방 가톨릭교회의 한 일파) 기독교와 이슬람 수니파, 이란 및 헤즈볼라가 속한 이슬람 시아파가 공존하는 국가다. 종파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레바논은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국회의장은 시아파, 총리는 수니파 출신 인물이 맡는 관행을 유지해 왔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이 이번 합의로 깨진다면 레바논은 지난 1975~1990년 내전에 이어서 또 다른 내전을 치르게 될 수 있다.

이미 레바논에서는 이 합의에 대한 반응이 종파에 따라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조셉 아운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레바논 주권 회복의 첫걸음이라며, 이를 통해 레바논 국민들이 완전히 해방된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헤즈볼라와 가까운 나비흐 베리 레바논 국회의장은 이 합의가 "레바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조건을 강요하는 협정"이라며 합의는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레바논 고위 정치인도 레바논 군대가 헤즈볼라를 무장 해제시킬 만한 조직 구조나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며, 레바논에 이를 기대하는 것이 헤즈볼라의 확고한 군사력과 레바논의 안정을 지탱하는 취약한 종파 간 균형을 모두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임 카셈 헤즈볼라 사무총장은 이 합의가 "무효"이자 "항복"이라며 이스라엘이 철수할 때까지 저항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말콤 H. 커 카네기 중동 센터의 마이클 영 선임 편집장은 이 합의가 "내전, 어쩌면 시아파 공동체의 봉기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도 "헤즈볼라 무장해제 기대 안해"…레바논 남부 주둔만 공고화
20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에서 현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06.20 ⓒ 로이터=뉴스1

이번 합의로 레바논의 핵심 요구 사항인 이스라엘의 철군도 보장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합의서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레바논 남부 지역의 통제권은 헤즈볼라를 포함한 비국가 무장 단체들의 검증된 무장 해제에 달려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영 선임 편집장은 이 합의가 "모든 부담을 레바논에 지웠다"며 "이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무기한으로 주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레바논 출신의 파와즈 게르게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교수는 이 합의가 "태어난 순간 죽었다"(born dead)며 이스라엘 철군을 헤즈볼라 무장 해제라는 비현실적인 조건에 연계한다는 구조적 결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합의로 인해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형성한 약 8~10㎞ 폭의 완충 지대를 장기화시키고 외교적 정당성을 얻게 될 위험이 있다며, 이번 합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측도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는 비현실적이며 이번 합의로 레바논 남부 주둔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3명의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헤즈볼라를 무장 해제시킬 레바논의 능력을 거의 신뢰하지 않지만, 이 합의는 장기적으로 레바논과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외교적 조치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군사정보국 이란 지부장을 지냈던 대니 시트리노비츠 애틀랜틱 카운슬 연구원은 헤즈볼라의 해체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합의로 이스라엘군의 무기한 주둔이 합법화됐다고 평가했다.

gw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