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20년 동안 맡겼는데…잠도 잘 안 와" [문 닫는 백병원]

아쉬움 나눈 마지막 진료…"죽을 때까지 따라다녀야 하는데 막막"
"검사만 끝까지 제대로 받으세요"…환자 걱정에 의사는 신신당부

조영규 가정의학과 교수가 18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백병원은 인제학원 이사회가 지난 6월 경영난을 이유로 폐원을 결정해 이달 31일 진료를 종료한다. 2023.8.18/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박상휘 박동해 기자 = "병원이 이렇게 돼 가지고. 어우 어떡하나 이거…."

"저도 마음이 불편하네요."

조영규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폐원을 안타까워하는 환자 앞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대다수가 다른 병원으로 가는 데 필요한 진료의뢰서를 떼러 마지막으로 병원에 온 환자들이다. 매번 환자들이 어느 병원으로 갈 계획인지 확인하고 그동안 어떤 병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왔는지, 어떤 약을 얼마나 먹어왔는지 진료의뢰서를 쓰는 것이 요즘 조 교수가 하는 일이다.

병원을 오래 다닌 환자들은 갑작스러운 작별을 아쉬워했다. "선생님은 어디로 가세요?" 의사를 따라 병원을 옮기겠다는 환자들은 많았지만 조 교수는 "아직 모르겠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서울백병원 재단인 인제학원이 전임 교원 대상 전보발령 논의를 뒤늦게 이달 중순에야 시작해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답답한 심정은 의사나 환자나 매한가지다.

진료 종료를 2주가량 앞둔 지난 18일은 아침부터 환자가 몰려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다. 서른 명이 채 되지 않았던 평소에 비해 열 명 정도 더 많은 환자가 예약 대기 상태였다. 반면 진료실 앞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간호사는 단 한 명. 침이 마르도록 전화를 걸고 수십차례 환자들에게 서류를 떼는 절차를 안내하느라 지칠 법도 했지만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 향하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밝고 친절했다.

이날 진료를 보러 경기도 과천에서 오전 6시부터 차를 몰고 왔다는 오석용씨(65)는 "(병원이 없어진다니) 엄청 불편하다"며 "이 병원 저 병원 다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 더 좋은 병원이 있어도 좀 더 마음이 편한 데 (다니고 싶다)"고 씁쓸한 심경을 드러냈다. 병원 곳곳에 붙어 있는 '폐원 반대' 대자보를 보면서는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평했다.

서울백병원 본관에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의 이사회 폐원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2023.6.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백병원에만 30년을 넘게 다녔다는 홍영택씨(71)는 아내 하계선씨(60)의 보호자로 병원에 동행했다. 홍씨는 "집에서 지하철로 20분 거리이고 의사 선생님도 유능하고 간호사분들도 다 친절하셔서 그동안 신뢰도 많이 쌓였다"며 "(폐원은) 아쉽지만 사람(환자)이 없어서 운영이 안 되는 걸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수선씨(75)는 충무로에 있는 제일병원에 다니다가 2021년 병원이 폐원하자 서울백병원으로 옮겼지만 또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TV 방송에서 조영규 교수를 보고 일부러 서울백병원까지 찾아왔는데 폐원한다는 소식에 이씨는 "너무 섭섭하다"며 "나는 그냥 (선생님이) 옆집 아저씨처럼 너무 좋았는데 이제 어떡하냐"라며 조 교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난감한 웃음을 짓던 조 교수가 "제가 그 옆집으로 이사갈게요"라고 농담을 건네자 이씨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료 종료를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24일에도 여전히 병원은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오전 9시 나란히 붙어있는 장여구(일반외과) 교수와 오행진(혈관외과) 교수의 진료실에는 각각 대기환자 30명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장 교수에게 직접 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폐원 소식에 하나같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약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는 서정애씨(63)는 "제가 죽을 때까지 선생님을 따라다녀야 하는데 어디(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것도 막막하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왜 (선생님 가실 병원이) 결정이 안 났느냐. 여기 문 닫는 건 맞느냐"고 묻기도 했다.

장 교수가 "(재단 측은) 확실하게 닫겠다고 하고, 직원들은 닫는 게 억울하니까 (가처분) 소송을 걸었다"고 설명하니 서씨는 간절하게 "소송에서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교직원 260여명은 지난 4일 폐원 결정 무효를 주장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씨는 진료 후 기자에게 "병원이 없어진다고 해서 스트레스다. 다른 거라면 모르겠는데 암 수술이지 않나. 약도 계속 먹고 아직 완쾌 판정도 못 받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 24일 서울백병원 2층 외과 진료실 앞 안내데스크에 한 환자가 그동안 정들었던 의료진들을 위해 선물로 커피를 놓고 간 모습이다. 의료진은 진료에 바빠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커피에 한 입도 대지 못했다. 2023.8.24/뉴스1 ⓒ News1 박혜연 기자

장 교수는 "수술을 받은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잘 안 받아준다"며 "우리 병원에서는 간단히 CT나 내시경 검사로 (암 재발 여부를) 확인하면 되는 걸 다른 병원에 가면 거기도 다 절차가 있기 때문에 검사를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환자들에게 일일이 "네이버에서 제 이름을 치면 이렇게 소속이 뜬다"고 설명한다.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어도 나중에 자신이 어느 병원으로 옮겼는지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이 고령 환자라 "검색할 줄 몰라요"라고 답하는 현실이다.

그래도 계속 포털 검색을 안내하는 이유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장 교수는 대장암 수술을 받고 추적 관찰 중인 87세 남성 환자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봐야 안심이 될 것 같다. 5년이 지나야 그래도 이걸로 암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거니까"라며 "끝까지 긴장 늦추지 마시고 검사만 제대로 받으시면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2003년 유방암 발병 이후 세 차례나 서울백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홍풍자씨(80)는 침울한 표정으로 "내 몸을 여기에서 20년 동안 맡겨 놓고 다녔는데 다른 데 가면 어떨까. 다른 데도 잘하겠지만 그래도 여기 오면 낯설지 않고 좋았다"며 "(폐원 소식에) 처음엔 밤에 자다 깨면 잠도 잘 안 오고 그랬다"고 말했다.

홍씨의 남편 이건재씨(80)는 "돈벌이가 안 된다고 환자를 내팽개치다니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행위를 재단이 하고 있다"며 "재단이 그동안 여기(서울백병원)에서 돈 벌어서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이렇게 병원을 늘려놓고는 지금 와서 이 병원이 수지가 안 맞는다고 폐원을 결정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영규 가정의학과 교수가 18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가슴에 폐원을 반대하는 뱃지를 달고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2023.8.18/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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