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아닌 사람이 지킨 밤"…22만명 울린 동물병원의 새벽

중환자실 바닥에 함께 누운 직원…영상 화제

새벽 시간 24시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중환자실에 입원한 장수를 살뜰히 돌보고 있는 동물보건사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다(김지원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네블라이저 치료를 받으며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던 초대형견 장수 곁으로 한 사람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장수의 엉킨 털을 천천히 빗겨주더니 좁은 중환자실 바닥에 함께 누워 장수를 품에 안았다.

말없이 등을 토닥이고 숨소리를 살피고 곁을 지켜준 시간은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지난달 23일 유튜브에 공개된 이 영상은 현재 조회수 22만회를 넘기며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영상 속 주인공은 공장지대에서 구조된 초대형견 '장수'와 24시 로얄동물메디컬센터에서 동물 간호 업무를 맡은 동물보건사(동물병원 테크니션)다.

14일 개인 봉사자 김지원 씨(코난아빠)에 따르면 장수는 전라도 광주의 한 산업단지에서 무거운 쇠사슬을 목에 단 채 발견된 유기견이었다. 오랜 시간 공장 주변을 떠돌며 살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구조 당시 심장사상충과 영양실조, 심각한 외이도염을 앓고 있었고 이후 골육종이 폐까지 전이된 사실이 확인됐다.

공장지대에서 유기된 채 발견된 장수의 모습(김지원 제공) ⓒ 뉴스1

이제야 사람의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장수에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김지원 씨는 장수의 치료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병원 CCTV를 지켜보다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병원을 차가운 의료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며 "그런데 장수를 통해 그런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전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지키는 밤

24시 로얄동물메디컬센터는 보호자가 입원한 반려동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CCTV 링크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날 새벽 김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형식적인 입원 관리 장면이 아니었다.

서울 중랑구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중환자실에서 새벽 시간 환견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았다(김지원 제공). ⓒ 뉴스1

영상 속 동물보건사는 한 손으로 호흡기 질환 치료 의료기기인 네블라이저 호스가 장수 얼굴로 잘 향하도록 붙잡은 채 털을 정성껏 빗겨주고 있었다. 귀와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살피며 엉킨 털을 풀어주던 그는 이내 장수 옆 좁은 공간에 몸을 눕혀 한쪽 팔로 장수를 품에 안았다.

옆에서는 또 다른 동물보건사가 소변줄을 비우고 상태를 확인하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이어갔다.

차가운 기계음이 흐르던 중환자실. 하지만 그날 밤 장수 곁을 지키고 있던 것은 기계만이 아니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지키는 밤이었다.

김 씨는 "정작 임시 보호자인 저도 다 해주지 못한 사랑을 병원에서 대신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에 새벽에 많이 울었다"며 "장수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뒤 댓글창에는 "차가운 병원이 아니라 가족 같다" "장수가 사랑을 알고 떠난 것 같아 다행이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세상이 돌아간다" "저런 곳이라면 우리 아이도 믿고 맡길 것 같다"는 등 응원이 이어졌다.

영상 속 동물보건사는 사비로 준비한 머리핀을 장수에게 꽂아준 것으로도 알려졌다.

장수 머리에 꽂힌 핀은 동물보건사가 사비로 마련해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지원 제공). ⓒ 뉴스1
"장수가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갔다"

김 씨는 특히 장수 치료를 맡았던 정인성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원장과 의료진에게 깊이 감사함을 전했다.

그는 "정인성 원장님께서 밤낮으로 정말 많이 고생하셨다"며 "장수 덕분에 이런 병원과 의료진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에 악성 댓글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진심으로 마음을 남겨주셨다"며 "장수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수는 지난 4월 27일 새벽,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김 씨는 장수가 남긴 것이 단지 슬픔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장수는 떠났지만 구조자부터 후원자들, 병원 선생님들까지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갔다"라며 "장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보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공장견으로 8년 가까운 시간을 살다가 이제야 빛을 좀 보려던 친구였는데 그렇게 떠난 게 억울하다"며 "앞으로도 공장견 문제를 계속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해피펫]

badook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