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억으로 4000억 번 中영화, 동남아 화인사회 흔들다[동남아시아 TODAY]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지난 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중국 영화 '디어 유'(給阿嬤的情書·급아마적정서)를 보기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신화=뉴스1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필자는 석사와 박사과정 모두 화교·화인의 송금을 주제로 연구했다. 그런 이유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깊이 투영된 연구 주제를 하나 꼽으라면 '교비'(僑批)라고 할 수 있다. 교비는 중국 푸젠(福建) 및 차오저우(潮州)계 방언에서 유래한 말로 동남아시아의 화교·화인 노동자들이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던 송금과 편지를 의미한다. 19세기 초중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백수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의 동남아시아 화교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보낸 교비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본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보낸 안부 편지 역시 귀중한 역사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중국에서 만든 한 저예산 영화가 크게 흥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펴보니 놀랍게도 차오저우 지역의 교비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은 '급아마적정서'(給阿嬤的情書)로 '할머니에게 보내는 연서' 정도의 의미인데, 영어 제목은 '디어 유'(Dear You)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 볼 방법은 없지만 국내 개봉도 예정돼 있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홍콩뿐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화인 사회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집안의 빚을 해결하려 수십 년 전 태국에서 성공했다는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손자 '효위'가 고향 차오저우에서 평생 남편의 송금과 편지, 즉 교비를 기다리며 살아온 할머니 '숙유'의 애틋한 가족사와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태국에 도착한 효위는 할아버지가 이미 1960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수십 년 동안 그의 이름으로 편지와 생활비를 보내며 할머니 가족의 생계를 지원해 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바로 과거 화재에서 할아버지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던 태국 화인 여성 '사남지'였다. 영화는 오랜 오해와 세월을 넘어 마침내 태국에서 대면하게 된 '숙유'와 '사남지', 두 할머니가 국경을 초월한 깊은 유대와 보은의 정을 확인하며 눈물로 재회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연출과 각본을 함께 맡은 감독은 '란훙춘'(藍鴻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 대사의 95% 이상이 중국의 표준어인 '보통화'가 아니라 차오저우 지역의 방언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출연진 상당수를 전문적인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아마추어와 비연기자로 캐스팅했다고 한다. 사실 이는 그동안 보통화 사용을 국가 차원에서 오랫동안 장려해 온 중국의 언어정책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지역성과 방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꽤 용기 있는 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OST 역시 차오샨저우 방언으로 돼 있다. 흥행의 바람을 타고 중국 관영 방송에서도 해당 방언이 그대로 소개됐는데, 이 역시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지역색이 강한 저예산 영화가 어떻게 중국 관영 방송에 소개된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중국 내에서의 흥행세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약 1400만 위안(약 26억 원)의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4월 30일 개봉한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5월 말에는 티켓 판매액만 14억 위안(약 2700억 원)을 넘어서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6월 1일 기준 누적 박스오피스는 14억 4800만 위안에 달했고, 누적 관객 수는 4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개봉 첫날에는 전체 상영 편성의 1.6%에 불과했고 매출도 377만 위안에 그쳤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상영관이 급격하게 확대되는 역주행 흥행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흥행세는 누그러지지 않아 7월 말 중국 본토 누적 박스오피스는 20억 위안, 한화 약 3860억 원에 도달했고 누적 관객 수도 약 5800만 명에 이르렀다. 11일 현재 중국의 2026년 연간 영화 흥행 순위에서도 약 20억 위안의 매출로 주성치의 '쿵푸여자축구'(功夫女足)에 이어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제작비 1400만 위안과 비교하면 극장 매출이 제작비의 약 140배에 달하는 셈이다. 더욱이 유명 배우나 대규모 제작비에 의존한 상업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차오샨어를 중심으로 동남아 화교와 교비의 기억을 소재로 한 지역색 강한 영화가 중국에서 약 60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흥행 사례라 할 만하다.

