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위 유혈진압' 명령한 방글라 전 총리에 사형선고

민주화 상징에서 피의 독재자로…궐석 재판서 최고형
인도 도피 중인 하시나 "정치적 보복" 반발

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가 지난해 2월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외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4.2.17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방글라데시 법원이 지난해 학생 주도 시위에 유혈 진압을 명령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에게 17일(현지시간) 사형을 선고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다카 국제범죄재판소는 2024년 시위 유혈 진압을 지시해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된 하시나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하시나가 인도로 도피해 궐석 상태로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가 판결문을 낭독하자 법정은 환호로 가득 찼다.

재판부는 하시나가 살인 교사와 학살 방지 실패 등 3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판결했다.

골람 모르투자 모줌더 판사는는 하시나를 "학살의 주모자이자 지휘관"이라고 칭하며 민간인을 향해 드론과 헬리콥터,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하도록 명령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아사두자만 칸 카말 전 내무장관도 사형을 선고받았고, 유죄를 인정하고 증인으로 전환한 초우두리 압둘라 알마문 전 경찰청장은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하시나의 몰락을 부른 건 지난해 7월 시작된 학생 시위였다.

정부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공무원 일자리의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고수하자,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던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는 15년간 이어진 하시나의 권위주의 통치와 부패에 항거하는 전국적인 반정부 운동으로 번졌다.

하시나 정권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며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다. BBC가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하시나는 보안 병력에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하라" "발견하는 대로 사격하라"고 직접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유혈 진압으로 유엔 추산 1400명이 사망했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이후 최악의 정치적 폭력 사태였다.

거센 저항에 직면한 하시나는 결국 지난해 8월 5일 헬리콥터를 이용해 인도로 도피했다.

하시나는 판결 후 성명을 내고 "민주적 정당성 없는 비선출 정부에 의해 꾸려진 조작된 재판소의 편향되고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시나는 방글라데시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이다. 1975년 군부 쿠데타로 가족을 잃은 뒤 국외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1년 귀국해 아와미연맹(AL) 대표로 활동하며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한때 민주화의 상징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이번 판결로 무함마드 유누스가 이끄는 방글라데시 과도정부는 인도에 하시나의 송환을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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