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푸틴,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에 금리 인하 압박"

경제 성장세 급격한 둔화에 위기감…중앙은행 독립성 시험대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2024.06.07 ⓒ AFP=뉴스1

(서울=뉴스1) 유철종 전문위원 = 그동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공개적으로 간여하지 않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발언"을 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24일 기준금리를 연 14.25%에서 14%로 0.25%포인트(p) 인하했다.

중앙은행은 이 결정이 독립적으로 내려졌다고 설명했지만, 금리 인하는 대다수 전문가의 동결 전망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러시아 경제매체 RBC가 조사한 전문가 30명 가운데 26명은 금리 동결을 예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올레크 비유긴은 "과거 푸틴 대통령은 중앙은행 업무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지만 이제는 발언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또 "대기업들도 수개월째 높은 금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왔고, 이 같은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중앙은행에 대한 압력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소식통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와의 회동에서도 말투를 바꿨다. 우호적인 태도는 유지했지만, 나비울리나 총재에게 기준금리 인하 신호를 유념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알렉산드르 콜랸드르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분명히 커졌지만, 아직 독립성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은 아니다"며 "중앙은행이 조금 휘고는 있지만 부러지지는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유긴은 관건은 중앙은행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라면서 "결정적인 시험대는 중앙은행이 새로운 물가 자료를 검토하는 9월 회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는 고금리로 기업의 차입과 투자가 위축되고 러시아 경제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전을 뒷받침할 민간경제와 세수를 유지하려면 기업의 금융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2024년 4.9%에서 2025년 1.0%로 급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성장률도 0~1%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군사비 지출 확대와 연료 가격 상승 등으로 물가 불안이 여전해 금리를 급격히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 전년 동월 대비 6.0%로, 중앙은행 목표치인 4%를 웃돌았다.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 결정 회의에서 연료 가격이 크게 오른 점을 반영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을 종전 4.5~5.5%에서 6~7%로 높였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푸틴 대통령과 중앙은행 간 기준금리 논란이 4년간의 전쟁으로 러시아 국가기관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통신은 "한때 기술관료적 독립성으로 높이 평가받던 중앙은행이 이제는 정치적 우선순위와 통화정책을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체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온 나비울리나 총재는 2013년부터 러시아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해 왔으며, 재임 기간 경제 위기에 대응해 여러 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현재 나비울리나는 임기 5년인 중앙은행 총재직을 세 번째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 법률은 동일 인물이 중앙은행 총재직을 연속 3회 넘게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다.

나비울리나의 세 번째 임기는 2027년 6월 끝난다.

cj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