두 번째이자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는 해외에서의 성적 역시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국내에서 시작된 흥행이 해외 화인 사회로 그대로 이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6월 18일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서 첫 해외 개봉을 시작한 뒤 호주, 뉴질랜드, 영국, 아일랜드, 일본 등으로 상영 지역을 확대했다. 7월 21일 중국 국가영화국이 밝힌 공식 수치에 따르면 해외 박스오피스는 이미 7000만 위안, 한화 약 135억 원을 넘어섰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는 7월 중순까지 약 463만 달러(약 63억 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하며 2026년 말레이시아에서 개봉한 중국어 영화 가운데 흥행 1위에 올랐고, 역대 말레이시아 중국어 영화 흥행 순위에서도 10위권에 진입했다. 싱가포르에서도 약 207만 달러(약 30억 원)를 벌어들이며 2026년 현지 개봉 아시아 영화 가운데 흥행 1위를 기록했다.

홍콩의 경우 6월 18일 개봉 이후 7월 28일까지 누적 흥행 수입이 2137만 홍콩달러(약 38억 원)를 넘어서며 2026년 홍콩에서 개봉한 중화권 영화 가운데 1위에 올랐으며, 역대 홍콩에서 상영된 중국 영화 가운데서도 '영웅'(英雄)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개봉이 확대되고 있는데, 8월 현재 공식 보도에서도 해외 흥행 수입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6월 25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의 한 영화관에서 한 여성이 중국 영화 '디어 유'(給阿嬤的情書·급아마적정서)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신화=뉴스1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해외 흥행의 중심이 일반적인 중국 영화의 주요 수출시장이라기보다 차오저우계 화교·화인이 오랫동안 정착해 살아온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 교비의 역사적 기억이 과거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화교·화인 사회의 가족사와 결합하면서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21세기 들어 강조해 온 중국 문화의 '소프트파워'이자 중화문명의 유대를 보여주는 더없이 좋은 사례로 여겨졌을 법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조금 복잡해지는데, 영화의 흥행 자체는 관객들의 공감과 입소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졌지만, 성공 이후 중국 정부와 관영 미디어가 이를 적극적으로 '국가적 서사'로 포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영 언론과 일부 지방 통일전선공작부는 이 영화를 해외 화교·화인의 고향과 조국에 대한 애정, 이른바 '가국정회'(家國情懷)를 환기하는 문화적 자원으로 활용하며 단체 관람과 관련 홍보를 적극적으로 조직했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과는 별개로 그 흥행이 중국의 통일전선 공작이나 국가주의적 서사에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도 나타났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하나다. 해외 화인들에 조상의 고향과 문화적 뿌리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사실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정치적 충성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나 태국의 젊은 중국계 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자기 조상이 중국에서 왔다는 사실과 문화적 뿌리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말레이시아인 혹은 태국인이라고 명확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영화의 흥행을 '조국에 대한 애정'이라는 언어로 과도하게 해석한다면 오히려 동남아 현지 사회에서 중국계 주민들의 국가적 충성심을 둘러싼 불필요한 의심과 긴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일찍이 저명한 화교사 연구자 왕궁우는 동남아 화인들의 정체성을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 정권과 연결 짓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그 실제적 삶과 안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것 역시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흥행은 실제 공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영화의 촬영지와 교비 관련 유적이 자리한 광둥성 차오저우 지역에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지의 화인 후손들이 조상의 고향을 찾는, 이른바 '심근'(尋根) 관광이 늘어나면서 과거에는 조용했던 마을들이 순식간에 관광 명소로 변하고 있다. 쇠퇴하던 지역 경제와 문화유산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지만, 동시에 주민의 사생활 침해와 소음, 전통 고택의 무분별한 상업화, 역사적 공간의 인증사진 명소화와 같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한 가족의 기억을 담고 있던 장소가 어느 순간 수많은 관광객이 소비하는 문화상품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디어 유'의 흥행은 한 편의 영화가 문화적 뿌리와 국가적 충성, 문화유산의 관광 상품화라는 서로 다른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낸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문제들이 처음부터 영화 제작자가 의도한 정치적 메시지에서 발생했다기보다 영화가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둔 이후 국가와 미디어, 해외 화인사회, 그리고 관광산업이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백여 년 전 국경을 오가던 작은 편지와 송금은 애초에 거창한 국가나 민족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타향에서 일하는 사람이 고향에 남겨둔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그 편지들은 문화유산이 되고, 영화가 되고, 다시 국가와 민족, 정체성과 관광을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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