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이 뭐길래…"10시간 기다리고 100만 원 숙소도 안 아까워"
불꽃축제 '알박기'에 포토스폿 긴 줄…무료이용 장소 거래도
전문가 "SNS 인정 욕구·비용 회수 심리…지나친 몰입 경계"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지난 5일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이 모 씨(32)는 불꽃이 터지기까지 10시간 넘게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불꽃이 잘 보이는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어차피 하루를 불꽃축제에 쓰기로 한 거라면 조금 힘들더라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보고 싶었다"며 "몇 시간씩 기다린 만큼 명당에서 제대로 즐기고 사진과 영상도 잘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잘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이미 오랜 시간을 기다린 터라 중간에 자리를 포기하거나 옮기는 건 더 아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불꽃축제를 앞두고 '명당'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행사 전날부터 한강공원 곳곳에는 돗자리 등을 미리 펼쳐놓는 '알박기'가 이어졌고, 온라인에서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의 자리를 미리 선점하거나 대신 맡아주는 대가로 수십만 원을 요구하는 거래도 등장했다.
8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최근 SNS 등을 통해 유명해진 장소에서 명당을 찾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일출·벚꽃 등 계절 명소와 SNS 포토스폿, 공연·축제, 팝업스토어 등에서도 좋은 자리나 사진을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순히 장소를 방문하거나 행사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경험이라도 더 좋은 자리와 조건에서 즐기고 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데 가치를 두는 것이다.
20대 여성 박 모 씨는 "결국 '나도 여기 다녀왔다'고 보여주기 위한 인증이 목적 아니겠느냐"며 "사진 한 장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포토스폿에 줄이 길면 '여기가 정말 유명한 곳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을 안 찍고 가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기다리게 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씨(34)는 프랑스 파리 여행을 앞두고 창문을 열면 에펠탑이 바로 보이는 숙소를 1박에 100만 원을 주고 예약했다.
A 씨는 "유럽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자주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에펠탑이 잘 보여 명당으로 알려진 숙소라면 1박에 100만 원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SNS를 통한 타인의 경험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과 인정 욕구에 더해 이미 들인 시간과 비용을 아깝게 여기는 심리 등이 맞물리면서 '명당 집착'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회수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며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이미 들인 비용을 생각해 투자를 계속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SNS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SNS에서 유명한 장소에 가서 사진을 올리는 것을 통해 '나도 이곳에 다녀왔다'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가지 않은 사람들과는 차이를 두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자아를 구성하는 데는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가 있는데, SNS에서는 '남이 바라보는 나'에 지나치게 치중하기 쉽다"며 "인생이 이벤트만의 연속은 아니고 '명당'만 찾아다니며 살 수도 없는 만큼 남들에게 보여주거나 인정받는 데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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