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영화제, 가자 학살 침묵"…하비에르 바르뎀 등 92명 성명

심사위원장 빔 벤더스 "영화는 정치와 무관" 발언에 폭발…아룬다티 로이 등 불참

할리우드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지난해 9월 14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 레드카펫 위에서 포즈를 위하고 있다. 2025.9.14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가 가자지구 전쟁에 침묵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 연예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하비에르 바르뎀과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 등 저명한 영화인 92명은 17일(현지시간) 영화제의 '조직적 침묵'을 규탄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베를린영화제가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판하는 예술가들을 억압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계속 가해지는 끔찍한 폭력에 영화 산업 관련 기관들이 공모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영화제가 과거 이란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참상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던 것과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화제 주최측을 향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 12일 2026 베를린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빔 벤더스 감독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벤더스는 가자지구 관련 질문에 "영화 제작자들은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영화는 정치의 반대"라고 말해 즉각적인 반발을 샀다.

저명한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충격적이고 역겹다"며 예정됐던 영화제 참석을 철회하는 등 파문이 커졌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책임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국가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는 독일의 '슈타츠레종'(staatrason)이 지목된다.

서한에 서명한 영화인들은 이런 독일의 입장이 팔레스타인 인권 옹호 활동을 위축시키고 예술계의 자기 검열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아이린 칸은 독일이 관련 법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중국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는 독일의 태도를 "1930년대의 파시스트적 충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영화제 측은 대응에 나섰다. 트리샤 터틀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가자 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분노와 좌절의 깊이를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서한에 담긴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 없는 부정확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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