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메시·미녀 스타는 그만"…UN이 제시한 스포츠 보도의 원칙
여성 선수 외모·사생활보다 경기력 조명
페네르바체는 남녀 선수 동일 카메라 앵글·노출 원칙 마련
- 이재상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9등신 미녀 선수', '美 최고 미녀 여자농구 선수'.
최근 국내 스포츠 기사에서 실제로 등장한 표현들이다. 지난 8월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 아라키 아카네를 다룬 기사에서는 '9등신 미녀 선수'라는 표현이 제목에 등장했고, 지난 5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페이지 베커스의 유니폼 경매 소식을 전한 기사에서도 '美 최고 미녀 여자농구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성 선수의 경기력이나 성과보다 외모를 앞세우는 스포츠 보도는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비슷한 표현은 여전히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여성 선수의 외모나 사생활을 부각하거나 유명 남성 선수를 기준으로 여성 선수의 가치를 설명하는 스포츠 보도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최근 유엔여성기구(UN Women)가 발간한 '성인지 감수성 스포츠 보도 가이드'에 따르면 스포츠 미디어에서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사 제목과 표현부터 인터뷰 질문, 사진 선택까지 보도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가이드가 강조하는 핵심은 여성 선수를 외모나 의상, 사생활보다 경기력과 성취를 중심으로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선수를 '아내', '어머니' 등으로 먼저 규정하면서 정작 선수로서의 기량과 성과를 부차적으로 다루는 방식 역시 경계해야 할 사례로 꼽았다.
기사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수식어도 점검 대상이다.
남성 선수에게는 '강인한', '리더', '전사'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여성 선수에게는 '부드러운', '우아한' 등의 수식어를 반복적으로 붙이는 식이다. 여성 선수의 좋은 성적을 유독 '예상 밖', '놀라운' 결과로 표현하는 것도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봤다.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했다. 가이드에는 '여자 농구팀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다'는 표현 대신 'X팀이 우승을 향한 여정에서 값진 승리를 거뒀다'고 쓰는 예시가 담겼다. 여성 선수를 유명 남성 선수에 빗대 '여자 마이클 조던'이라고 표현하는 방식도 지양해야 할 사례로 꼽았다.
이 같은 표현을 걸러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이드는 '역지사지 검증'을 제안했다.
기사 속 여성 선수를 남성 선수로 바꿔도 같은 제목과 표현을 사용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방식이다. 인터뷰 역시 여성 선수에게 사생활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다면 같은 상황의 남성 선수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할 것인지 되짚어보라는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여성 선수의 특정 신체 부위나 외모를 강조하기보다 실제 경기에서 보여주는 기량과 노력, 팀워크가 드러나는 장면을 우선해야 한다. 남녀 선수에게 서로 다른 카메라 앵글을 적용하는 관행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권고에 그치지 않고 실제 스포츠 현장에 적용한 사례도 있다.
튀르키예 명문 구단 페네르바체의 미디어그룹은 UN Women의 HeForShe와 워크숍을 진행한 뒤 스포츠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지켜야 할 10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남녀 선수에게 동등한 방송 시간과 균형 잡힌 노출 기회를 제공하고 성별과 관계없이 동일한 언어 기준과 카메라 앵글을 적용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에서도 남녀 선수의 노출 균형을 맞추고 취재원을 선정할 때 성평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결국 가이드가 강조하는 것은 스포츠 보도의 중심을 다시 '경기'와 '선수'에게 돌려놓자는 것이다.
기사 제목에 누구를 내세울지, 어떤 수식어를 붙일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사진을 선택할지 등 일상적인 판단에서 여성 선수에게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alexe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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