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차입 사상 최대 2.35조달러…엔캐리 청산 가속화 위험

국경간 엔화 차입 360조엔 사상 최대…추가 청산 땐 140엔대 중반 전망도
"일본에서도 수익 낼 수 있다"…BOJ 인상에 캐리 공식 흔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6.9.3 ⓒ 뉴스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저금리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트레이드'가 흔들리고 있다. 엔화 차입 규모가 30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일본은행(BOJ)의 금리인상과 엔화 가치 급등이 맞물리면서 포지션 청산이 가속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제프리스가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분석한 결과 캐리트레이드 규모를 가늠하는 지표인 국경 간 엔화 차입액은 지난 3월 기준 사상 최대인 360조 엔(약 2조 3500억 달러·3150조 원)으로 불어났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지난 30년 동안 가장 큰 규모로 캐리트레이드가 축적됐다는 의미라고 제프리스는 분석했다.

국경 간 엔화 차입 전체가 캐리트레이드에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캐리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시장에서는 국경간 엔화 차입액을 캐리 규모를 가늠할 대용지표로 활용한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엔 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달러 등 다른 통화로 바꾼 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채권이나 주식 등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엔화 가치가 빠르게 오르면 환차손이 커지고 투자자들이 포지션을 한꺼번에 정리할 위험도 높아진다.

최근 엔화의 가파른 상승은 역대급으로 쌓인 포지션 청산을 촉발하고 있다. 엔화 환율(엔화 가치와 반대)은 이날 달러당 152.89엔까지 내려왔다. 지난주 초 달러당 160엔 안팎에서 불과 일주일 만에 4.5% 급등했다.

샤루 차나나 삭소 수석 투자전략가는 "BOJ가 예상되는 금리인상을 단행하기도 전에 청산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캐리트레이드는 취약하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아직 엔화 가치 하락에 베팅한 투자금이 상당히 남아 있어 엔화가 더 오르면 손실을 줄이려는 투자자들이 앞다퉈 포지션을 정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엔화 매수가 다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추가 손절매를 부르는 연쇄적인 청산이 촉발된다.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마사히코 루 수석 채권전략가는 달러·엔 환율이 155엔 아래로 떨어지면서 레버리지 펀드와 장기 투자자들이 모두 엔화 매도 포지션을 줄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규모 숏 포지션이 추가로 청산되면 달러·엔이 140엔대 중반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제시했다.

지난 2024년 BOJ의 금리인상으로 엔화가 급등했을 때 캐리트레이드가 빠르게 청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수일간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상황이 2024년과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와 달리 투자자들이 BOJ의 지속적인 긴축 가능성을 미리 예상하고 있는 데다 일본 내 금리 자체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 케네스 UOB케이히안 프라이빗웰스매니지먼트 이사는 "이제 돈이 수익을 얻기 위해 일본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가 30년 만의 최고 수준 부근까지 올라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해야 할 유인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것이다.

BOJ가 다음 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1.25%로 올릴 가능성은 97%까지 반영됐다. 한 달 전 52%에서 급등했다. 10월 추가 인상 확률은 27%, 12월은 61%다.

다만 BOJ에 대한 시장 기대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경계도 있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 매파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을 경우 엔화가 다시 빠르게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씨티 외환 데스크는 BOJ가 2024년 여름과 같은 시장 충격을 되풀이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시장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다음 BOJ 인상 때까지 단순히 엔화를 매도해 수익을 얻는 캐리 전략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씨티는 전망했다.

루 전략가는 "캐리트레이드는 여전히 작동하지만 더 이상 공짜 점심은 아니다"라며 이제 엔 캐리에는 정치적 위험 프리미엄까지 붙었다고 말했다. BOJ의 금리인상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정책과 미국의 엔화 약세 견제·시장개입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